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짓는 일, 살아가는 일

-10 열 번째 일상

by 윤에이치제이

10.

엄마의 요리가 그리운데 먹을 수 없을 땐 어떻게 하죠,

당신이 보고 싶은데 사진만 남아있는 시간들은 어떻게 하죠



제품에는 단종이 있고 재료에도 단종이 있을 수 있는데 요리도 단종될 수 있나. 요리는 뭔가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재료를 활용할 수 있으니 영영 단종된다고는 볼 수 없나.

사람의 수명이 길고 길고 길어졌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거고. 언젠가 그 끝을 맞닥뜨리게 되는 게 사람의 운명이고. 그럼 사람도 단종되는 건가. 단종된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기억하는 한, 그 사람은 영원이라 할 수 있을까. 영원히 기억되는 게 가능할까.


철학자 흉내 같은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 날이 있었다.

생각의 출처는 온라인 장바구니에서 비롯되었다. 장바구니에 오래 담아두었던 제품이 일시 품절이 아닌, 품절이었고 그 이유가 그 제품은 더 이상 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영업하지 않는 단골 가게의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었을 때의 기분이 기껏 장바구니의 품절된, 정확하게는 단종된 제품 하나에 투영되었다.


제법 단골이라 할 만한 가게가 있었지. 사람이 살다 보니, 바빠서 영 시간이 나지 않는 시기도 있다 보니, 그 가게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가게 되었고. 그런데 단골가게가 사라졌다.

장소의 모습을 아예 모르는 사람의 얼굴처럼 바꿔버리고 옛 모습이어야만 순순히 따르는 추억도 빼앗아 가는 게 시간이라는 것임을 절감했다. 시간이 단골가게를 훔쳐갔다.

무심한 혹자는 그럼 같은 요리를 만드는 다른 가게를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 고마운 혹자는 제 단골 잃은 것처럼 함께 안타까워해 주겠지. 어느 건 맞고 어느 건 틀리다. 재료가 단종되어도 요리는 완성시킬 수 있고 요리할 수 없는 사람 대신 요리를 완성시킬 수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아니다. 딱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이 만들어낸 특별한 맛과 추억은 어떤 식으로든 결코 재현될 수 없다. 끊어진 비디오테이프처럼 단골가게의 맛도 기억도 더 이상 재생되지 않는다.


10년을 가족보다 더 많이 붙어 다녔던 친구가 후반기 삶에서 사라졌어. 추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실체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 문 닫은 단골가게 앞에 부질없이 서 있어도 그곳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추억도 영원을 보장해 주진 않을 것이다.

아주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는 이가 있을 것 같다. 무슨 사연인진 몰라도 마음 딱 먹고 휴대폰을 꺼내 숫자 11개를 천천히 찍은 다음 통화 연결 버튼을 누르면 되지 않느냐고. 아주 간단한 용기 하나만 있으면 보장되지 않는 영원 대신 앞으로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행복한 미래가 따르지 않겠느냐고.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라는 것의 두 글자가 주는 묘한 압박감이 어디 그리 쉬운가. 죽음의 순간에야 비로소 화해하는 피붙이도 있고 보고 싶은데도 영영 보지 못하는 생이별도 있다. 그게 쓰디쓴 인생이란 거다. 나이를 먹는다고 인생을 더 잘 알게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도 쓴맛 단맛 한 번 느껴보지 못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바뀐 번호라거나 건너 건너서도 소식이 닿지 않는다는 장벽 따위가 없는데도, 아무래도, 그와 나 사이의 지워져 버린 선이 다시 그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 것이다. 누구나 깊숙이 안타깝고 애틋한 그런 선들을 하나 이상 가지고 살아가지 않나.


엄마의 손맛을 아무리 흉내 낸다고 해도, 최고의 요리사에게 비법을 전수받는다고 해도, 과연 완전히 똑같은 맛을 구현해 낼 수 있는 것일까. 삶이, 사람이, 겉보기엔 비슷해 보여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하나도 같은 게 없고 하나도 똑같은 사람이 없는데 그 사람에게서 비롯된 어떤 것이 흠집 없이 온전히 나에게 도착할 수 있는 것일까.

엄마를 생각하면 어느덧, 찌릿찌릿한 아픔이 동반된 뭉클함이 솜뭉치처럼 여기저기 뭉쳐져 있다가 평온한 일상을 비집고 삐져나온다. 아무리 예쁘고 바르게 펴 보려고 해도 울퉁불퉁 아무 데서나 엉켜 있다가 엄마와 엄마의 기억이 소환되는 어떤 날 어떤 순간에 마음을 걸어 넘어뜨린다.

그런 날 눈물 찔끔 난다고 해도 어떤가 싶다. 찔끔 정도일 뿐이고, 엄마는 아직 내 세상에 존재하니까. 눈물이 점점 양을 불리는 건 우리의 엄마 아빠의 세월이 나의 세월과 똑같은 속도로 멈추지 않고 가고 있는 탓일 것이다. 내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나의 부모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심지어 우리 모두가 각자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다 다르지만 결국 우주의 시간은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니까. 그래서 결국은 눈물이 멈추지 않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골집을 잃어버리고 오랜 친구를 놓쳐버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상실감을 각오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어떤 조언도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오롯이 감당하고 그저 시간에 의지해야 할 뿐인 일인 것 같다.


여행을 떠나 도착한 그곳에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진을 열심히 찍어서 남기는 건 기억이 오래 힘을 발휘하지 못해서다. 몇 년을 넘어 십 년이 더 지나도 보지 않는 사진들을 클라우드에도 저장해 두고 노트북에도 저장해 두고 외장하드에도 저장해 두어 만약의 경우까지 철저히 대비해 두는 것도 말이다. 바래고 바래서 그곳에 갔던 사실의 유무마저 흐릿해질 때 그렇게 묵혀둔 사진을 보며 기억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꽉 쥐고 있는 중이다.

엄마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다. 당신은 간직하고 싶어 하지 않던 엄마의 오랜 흑백사진을 가져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 또한. 물론 아빠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은 건 아니다. 20대의 어떤 순간엔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빠의 흑백 명함 사진을 지갑 속에 넣어 다녔다. 심지어 잘생기고 늠름한 그 청년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어쨌든 ‘엄마’라는 두 글자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 너무 커서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마음,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세상 그 어떤 힘과 그에 대한 어떤 마음과도 비교할 수 없음도 말이다.


엄마가 보고 싶어 사진을 들여다보게 될 미래의 시간은 예약된 스케줄처럼 가까워진다.

그걸 언젠가는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스케줄러에 기록된 일정을 지워버리듯 지우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현재에서는 마치 그가 부재할 시간이 오지 않을 것처럼, 그 시간의 슬픔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매일 보는 대상에게 가지는 무심한 태도를 그에게 남발하는 건 아닌지. 어리석게도 말이다. 인생이 후회로 점철된 것처럼 소중한 것을 잃은 후의 후회는 늦은 것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것인지.


나이가 들면서,

엄마와 함께 살았던 시간보다 엄마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나를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눈앞에 누군가가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그렇게 차이가 크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속담은, 한 치 앞을 잘도 내다보는 대부분의 속담처럼 어쩌면 그렇게도 틀림없이 우리의 뺨을 때리는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 아닌 까닭에 내 삶과 내 마음에서 영영 사라지는 일은 없을지 모르지만, 점점 가족과 분리된 시간이 길어지니 마음을 분배하는 일에도 야박해지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도 삼시세끼 빠짐없이 밥을 먹고 살아가다 보니, 먹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자주 떠오르는 건 엄마의 밥상, 엄마의 요리다. 생존을 위한 요리에서 정성이 듬뿍 담긴 엄마의 요리를 흉내 내는 단계로 접어든다 해도 도대체가 그 맛이 나지 않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불가사의 앞에서 자꾸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에게 전화해 요리법을 낱낱이 캐내도 소용이 없다. (기억날지 모르겠으나 앞서 언급했던) 손맛, 고유한 데이터가 새겨진 고유한 지문으로부터 비롯되는 고유한 한 사람의 특별한 그 맛을, 요리법 복제만으로 완전무결하게 똑같이 만들어낸다는 게 가능하지 않아서겠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결론. 내려야 하는데 내리고 싶지 않은 결론. 그 앞에서 미래에 올 그리움이 자꾸만 걱정스럽다.


지금은, 아직까지는,

엄마의 요리가 생각날 때마다 먹고 싶은 엄마 요리 리스트를 손글씨로 적어 내려가며 본가에 내려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한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하게 될 예약된 그 미래가 오면 어떡하지.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그것을 소환할 수 없을 때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 엄마가 만든 요리를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체로 흐릿해지는 기억들에 자주 생명 연장의 숨을 불어넣는 일. 그것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더 현명한 방법은, 지금이라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부지런히, 엄마의 얼굴을 보고 엄마의 요리를 먹고 엄마의 손맛을 찬양하고 엄마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 지금까지 박하거나 박하진 않았어도 덜 소중히 다뤘던 엄마와의 시간을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고 노력하는 것.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상식적인 말과 생각을 제발, 행동하기를.

나와 우리에게 모두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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