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두 번째 일상
습기가 공기의 90% 이상을 장악한 장마기간 중 어느 한 날.
마트에서 사 두었던 만가닥버섯을 넣고 밥을 볶아먹었는데 이 버섯을 또 사지는 않겠구나, 생각하면서 만들어두었던 양파 간장을 넣어 비벼 겨우 밥공기를 비웠다. 그럭저럭 밥 잘 먹는 내게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난 재료 본연의 맛이 조금은 흐트러지는 양념장을 버섯처럼 향까지 음미하며 먹는 재료에는 넣지 않는 쪽이니까. 버섯으로 무얼 요리할 때는 약간의 소금과 후추 외에 다른 조미료를 넣지 않는 게 나의 버섯 요리 방식이다.
식욕이 떨어지고도 남을 법한 음습한 날씨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자주 반복해서 꾸는 사나운 꿈을 한바탕 꾸고 난 후 개운치 않은 마음이 몸의 컨디션에도 영향을 끼친 날의 아침 식사여서 일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기껏 단 한 번의 실패로 매정하게 내린 결심이 잘 바뀌지는 않는다. 만가닥버섯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 분명 다른 버섯과 차별화된 충분한 매력을 지녔을 텐데도 그걸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야박한 상황에 대해서.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 일도 그렇게 억울할 때가 많다.
어쨌든, 억울한 어느 버섯의 사정을 대신 읍소하려던 건 아니다. 식재료나 요리 취향을 밝히려고 시작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게 밥 한 공기를 막 욱여넣고 얼마 되지 않는 설거지까지 얼른 끝내고 난 후였는데, 그날은 장마기간의 어느 날답게 오전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며칠째 습하고 흐린 날씨가 계속되고 있기도 했고 불과 이틀 전에도 무자비한 폭우가 쏟아졌듯이 장마는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날은 운동선수의 루틴처럼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할 법한 행동이 있다. 방 안쪽 불투명한 창은 열어두고 바깥 투명한 유리창은 닫은 채로 바깥에서 내리는 비를 안에서 안전한 마음으로 내다보는 것. 굳이 침대 한쪽 가장자리에 앉아서.
침대가 있는 방 창밖은 지대가 높은 집의 5층답게 북한산의 한 자락이 풍경처럼 펼쳐져 있다. 그래서 맑은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구름이 흐르는 날에도, 사실 결국은 모든 계절의 하루하루마다 그 방 창 너머로 풍경 내다보는 맛이 있다. 그 방뿐만 아니라 이 집의 각각의 창이 가진 풍경들이 각기 다르게 다 좋아서, 이곳에서 살기로 결심했던 기특한 마음이 여전할 정도로, 이 집 모든 창은 좋은 풍경 액자를 가지고 있다.
오해는 없기를. 풍경 좋은 창을 가진 집을 자랑하려던 것도 아니니까.
후식처럼 자연스레 이어져 차려진 비 오는 맛이 좋은 유리창과 그 너머에서 들리는 빗소리까지가 식사코스였다면 이날의 아침은 꽤 성공적이었다. 본식이 성에 차지 않았던 터라 좀 시무룩해졌는데 꿉꿉하고 텁텁한 그저 그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비가 맛있었다. 비록 한여름의 꿈처럼 비는 금세 떠나갔지만.
대신 비 내리는 풍경 후속으로 안개가 민첩하게 산자락을 휘감는 모습을 곧 목격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이 안개를 잡아당기거나 밀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인위적인 쾌속의 행진이 신비로웠다. 구름이 달린다는 표현이 실감 날 때 느껴지는 속도감과 비슷하달까. 그렇게 안개가 산자락을 하나둘씩 삼켜버리더니 순간 시야에서 산이 사라졌다.
사실 그게 그렇게 신기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이 자주 펼치는 마술이다. 관중이기를 자주 거부하는 것은 바쁜 척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다행히 가끔씩은 이렇게 관람석 1열에 앉아 그때의 멋진 공연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마치 자연의 아름다운 동작들을 처음 감상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얼굴 표정을 하고.
우리는 우리 삶의 시간을 빠짐없이 공유하고 있는 자연의 다양한 순간들을 타인의 삶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대감 집 안방에 쳐 놓은,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늘 그 자리에 있어 쉬이 눈길이 가지 않는 병풍처럼 여긴다. 그러다 파괴적이고 위력적인 자연의 힘이 삶을 덮치면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끼기도 하고, 지금처럼 그저 어떤 해도 가하지 않은 신비로움으로 우리 마음을 후려치는 자연이 놀라워 경의와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이날, 나는 신비로운 풍경 탓에 느닷없이 행복에 가까운 심경이 되었다. 무언가에 늘 긴장하고 있었을 삶이 잠시 느슨해지고 편안해졌다. 찌든 삶의 표피를 한 꺼풀 벗겨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살아간다는 게 구름처럼 계절처럼 그냥 흘러가면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랬다.
생각은 불현듯 붙잡을 새도 없이 또 다른 생각으로 내달렸다.
매시 매분 매초조차 닮은 적이 없을 다채로운 자연이란. 대체 누구의 부지런한 의지로 이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역시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하고 무한한 힘이 관여하는 것일까. 문득 살면서 무시하고 있던 질문을 맞닥뜨리면 생각은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대자연 앞에 보잘것없는 인간이여...!’
우리는 우리를 위해 산다. 하나부터 열까지. 먹고 싸는 단순한 행위부터, 목표를 정하고 이루기 위한 개인적인 열정도, 보다 고차원적이고 인류지향적인 놀라운 업적도, 모두 우리를 위해서다. 인간은 인간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그 순간마저도 온전히 그 대상만을 위한 행위는 없다. 하다못해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이나 성취감, 나만 배부르지 않고 베풀었다는 기쁨이나 안도감 같은 자기만족에 이르는 여러 가지 감정의 이득이라도 취하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자연은 자연을 위해서만 살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에겐 그저 베풀 뿐이다. 우리는 그런 자연으로부터 너무도 많은 것을 취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부터 비롯된 그 하나부터 열까지를 빠짐없이 채우고 이루기 위한 모든 것이 자연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재생되는 알길 없는 자연의 위대한 능력이 인류를 구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가 감히 자연을 아끼자, 가꾸자, 돌보자.. 지극히 어패가 있는 표현들을 양심도 없이 쉽게 내뱉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자연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놀라운 혜택을 끊임없이 무상 제공받고 있는 입장이 아닌가. 그런 무한한 자연을 향하여 유한한 우리는 그 한정된 시간 안에서 얼마나 대단하고 빛나는 삶을 살겠다고 그에게서 사정없이 갈취하고 상처 주고 성형을 하고 근본마저 휘둘러 스스로 재앙을 자처하고 있는지.
격앙된 문장들이 부끄러워질 때쯤 고개를 드는 의문이 있다. 대체,
이날의 만가닥버섯과 비 오는 풍경으로 인한 나의 마음가짐과 지나치게 오그라드는 깨달음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생각이 흐르고 흘러 여기까지 왔다지만 사실, 아무 상관없다. 굳이 연관성을 따지자면, 어쩌면 누군가의 밥상에서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만가닥버섯보다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자주 아리송한 나라는 존재가 더 보잘것없을지도 모른다는 결론 정도. 저 위대한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만가닥버섯의 생성과 희생이 한낱 보잘것없는 나 같은 인간 존재에게 맛없음을 판결받은 어불성설의 아침이라는 사실 정도.
하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연결을 짓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밥을 지을 때마다 밥을 짓는 그날의 행위나 그날의 재료를 두고 항상 살아가는 무엇과 억지 연관을 짓고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의식적인 글쓰기에 지나지 않는데. 밥을 짓는 반복되는 행위처럼 살아지는 일도 늘 반복될 뿐이고, 그것이 삶이 밥을 짓는 일과 다름없이 여겨졌다는 것이고, 그렇지만 오늘 어떤 밥상으로 배불렀느냐가 오늘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 와는 별개의 문제일 때도 있는데.
그냥,
밥은 먹는 것이고, 삶은 사는 것이고, 그게 합쳐진 하루하루가 나의 인생일 뿐이다.
보잘것없는 사람은 보잘것없는 생각을 그렇게,
서둘러 마무리 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