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산책 가자! 그랬더니 진짜 친구가 된 것 같아

시골살이-17

by 윤에이치제이

가을 건너뛰고 겨울 온 줄 알았던 3일 동안의 반짝 추위에 심란했었다 다행히 가을바람과 햇살이 으쌰! 기운을 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직은 툇마루에서 따스한 햇볕을 쬐며 커피를 마시기도 책을 읽기도 좋고 그래서 기분도 다시 좋아지고 있다 확실히 나는 날씨와 풍경에 예민하고 솔직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자연이 계절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하찮은 멘털을 지닌 사람이다 그렇지만 사람에 대해선 아니다 결국 나의 의지는 선택적이고 어떤 대상에 강약을 조절할 의지가 있는 대부분의 사람과 다르지 않다


산책하기 좋은 가을바람과 햇살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툇마루만 고집할 수도 없잖아요 짧고 소중한 만남에는 소극적인 나라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엉겨 붙고 치대고 팔짱을 낄 수밖에 하늘은 하늘 대로 꽃은 꽃 대로 낙엽은 낙엽 대로 열매는 열매 대로 각각의 제 색깔 대로 반짝반짝 빛나잖아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익어가듯 그 계절을 맞아 스스로 자연스럽게 익어가고 물들고 바래잖아요 그게 너무 아름다워 아깝잖아요 아쉽잖아요 애틋하잖아요 가을엔 그렇잖아요



혼자서만 산책하다가 어느 날엔 동행이 생겼다 햇살이 너무 좋아 마당에 나왔다가 마당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옆집 강아지가 그런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그시 생각했다 이제는 나를 보면 반갑다고 단거리 최고 기록을 경신할 것처럼 달려와 안기고 드러눕는 아이라서 어느 때 농담처럼 곧 나랑 산책도 가겠네 말을 흘렸었는데 그걸 한번 시도해 볼까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을 건넸지 '나랑 산책 가자!' 그러고는 대문을 열었더니 그랬더니 정말 따라나서는 것이었다


아이는 늘 가던 골목 산책길을 앞장섰다 천천히 따라 걸어가는 나를 가다 서다 뒤돌고 가다 서다 뒤돌아 확인하면서 총총걸음으로 리듬을 타며 잘도 걸었다 신난 뒤태가 귀여워 웃음이 났다 산책을 하다가 풀 냄새를 맡으며 멈추기도 하고 늘 하던 대로인 것처럼 어느 풀숲은 혼자 달음질쳐 달려가서는 볼일을 보고 뒷발질을 쳐 흙을 덮는데 혼자 우스워서 혼자 웃기 아까워서 혼자 보기 귀여워서 너 왜 이렇게 귀엽니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골목마다 나오는 아는 집은 집집마다 뛰어 들어가 한 바퀴를 휘- 돌고 다시 달려 나오는데 마치 골목 보안관 노릇을 하는 것 같아 또 웃음이 났다


너는 가자 하면 가고 이름을 부르면 달려오고 나 춥다며 징징대는 말도 알아듣는 것만 같고 나는 네가 해야 할 중요하거나 소소한 일들을 가만히 기다려 주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늘 하던 것처럼 참 자연스럽다


혼자 하는 산책과는 너무나 다른 어느 날의 너와의 산책이 나는 참 소중하고 기뻤어 그러니까 우리는 정말 친한 친구가 된 거지 나랑 산책 가자 했는데 주저 없이 내 옆에서 나와 걸음을 맞추고 속도를 맞추고 마음을 맞췄으니 그러니 나는 너와 내가 진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해 그래도 되는 거지


나는 사람에게 자주 감동받는 성격이 아닌데 그게 가끔은 걱정스럽기도 한데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옆집 강아지한테 이렇게 감동을 받는데 말이다 왜냐하면 이 아이는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제 집 마당에 있을 때에는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오거나 택배 같은 낯선 차량이 오면 우리 집 마당으로 건너와 그 낯선 것들이 사라질 때까지 마당과 대문과 나를 늠름하게 지켜 주기도 한다 그러니 어떻게 뭉클한 마음이 솟구치지 않을 수 있겠나 자연을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렇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나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걸 매 순간 깨닫게 해주는 시골집에서의 시간이 참 좋다 사랑스럽고 소중한 계절에 느끼는 지금의 시간들이 참 좋다

아무래도 내겐 이미 많은 친구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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