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2025년

지금은 정리 중

by Jin


2025년 12월.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혹시, 이 책 필요해? 이 정도 글밥이면 이제 너네 애 읽힐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이 장난감 필요해?"라는 말이 오갔다. 지인의 필요 유무에 따라 5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에 기억이 담긴 물건들이 담겨 줄줄이 버려졌다.


올해 몇 개의 50리터 종량제 봉투가 버려졌는지 셀 수 없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계속 버리고 싶어 했다. 신변을 정리하듯. 그런 나에게 주변 지인들이 "너는 뭘 그렇게 버리니? 얼마 전에도 버렸다고 하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나는 지인들의 말에 "아직 한가득 있어." 라며 키득거리며 웃었다.


2년에 한 번씩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이사를 다닐 때는 나의 기준에서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으로 나누어 버리고 다녔다. 물건이 쌓일 틈이 없어 왜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는 것을 '메뚜기'에 비유하는지 알 것 같았다. 메뚜기는 자기 몸 말고는 보금자리를 옮길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음을 뜻하는 것일 터였다.


아이의 초등학교 생활에 맞춰 전세가 아닌 집의 문짝만 우리 것인 이 집에 계속 물건을 쌓아왔다. 정말 필요해서 산 것도 있었지만, 절반은 나의 욕심에 가득 채운 물건이기도 했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이 오래된 고무줄처럼 쪼그라들고 서로 얼기설기 붙어 사용 시기가 지난 그 새것과 같은 물건들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버리는 만큼만 글을 쓸 수 있었다. 버리는 물건만큼의 글은 꾸역꾸역 친한 분들의 글에 댓글을 달면 전부 소진되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2025년 브런치 북 2개를 완결 내며 어떻게 한 번에 7000자씩 되는 글을 써냈는지 믿기지 않을 만큼,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브런치, 블로그 등에는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었다.


얼기설기 엮인 실타래처럼 단어가 서로 엉켜 한 줄의 글이 되지 않았고, 한 줄의 글이 되지 않는 단어들은 문장이 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내켜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사진에 차마 입 밖으로 손끝으로 내어 놓을 수 없는 내 마음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친구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래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손 편지를 적었다. 키보드로 적는 글은 잘못 적으면 dell키로 지우면 되는 것에 반해 오랜만에 쓰는 손 편지는 실수를 방지해 줄 지우개과 연필을 들고 흰 종이를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단 한 줄도 적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편지는 “안녕?”이라는 말로 시작한 후 생각보다 빠르게 흰 여백을 채울 수 있었다.


연필과 종이가 맞닿는 서걱거림이 오랜만임에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채운 편지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지인에게 보내기 전 괜히 봉투를 열어 그 글을 다시 읽어 보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려 하니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떤 뉘앙스와 감정이었는지만 기억날 뿐. 내 손 끝에서 나간 감정들은 이상하게 휘발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감정이 휘발되고 나면 내 마음에 남은 빈 공간이 있어야 할 텐데, 전혀 빈 공간이 없이 아직도 내 마음의 창고엔 짐이 가득한 느낌이다. 2025년은 어쩐지 씁쓸한 99% 초콜릿 같다. 아무리 씹어도 단 맛이 나지 않는 간간히 느껴지는 카카오의 쌉싸름한 맛에서 ‘아, 이게 초콜릿이었지’라고 생각이 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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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무에게서 아무 쓸모 없어진 낙엽은 나무로부터 떨어져 내린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인생이면 어떻겠느냐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인생이라는 말이 자꾸 삶에 의심을 가지게 한다.

바스러져 사라질 낙엽에게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내가 존재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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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2025년,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문장으로 애써오신 모든 작가님들께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2025년을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며 진심으로 인사를 전합니다.


“해피 뉴 이어.”


2026년에는 밝은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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