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덟 번째 일상
현미식을 10년도 넘게 유지하고 있다.
건강에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는데, 몸이 고생한 시기가 있었고 음식 습관은 조금만 신경 쓰면 개선이 가능하니까 할 수 있는 정도는 해 보자며 시작했었다.
사실 100% 현미식은 건강에 좋다고 만도 할 수 없다. 스무 번 이상 오래 꼭꼭 씹어 먹지 않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오히려 위를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방법은 좋은 영양과 재료로 몸을 건강하게 만들려던 목적을 예상과는 반대의 결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현미식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나와 잘 맞았기 때문이다. 몸에서 잘 받았다기보다는 맛있어서 잘 맞았다. 현미로 계속 밥을 지어먹다 보면 흰쌀밥의 달달함보다 현미밥의 고소함이, 흰쌀밥의 찰기보다 현미밥의 꼬들꼬들한 식감이 좋아져서 어쩐지 흰쌀밥은 힘이 없고 심심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위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술 담배도 안 하는데 건강검진을 할 때면 만성 위염이 있으니 조심하란 얘기를 줄곧 듣고 있다. 다른 나쁜 습관 때문일 수도 있고 현미식이 조금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맛있는 현미밥에 입이 즐거워 꾸준히 현미식을 고집하는 중이다.
순수한 식재료 그 자체뿐만 아니라,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요리법이 달라 결과물이 확 달라지는 요리에 대해서도 각자의 취향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 위에 올라온 음식들을 열심히 섭취했던 수동적인 행위 때문에 나의 음식 취향이 이미 결정된 줄 알았다. 그 시절이 지나 더 다양한 재료와 요리를 접하고, 또 직접 요리를 하게 되고 보니 부동일 줄 알았던 취향에도 변화가 생겼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확고한 취향을 찾아 결론짓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엔 고집스러움이 살포시 자리 잡는다. 누가 뭐래도 쉽게 바꾸고 싶지 않은.
나의 한결같은 현미밥 취향이나, 언급한 바 있는 드립 커피 취향이나, 단출한 재료로 요리하는 방식의 취향 같은 것이 고집으로 확고해진 것들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고집은 단순히 단발성의 유치한 똥고집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많은 것을 먹어오면서 내 안에서 차곡차곡 걸러지고 추려진 데이터로 형성된 고집이다. 물론 그 고집의 데이터는 개인의 역사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이기에 나에게 잘 맞고 나에게 정답인 것이다.
이건 단지 먹을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일상의 태도나 삶의 방식에 대한 것에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먹을 것으로 시작된 생각을 더 거창하게 확장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아주 기본적인 먹을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다 보면 결국 다른 줄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부족하지 않을 테니까.
먹는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나는 나의 취향에 대해 종종 부정적인 말을 듣곤 했다. 무슨 얘기냐면,
나는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요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취향이 반대인 사람이 들으면 어깨를 으쓱하며 줄곧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겠지만. 난, 비 오는 날이면 기름에 지진 전 요리에 구미가 당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천 번의 비가 오는 동안 단 한 번의 시도도 없었겠냐마는 결론은 비슷했다. 한두 입은 맛있기도 했다. 그 횟수를 넘으면 역시 난, 이라는 탄식이 결론을 내렸다. 물론 가족들이나 많은 사람이 동석한 식사 테이블에서는 어떤 마음이 동했는지 이상하게 잘 먹을 때도 있다. 그건 그날의 분위기가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해도 그 상황을 기준 삼아 전을 좋아하는 음식으로 분류할 이유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게 내 입장이다.
튀김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튀김 요리를 잘 먹을 때는 명절에 튀김 만드는 걸 돕다가 막 튀겨낸 고구마, 새우, 오징어 등을 뜨거운 채로 그 자리에서 먹는 그 순간이다. 고구마튀김 경우는 프라이팬에 다시 데웠을 때 발동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거의 명절 때뿐이다. 일부러 돈 내고 튀김을 사 먹지 않고 평소에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대부분의 누구나처럼 치킨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치킨이라면 혼자서 한 마리도 거뜬히 해치웠다.
이런 취향 스토리를 누군가에게 풀어냈다가 공격을 받았다. 그건 당최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치킨에 환장하고 명절이면 튀김을 먹고 전도 먹긴 먹지 않느냐고. 어떤 건 종종 먹고 어떤 건 너무 좋아하는데 기름으로 한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잘못된 표현 아니냐고. 물론 내 취향을 들은 모두가 그렇게 말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얘기를 꺼낸 것은, 내가 나만의 데이터로 내린 취향의 결론에 대해 언제나 조건이 100% 완벽하게 부합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세상의 어떤 단단한 결론, 어떤 완성형 이론도 완벽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고, 나의 먹는 취향의 지론에 있어서는 치킨이 예외라는 것이다. 이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도 알고 있기에 예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취향 운운할 수 있는 것이고 나를 공격한 상대도 분명 그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살면서 우리는 이런 공격 앞에 종종 어리둥절해진다.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대화를 이어가다가 이건 틀림없이 토론의 냄새를 풍기는 주제의 대화로군, 이란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공격과 방어의 태세로 전환한다. 그리고 각 태세를 취할 때 우리는 평소의 제법 유연한 기준을 좀 더 강화시켜 자신에게 보다는 상대에게 명확하고 냉정한 잣대를 들이민다. 사회적, 법적 근거를 내세울 수 없는 비교적 사사롭고 일상적인 주제 앞에서 발휘되는, 지극히 상대적이고 개인적이기도 한 그 잣대로 상대의 말과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다.
누구나 타인에게 보다는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하고 자신에게 보다는 타인에게 자주 박하다. 그건 아마도 처음 들어 생소한 상대의 생각이 늘 품어 왔고 확신하고 있던 익숙한 자신의 생각과 부딪힐 때, 익숙한 것보다 생소한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 짧은 시간에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내가 생각이 짧았어, 이제야 네가 이해가 되더라, 시간이 지난 후에 지난 일을 곱씹어 생각해 보다가 아차 싶을 때가 있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한 후에 이성적인 사과와 화해를 건넬 수 있는 것은, 다 그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가 개인적이라거나 이기적이라는 표현을 인간 앞에 수식할 용기는 있지만 이타적이라는 수식은 함부로 아무에게나 할 만하지 않다. 누가 자신보다 타인을 더 가엾고 어여쁘게 여기고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과 행위는 감히 소수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이타적인. 헌신적인.
한낱 개인의 상대적 기준으로 누군가에게 가벼운 칭찬 건네 듯해서는 안 될, 고귀하고 이상적인 절대적 잣대로 평가되어야 할, 대다수의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만 부여할 수 있을, 그런 표현이다. 아마 다들 동의할 만한 생각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쉽게 이타적이라는 수식을 얻을 만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우리는 조금의 관용을 베푸는 것만으로 개인적이라거나 이기적이라는 수식으로부터는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관용을 베푸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하찮은 예로, 고집스러운 현미식 취향이나 치킨의 예외를 품은 맛 취향에 대해 빡빡하고 주관적인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 것으로도 관용으로 통하는 아주 작은 틈을 확보해 놓는 것이니까. 살면서 억척스럽게 나와 다름을 깎아내리지 않고 포용할 수 있다면 그 틈이 점점 벌어져 상대의 마음에도 나의 마음에도 따뜻한 빛줄기가 비치고 점점 커지고 충만해진 서로의 온기가 삶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어 줄 테니까.
다시 현미 얘기로 돌아오고 싶다.
현미 오래 먹은 사람의 노하우를 좀 첨부해 보면 어떨까 싶어서.
현미밥을 지으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보니 결론은, 현미는 역시 불려야 한다. 8시간 내외로 불리면 좋다고 해서 쭉 그렇게 해 왔다. 그래서 보통 자기 직전에 현미를 3번 정도 씻어 낸 후 깨끗한 물을 받아 불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 기상 시간에 따라 8시간 이상이나 이하의 시간 동안 현미가 물을 먹고 아주 통통해져 있다. 물에 잘 분 현미를 가볍게 헹궈내고 이제 밥을 한다. 곧 제법 찰기도 있고 먹기도 좋은 현미밥이 완성된다. 그래도 현미 소화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다시마 하나를 넣고 밥을 지으면 좋다. 다시마에는 현미의 소화를 돕는 성분이 들어있다고 한다. 다시마 때문에 밥맛도 좋아져서 깜박 까먹지 않은 날은 나도 다시마를 넣어 현미밥을 짓는다.
일반 현미를 발아시키는 방법도 좋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영양은 더욱 풍부해지고 소화는 더 쉬운 상태가 된다. 앞선 방법과 같이 현미를 8시간 불린 다음, 이번엔 물을 버리고 물에 적신 수건을 덮어두거나 랩 같은 것으로 완전 밀폐 후 구멍을 뽕뽕 뚫어 공기가 통하는 상태를 만들어 둔다. 그렇게 하루 이상을 둔다.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여름에는 좀 더 짧게, 겨울에는 좀 더 오래 두어야 한다. 딱 밥 하기 좋은 발아 상태는 현미 눈에서 싹이 막 돋기 시작할 때이다. (너무 많이 자라게 두면 안 된다고 한다) 그걸로 밥을 지으면 간편하게 제품을 사서 해도 되지만 집에서도 지을 수 있는 발아현미밥이 된다.
요리를 하면 할수록 (현대인에게 필수가 된 녹색창 검색의 도움을 받아 쌓인 정보도 포함하여) 능숙해진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는 것이 참 반갑다. 내 몸과 내 마음을 제일 잘 아는 게 나라서 나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 차곡차곡 쌓이는 건 참 괜찮은 일이다. 멋진 요리를 하는 방법이라든가 건강한 요리를 만드는 방법뿐만 아니라 내 입과 기분을 가장 즐겁게 만드는 방법을 마침내 알게 되니까. 하나, 둘, 셋.. 그보다 더 많이. 시간을 투자하면 할수록 더욱더 다양하게.
사는 것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의 기준이 다수가 지향하는 방식에 의해 측정되고 결정되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강요받아왔는데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걸 알았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의 시간이 어떻게 사는 게 정답인지 알게 되는 과정이고, 삶에는 정답이 없어 나의 정답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니까. 각자의 삶의 정답들은 너무도 다양하고, 행복을 향해 갈 수 있는 노하우가 각자에게 점점 더 쌓여가니까.
현미 얘기로 돌아가자 했는데 현미밥 짓는 노하우를 얘기하다가 또 이러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데로 가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내가 기록하고 있는 글들이 결국 이를 아우르는 큰 골격(책이라면 두꺼운 표지에 정체성을 드러내는 큰 제목)으로 귀결되는 것에 스스로 공감하고 있다. 먹고 살아가면서, 그 안에서 깨닫는 생각들이 글이 되는 이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 아예 틀리진 않았음을 안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