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말 줄이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

말 줄이는 거, 우리가 먼저 시작했거든?

by Jin

요즘 아이들은 우리를 보고 꼰대에 줄임말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그 말에 그냥 콧웃음 한번 쳐 준다. 밀레니엄 이 브런치북을 기획할 때, 빠빠오 다음으로 쓰고 싶었던 글이 바로 줄임말이다. 왜 말을 줄이기 시작했는지, 서막도 모르는 이 친구들이 줄임말을 줄줄 만들어 써대는 걸 보면서 우리도 언젠가 느꼈던 '연대감과 소속감'이지 싶은 것이다.


별다줄



이란 줄임말이 있다. 신조어라고 해야 하나.. 조금 고민스럽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쳐본다. '별다줄' 나오지 않는다. 우리말샘에서는 '별다줄'에 관한 뜻이 나온다. <‘별것을 다 줄인다’를 줄여 이르는 말.>로. 요즘 줄임말이 너무 유행하다 보니 누구나 참여하여 함께 만들고 이용할 수 있는 신개념 국어사전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방언도 가능)



https://stdict.korean.go.kr/m/search/searchResult.do


https://opendict.korean.go.kr/main



우리 때(라떼는 말이야)는 말 줄인다고 어른들에게 엄청 혼났는데, 지금은 신조어를 꽤 융통성 있게 받아들이는 느낌이랄까.(그것은 다 우리가 있어서 가능하다 이 말이야!) 어쩐지 조금 부러웠다. 지금 신조어를 만드는 세대들이 신조어라 부르는 줄임말이 언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출발점이 M세대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와이파이나 무제한 데이터를 쓰니, 굳이 길게 쓰지 않아도 된다.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그냥 “어”, “그래” 이렇게 보내도 아무 부담이 없지만, 핸드폰이 막 나오기 시작했던 그 시절의 문자 1통에 정확한 금액은 가물가물. / 기억해 내라 뉴런!!! / 20원? 30원? 그 정도 가격을 내며 보내야 했다. 게다가... 문자 1통에는 보내고 싶은 만큼 말을 보낼 수 없는 80byte라는 빡빡한 마지노선이 있었다.



A 이미지 / 80바이트 버전, 남은 무료 문자 70건이라는 것을 볼 수 있음.



A 이미지는 인터넷을 개통하면 업체에서 서비스로 주던 <한 달 무료 문자 ○건> 페이지이다. 지금은 인터넷 업체를 바꾸면, 현금으로 삼십에서 오십만 원씩 받는데, 우리 때는 저 공짜로 주는 메시지 몇 건이 뭐 그리 크게 느껴졌는지. 그리고 기본으로 제공되던 텍스트로 만들어진 이모티콘 저게 뭐라고. 글을 쓰며 괜히 피식거리며 웃고 있다.



B 이미지 / 88바이트로 더~ 길게 보낼 수 있음을 강조하는 유료 메시지 사이트



B 이미지는 80바이트에서 88바이트 까지 쓸 수 있는 메신저용 홈페이지로 볼 수 있다. 8바이트는 한글로 치면 단 네 글자가 들어가는데 그 개념이 약했던 이들은 돈을 조금 더 내고 8비트 더 쓰겠다고 유료로 결제를 했었어야 했다. 이쯤에서 우리가 집착했던 바이트(Byte) 개념을 살짝 짚고 넘어가 보자.



니들이
바이트(Byte)를 알아?!



킬로바이트(KB)에서 메가바이트(MB), 기가바이트(GB)를 넘어 테라바이트(TB)까지 눈 깜짝할 새 바뀌어 바이트라는 단위 자체가 낯설어졌지만, 우리는 전송의 가장 기본 단위인 ‘바이트(Byte)’부터 시작했다. 영문자 1개 = 1byte, 한글 1자 = 2byte. 예를 들자면,


BOY = 3byte

남자 = 4byte


APPLE = 5byte

사과 = 4byte


볼 수 있다. 그렇다면 80byte에는 한글로 작성했을 때 띄어쓰기 없이 어느 정도의 문장이 들어갈까? 40자. 외국 메신저는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누구? 다채로운 감정을 가진 민족이 아닌가.!!!


본론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띄어쓰기 하나 1byte, 조사 하나 2byte, 감탄이나 물음표 같은 부호도 슬쩍 끼어들어 byte를 야금야금 새어나가 80byte를 이미 다 써버리는 구조였던 것이었다. 아래 사진은 네이버 '바이트 계산기'에서 예시를 위해 적어보았다.


"오늘 담임 선생님이 나한테 이것저것 하라는 거 있지. 진짜 짜증 나 죽겠어. 너 오늘 뭐 해?"라고 문자를 보냈다고 했을 때, 공백을 포함한 총 byte 수를 봐야 하며, 저 문장은 83byte라 이미 용량 초과된 상태인 것이다.





여기서 한글 두 글자를 빼든, 한 글자만 빼고 띄어쓰기 하나를 없애거나, 마침표 같은 부호를 지워야 겨우 80byte에 맞춰 보낼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과 나는 자연스럽게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문장을 시전 하기 시작했다. 위 문장에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시전해 띄어쓰기를 삭제했을 때, '나랑 놀자'까지 적을 수 있다.





20~30원이 지금에야 아무것도 아닌 돈이지만 그때는 이 문자가 친구들과의 소통창구였으므로 이때 우리 세대는 머리를 굴렸고, 띄어쓰기? 부호? 80byte 메시지를 담은 20~30원의 비장한 무게 앞에서 제일 먼저 기꺼이 희생시키고 지금까지 쓰는 줄임말이라는 것이 출몰하게 된 계기였던 것이었다. / 두둥 /



80-46=34 / 17자 정도 더 들어감 띄어쓰기 없이.



어디서 시작된 줄임말인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담임 선생님은 ‘담탱’이 되었다가 ‘쌤도 되었다가 “짜증 난다”는 말은 ‘짜잉’, ‘짱나’처럼 들리는 대로, 소리 나는 대로 변주되었다. 우리는 귀에 꽂히는 소리를 그대로 문자에 옮겨보며, 마치 우리만 아는 암호를 만들어 문자를 주고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80byte라는 제한적인 공간 안에서 전하고 싶은 말을 다 담으려 우리도 모르게 스며든 삶의 지혜와 생존 감각이랄까.? 그리고 어떤 줄임말은 어떤 세대도 대처할 수 없는 감각이라 하고 싶다.



' ㅋㅋㅋ ' 와 ' ㅎㅎㅎ ', 'ㅇㅇ'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 ㅋㅋㅋ ' 와 ' ㅎㅎㅎ ', 'ㅇㅇ' 같은.. 표현들은 byte 절약과는 전혀 상관없이 발생한 줄임말이라는 것이다. ‘ㅈ’을 써도 2byte, ‘자’를 써도 2byte, ‘잣’을 써도 2byte. 결국 ㅋㅋㅋ 한 번 치면 1byte씩 3byte를 쓰는 게 아니라, 2byte트씩 총 6byte를 잡아먹는다.


효율이 떨어지는 줄임말.

그런데도 이런 줄임말들이

왜 어째서 폭발적으로 발달했을까?

그 답은 바로 그 시절 핸드폰 기계라는

환경에 있다.



지금도 소지하고 있는 핸드폰 되겠습니다. (켜짐..)



지금의 핸드폰은 터치식이라 키보드를 보지 않고 치기가 힘들지만, 터치 이전의 세대였던 우리는 자판 위치를 통째로 외워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자판을 보지도 않고 오타 없이 문자를 척척 보내던 그 시절. 누군가는 천지인이 쉽다고 했지만, 나는 천지인이 너무 힘들어서… 삼성 애니콜을 오래 쓰지 못한 기억이 있다. (TMI: LG야… 왜 접었어… ㅠㅠ)


그러다 보니, 키보드를 보지 않고 문자를 보낼 때 ‘알았어.’보다 ‘ㅇㅇ’이 훨씬 치기 편했고, “웃긴다.”라는 문장보다 ㅋㅋㅋ, ㅎㅎㅎ 같은 의성어가 훨씬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지금은 ㅋㅋㅋ 이렇게 보내면, 성의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세대에서는 ㅋㅋㅋ에도 나름의 의미가 존재했던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사춘기 여자아이들에게 너무나 잘 맞는 방식이었음을. (남자분들의 마음은 몰라서..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 줄임과 기호들은 단순한 편의를 넘어서, 그 시대의 감정 표현 방식이었고, 우리끼리만 통하는 작은 암호 같았다. 어쩌면 그 언어들은 어른들이 우리의 일기장을 펼쳐도 <이해 못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크린샷 2025-02-13 174454.png 출처 : 펭 TV


우리끼리만 통하는
그 비밀스러운 말들은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연대감을 만들어줬고,
그 연대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며,
큰 탈 없이, 어떻게든 무사히 자랐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문자 한 통에 마음과 상황을 다 집어넣고자 했던 ‘80바이트 시대’는, 우리에게 특별한 생존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했다. 짧지만 강렬하고, 단순하지만 감정이 살아있는. 데이터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는 절대로 찾아 낼 수 없는 결핍. 결핍이 없는 자리에는 아무것도 탄생하지 않는다.






5d34d272eece51f2b4983d58ccdbc83c.jpg 출처 : https://ch.yes24.com/Article/Details/20486



PS. 줄임말의 역사 앞에는 사실 숫자의 미학이 난무하던 역사가 있었다. 한국인 특유의 언어유희 감각이 터져 나오던, 아주 순도 높은 낭만의 시대. 휴대폰 이전, 삐삐의 시대!! (사실 직접 사용해 보지 못해 아는 척 다루어 보지는 못 했지만, 친구들이 사용하는 것을 훔쳐본 나!)


숫자로 마음을 축약해 보내던 그 시절의 낭만을 다시는 느낄 수 없겠지. 1004는 “너의 천사”였고,

8282는 “빨리빨리”의 상징, 7942는 “친구 사이”, 4444는 무섭기는커녕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라는 뜻을 품고 있던. 숫자 몇 개만으로 마음을 주고받던 그 시간들은, 생각해 보면 줄임말보다 더 먼저 피어났던 가장 원초적인 언어 실험이었고, 그 시절만의 은밀하고 따뜻한 정서가 담겨 있음을.



참고하면 좋을 글
출처 : 소리글 작가님 브런치
https://brunch.co.kr/@dramayoung/52



PPS.

지금 별다줄 하는 이들에게 외친다.

우리는 줄임말의 길을 개척해 둔 세대다!

말 그대로 불모지 개척단.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흰 모를 거다.


첫째가 통금시간을 야금야금 늘려가며

온갖 잔소리와 욕을 다 맞아가며 늘려놨더니

동생들은 첫째의 통금시간을 넘어

외박까지 하고 와도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처럼


줄임말도 그렇다.

우리가 온갖 혼남을 감수하며 길을 뚫어놨더니,

요즘 아이들이 자신들이 줄임말을 만들어

낸 것 처럼 여기고 사는 걸 보며..


적어도 줄임말이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는 이내 마음이다.

아니면, 말고!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