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일곱 번째 일상
매해의 가격을 전부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뉴스에서도 연일 보도했듯 (2021년) 대파 가격이 엄청 뛰었던 적이 있다. 대파가 최고가를 찍긴 했지만 그 후로도 몇 가지 식재료가 번갈아가며 길들여지지 않은 말처럼 날뛰었던 것 같다.
동요하지는 않았다. 대파가 빠지면 쓰나, 싶은 그런 요리가 한두 개인가 마는.
나를 만족시키는 한 끼를 만드는, 결코 전문적이지도 않고 접대용도 아닌 요리를 위주로 하는 사람에게는 요리할 때 반드시!라는 경우는 없다. 나는 냉장고 털이용 요리에 제법 자신하는 사람이라서 뭐가 없으면 다른 무엇으로 대체해서 한 끼를 차려내고 또 뭐가 없으면 없는 대로 70%만 충족된 재료들로 또 한 끼 차려내기를 잘한다.
게다가 다행인 것은 원래 나는 대파보다 쪽파를 좋아하고, 쑥스러운 비밀을 고백하자면 파를 편식하는 어린아이를 꽤 오랫동안 품고 살아왔다. 이상하게 푹 익은 파김치는 잘도 먹는데 요리 속에서 흐물흐물해진 파든, 양념만 입은 채 생생하게 살아있는 파든, 파는 내게 좀 힘든 식감과 맛을 가진 식재료였던 것이다.
시간이 꽤 흘러 입맛이 변하면서 파를 건져내는 일은 없어졌다. 무엇보다 쌩쌩한 쪽파의 맛이 기가 막혀 기꺼운 마음으로 두 손 들어 항복하게 되었는데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쪽파 간장, 쪽파 쌈장 만들어 놓고 별 반찬 없이 뜨거운 밥에 비벼 먹고 찬밥에 넣어 볶아먹고. 총총 다진 쪽파를 라면에도 가득, 스파게티에도 가득, 비빔국수에도 가득. 국물 요리든 볶음 요리든 비빔 요리든 무침요리든. 너무 많지 않나 싶을 정도로 듬뿍 넣어도 참 맛있게 잘 먹게 되었다.
쪽파 예찬이 너무 길었나 싶다. 비싼 대파보다 제철의 쪽파를 좋아하는 건 이득이 아닐 수 없어 흥분했다. 내가 말하려 했던 건, 대파가 비싸면 비싼 대파를 꼭 넣어야 하느냐, 그래야 요리의 완성이냐, 요리라는 게 (국)룰이 있냐.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듣고 한 대 때리고 싶다 하면 군말 없이 한쪽 뺨을 내밀어 맞아도 싼 말이기도 하다. 제대로 요리하는 이에게는 대체재라는 선택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요리의 존엄과 품위를 해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게 너무나도 중요하고 엄격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 그릇의 요리를 진지하게 여기는 이런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은 확실히 실례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저 이것이다. 요리를 할 때 최고로 하면 좋겠지만 최하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최선만 다하자는 게 요지다. 물론 대접하는 요리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좀 더 변명을 하자면 모든 이가 늘 최고의 밥상을 차리지는 못한다. 매 끼니마다 나름의 정성을 들이지만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밥을 먹는 일이 살아내는 일과 같아서 하루하루 수고하고 최선을 다하지만 최고를 목표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가진 만큼이 그들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인 것이다.
먹는 전후의 행위가 삶에서 크나 큰 비중을 차지해서 그것 하나만큼은 무리하고 싶은 욕심은 그것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대신 그렇지 않은 것도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 대체재로 똑같은 결과를 구현해 낼 순 없어도 그것이 최선인 소소한 밥상과 평범한 삶도 있으니까. 그 밥상으로 매일의 힘을 내고 살아온 시간들이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 그러니 모든 밥상과 모든 삶들은 하나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어떤 잣대로도 함부로 평가받아서는 못쓴다.
비싼 재료로 만든 요리만이 훌륭한 요리가 아니듯,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훌륭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전시하는 삶이 행복한 삶인가. 괜찮은 삶을 산다고 증명하기 위해 무리해서 남들과 똑같이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하는 걸까.
그런 의문을 가지기 전, 어른인 척하던 치기 어린 날에는 나 또한 그런 질문을 받고 싶지도 않았고 남들과 비슷한 행보를 걷기도 했다. 그렇게 황새 쫓아가기 급급한 애처로운 뱁새처럼 살다가 뒤로 한 발짝 물러섰을 때, 나와 비슷한 이들의 틀린 그림 찾기 어려운 각 맞춘 기묘한 행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서글픈 얼굴이 되었다. 계기가 있긴 했다. 팍팍하게 살다가 몸과 마음이 퍼석해지고, 물리적인 고통의 시간과 지하 땅굴로 곤두박질치는 마음의 방황을 겨우 이겨내고 나니 그런 표정을 짓게 되었다. 내가 상상하던 미래와 부모님이 응원하는 미래의 모습이 평범한 다수의 사람이 이룬 삶과 다르지 않았는데도 그때, 그걸 놓고 싶어졌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의 기준은 그랬다.
별일 없이 청소년 시절을 지나고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누구나 꿈꾸는 기업에 입사하고 길고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 가정을 유지하고 남들 다 사는 집과 다 사는 차를 하나 이상 소유하고 그렇게 또 별일 없이 살아가고. 하지만
그건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 혹은 평범한 기준에 다다른다는 게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는 것, 살다 보면 알게 되는 슬픈 증명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그렇게 사는 게 = 행복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슬쩍 놓아버린 각 맞춘 미래가 아쉽지 않을 수 있었다. 가끔 부모의 아쉬운 내색과 한숨이 견디기 힘들 뿐이다. 삶의 기준이 화석처럼 굳어진 그분들의 바람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그분들에게는 허름해 보일 수 있는 나의 행복의 기준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근사하게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명품으로 치장한 눈부신 화려함보다 나에게 딱 어울리는 것들로 은은하게 빛을 낼 수 있는 정도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들로 그려진 그림으로 대체 불가한 작품을 만들어 남은 인생의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걸어두면 그것 참 근사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삶에서 당장 구할 수 없는 재료에 연연하지만 않아도
덜 뻑뻑하고 유연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오직 나를 만족시키면 되는
맛있는 인생을 차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