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짓는 일, 살아가는 일

-9 아홉 번째 일상

by 윤에이치제이

9.

오래 진득하게 시간을 들여야, 제 모습을 갖추는 것들



요리하는데 시간을 할애할 여유 없이 치열한 삶을 사는 청춘들. 그네들은 청춘을 일에 불사르고 제 몸을 위해서는 1분, 3분, 10분이면 완성되는 요리들을 맛이 아닌 의무처럼 채워 넣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인스턴트를 맹렬히 좋아하진 않았어도 요리와 거리가 멀었던 젊은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청춘의 시간을 보냈다.

요리하는 맛을 알게 되고 요리가 손에 익고. 그러다 요리가 일상의 한 귀퉁이에서 정중앙에 배치되는 예상치 못한 시간에 이르자, 비슷한 과정을 겪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와 요리법으로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한 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이 없거나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결과가 좋지 않아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도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 번을 시도할 수 있는 여유와 용기가 생겼다.

그럴 때 도전하게 되는 요리 리스트들이 있다. 보쌈, 백숙, 갈비탕처럼 간편하지 않은, 대접받는 기분이 드는 한 끼 식사들. 게다가 좋아하는 빵과 케이크를 만드는 대범함까지 생겨 훅 달아오른 요리 열정에 스스로 대견해하기도 한다. 물론 오랜 시간과 노력으로 요리를 한다는 건 오랜 시간과 노력으로 뒷정리를 해야 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해 요리 의지가 잠깐씩 꺾이기도 하지만.


오래 해야 하는 요리는 인내하는 훈련도 같이 해내야 한다.

요리 초보는 빠른 시간 안에 결과물을 내지 못하면 초조해진다. 결과물이 훌륭하지 않을까 봐 염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첫 시도보다는 반복 후의 결과물이 훨씬 좋은 것이 요리의 불문율이다.

요리도 시간이 묘약인 것이다.

물론 처음 해 본 요리가 엄청 잘 될 수도 있다. 대신 그건 시간과 노력이 쌓인 결과물이 아니라서 보장되지 않은 실력이다. 딱 한 번으로 끝날 수 있고 영원히 그 맛을 재현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초보는 데이터가 너무 부실하니까. 손맛이라는 게 단순히 손으로 한 요리 맛이 아니지 않은가. 시간과 노력으로 얻은 고유한 데이터가 고유한 지문에 새겨져 만들어 내는 맛 아닌가.

오래 해야 하는 요리는 오래 정성을 들여야 제대로 된 모습으로 완성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요리라는 행위를 오래 하다 보면 웬만한 요리를 능숙하게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쌈, 백숙, 갈비탕뿐만 아니라 돼지고기김치찜, 영양솥밥에 하물며 TV와 같은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요리까지 뚝딱. 시간의 길이에 새긴 노력 덕분에 어느새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이 모든 걸 어렵지 않게 척척 해내게 된다. 그동안의 시간을 보상받는 그 기분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이 걸려야 제 맛을 내는 요리들. 오래 진득하게 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제대로 된 결과물들. 세월이 흘러야 제 실력을 발휘하게 되는 능력들.

100세 시대에 100세까지는 아니어도 평균을 산다고 진지하게 상상을 하면 나의 20대는 요리에도 삶에도 얼마나 초보였는지. 20대가 삶의 정점이 아닌 것도 모르고. 어떤 기준으로 내 삶의 가치를 판단할 것이냐를 고민해 보면 오히려 30대도, 40대는 더욱, 50대라고 주눅 들 필요도 없이, 긴 인생의 절반 정도에 도달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창창한 나이인데. 그런데 뭐가 그렇게 조급했을까. 대체 무얼 잡으려고 한 걸까.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지 왜 몰랐을까. 하긴 그때는 그걸 몰랐으니 청춘이 가는 게 아까워 모든 게 다급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때를 이해한다. 지금이니까 비로소 이해한다.

삶이란 것이 투명하고 확실하고 보장된 것이었다면 지진 난 땅 위에 선 것처럼 모든 게 불안하진 않았을 거다. 이제 막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앞이 까마득하다. 막상 도착하면 가까운 것도 멀게만 느껴지고, 어떤 것은 가까워 보였는데 너무 멀다. 그래서 횡재한 기분이 들 때도 있고 지쳐 낙담할 때도 있다. 그런데도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 없는 미래가 어쨌든 눈앞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떨쳐버리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잠깐 샛길로 샐 때도 있고 일시정지할 때도 있고 뒷걸음질 칠 때도 있고 이도 저도 못해서 행패를 부릴 때도 있는 것이다.

돌이켜 봐야 알게 되는 것이 인생의 정의 아닌가.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는 언제나 늦은 것이 인생의 타이밍 아닌가. 그러니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초보시절에는 좀 더 괜찮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찾았어도 인내하지 못하고, 실패를 쌈 싸 먹으며 쓴 맛을 맛볼 때가 더 많았어도 이해해 주고 싶다.


그래도 안다.

어떤 요리는 오래 두고 봐야 결국 완성이 되고 그것들은 시간과 인내, 노력과 끈기가 아니면 절대 진정한 맛의 완결을 허락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맛을 구현해 내고 인정받을 만한 경지에 도달하고 싶다면 진득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대신 이런 요리는 매일매일 밥상에 올리기는 힘들다. 매일매일 먹다가 배은망덕하게도 그 귀한 음식이 평범함 이하의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오히려 그것 참 다행일 수도 있다. 우리가 좀 더 몸과 마음을 쏟아야 할 것들이 일상의 모든 것이 아니고 어떤 것들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정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물론 선택으로 차려진 밥상은 딱 그만큼의 대가라는 것은.


그러니 그저,

가끔은 공정하지 않은 선택과 대가가 변수가 되어 살면서 우리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 수도 있겠지만, 변수 때문에 인생을 사는 내내 억울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한심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 바라는 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인 시간들로 차려질 미래에 만족하면서 잘 살면 되겠다 싶다. 깊은 감동이 차오르는 훌륭한 밥상을 차리고 싶을 때는 좀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되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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