-1 첫 번째 일상
'삶은 어쩌다 우여곡절을 품었을까 한결은 내쳐버리고..' 이런,
제멋대로인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을 온라인상의 어딘가에 메모해 두었다. 유독 고요한 아침이었다. 이런 고요가 좋다. 평화로운 마음이 오랜만에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어두운 저녁에만 들리는 풀벌레 우는 소리처럼 아침에도 그 계절의 생명이 내는 소리들이 들렸다. 도시의 소음이 잠깐 먹통이 되는 이른 일요일의 아침에 문득 알게 되는 사실이다.
점점 곡절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높이도 모르고 정신없이 신이 나서 더 이상 오를 데 없는 정점에 이른 그다음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저 아래로 곤두박질쳐질 시간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런 인생의 높낮이를 꽤 경험하고 난 뒤였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엔 한결같은 것이 심심하고 무료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그 결에 머무는 순간들만이 안심이 된다. 요동치는 그래프의 혼란스러움이 싫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하는 삶 같은 건 이제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내 삶을 위아래로 정신없이 휘두를지 모를 주식투자 같은 건 시작조차 안 하는 건지도 모른다. 생각의 무게 때문에 실없이 농담의 방향으로 잠깐 새었다 돌아와 본다.
어쨌든, 육체가 살아있는 증거가 심장이라면 심장박동의 생명선이 일직선이 되는 것은 곧 죽음이지만 온전한 정신으로 살고자 가능한 한 줄곧 부동의 고요한 선상에 남은 삶을 누이고 싶다.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아주 작은 돌멩이가 그리는 파동조차 용납하지 않고 때에 이르러 떨어지는 무고한 나뭇잎이 그리는 미동 정도 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견딜 수 있는 동요의 정도가 그 정도였으면 좋겠다.
고요한 아침,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 자른 베이글 속에 딱 여덟 조각의 까망베르 치즈를 얇게 썰어 넣어 살짝 녹인다. 전날 커피 원두를 갈아서 정성껏 내린 다음 야무지게 밀봉해 냉장고에 넣어 둔 차가운 드립 커피 한 잔을 꺼낸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나고도 꽤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반수면 상태인 몽롱한 심신에 짙은 커피 한 모금을 수혈한다. 이어 고소한 한 입의 빵으로 막 각성한 오감을 건드릴 때, 음~ 한 마디로 모든 게 표현되는 바로 지금의, 소소한 행위의, 이 행복.
먹는 것이 번잡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베이글에는 좋아하는 치즈 딱 한 가지면 족하고 커피는 지겹게 늘 진한 드립 커피.
샌드위치와 비빔밥을 즐기지 않는 것은 재료들의 번잡스러움 때문이다. 사실 그건 맛의 조화로움이라고 해야 맞지만 내겐 조리과정도 음미하는 순간도 그저 번잡스러울 뿐이다.
지극히 취향이다. 볶음밥을 할 때도 한 가지 재료를 충실하고 충분하게 넣은 다음 최소한의 간을 해서 먹는 스타일인 취향이다. 어쩌다 두 가지 재료를 넣을 수도 있지만 그럴 땐 크게 잘라 넣어 막상 먹을 때는 애써 한 가지씩 골라 먹는. 예를 들어 좋아하는 당근이나 적채 같은 기본적인 야채에 가지나 버섯을 추가했다면 가지와 버섯은 따로 골라먹으며 재료 본연의 맛을 충분이 음미하는 것을 좋아한다. 번잡한 게 불호인 것은 재료의 맛이 섞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의 시작점이다.
대체로 모든 사람과 탈 없이 잘 지내는 편이지만 결국 한 두 사람 정도와 깊이를 공유할 뿐인.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진 않지만 아주 오랜 시간 버티지는 못하고 시끌벅적 하하호호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면 급속 충전이 필요한. 북적대는 공간이 싫은 것보다 홀로 생각에 빠지거나 생각조차 없이 적막한 공기 속에 머무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는.
어쩌면 나는 조화롭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다. 조화로움의 에너지를 부러워하지만 막상 거기에 몸과 마음을 푹 담그지 못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파도의 주름에 붙잡혀 심신이 허기질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할까 봐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어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사람. 마음이 충분히 동하지 않는 것에 온통 에너지를 소진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밀려오는 파도 끝자락에 발만 살짝 적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 언제든 유유히 빠져나오고 싶은 사람.
삶의 어느 지점에 도착하면,
누구나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게 물건이 됐든, 관계가 됐든, 생각이 됐든.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많은 시기에는 당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부러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게 된다. 물론 그런 바람이 행동으로 반드시 이어진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게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다.
정성 들여 개개의 삶을 들여다보면 하나도 같은 삶이란 게 없고 앞으로의 삶을 꾸리는 방식과 결심도 같을 수 없을 테니까. 삶이란, 사회적으로 합의를 한 모든 가이드라인처럼 가장 바람직한 기준의 정의를 내려 옳고 그름을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성질의 것이니까.
그래도 내 경우는 그랬다. 원래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뭘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잘 버리고 더 잘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그걸 믿는 쪽이다. 그렇다고 해서 100이면 100이 모두 그렇다고 믿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어떤 계기가 생기거나 뭘 독하게 마음먹거나 하면 결국 자신의 믿음대로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나도 아니까.
나는 변했고 나는 그대로이기도 하다.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것이 발현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 바깥에서 나를 치고받았던 것들이 나를 깎아내주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좀 더 간단히, 좀 더 간소하게, 좀 더 평안하게 지내는 방향으로 내 삶의 핸들을 틀었다.
먹는 일과 사는 일이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