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리뷰] 차인표 장편소설, 인어사냥

by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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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차인표

출판 해결책

발행 2022. 10. 14


오랜만에 리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책은 차인표 작가의 장편소설 『인어사냥』되시겠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차인표라는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또 어떤 삶의 태도로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고민해 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충분히 살아갈 경제적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충분한 돈을 가지고도 그 질문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많다. 그렇기에 나는 차인표가 던지는 질문이 단순히 조건의 산물이 아니라, 오랜 사유의 결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리뷰에서는 『인어사냥』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고민과 함께,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내가 오래도록 붙들어 온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 소설은 어부 박덕무와 그의 아내 임씨, 딸 영실, 아들 영득이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중, 아내 임씨가 병으로 죽고 이어 딸 영실마저 같은 병으로 죽음을 선고받으면서 시작된다.



그때 공 영감이 나타나고, 박덕무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소한의 죄책감과 소망, 그리고 욕망 사이를 오가는 박덕무의 내적 갈등과, 그로 인해 흔들리는 그의 삶의 가치관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딸 영실은 인어를 끓여 만든 기름이 과연 자신을 살릴 수 있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설령 그 기름이 약이 된다 하더라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가치관에 따른 선택이다.



영실과 영득은 잡혀온 새끼 인어들에게 찔레와 짱아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이미 마음을 주었다는 의미와도 같다. 아이들이 새끼 인어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동안, 공 영감은 울지 않는 새끼 인어(울면 어미가 찾아와 그 어미를 끓여 기름을 낼 작정이었다.)를 향해 분노를 느끼고, 새끼 암컷 인어라도 잡아 끓이자며 박덕무를 윽박지른다.



이에 영실은 “어마이가 없는 아이는 울지 않아.”라는 말을 통해 이들이 어머니를 잃은 인어 남매임을 암시하지만, 딸을 살리고 싶은 박덕무에게도, 인어 기름을 원하는 공 영감에게도 그 말은 닿지 않는다.



공 영감의 정체는 소설 곳곳에서 암시된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서 오직 자신만 남아 있다면, 그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소설에서는 그 존재가 인어의 형태로 등장하지만, 이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 혹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금 묻게 된다. “사람답게 살려면 먹지 마라.”라는 문장이 과연 인어 기름에만 해당하는 말일까.








[마음에 드는 문장]



P.207

덕무는 이제까지 공 영감이라는 한 인간에게서 묻어나던 불쾌감을 일면 납득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외롭게 살다가 노년에 불구가 된 질곡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평생 외톨이로 가족도 없이 홀로 살아온 삶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사랑받거나 사랑할 살마 없이 살아온 그 삶이 얼마나 적막했을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공 영감의 표정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나 불쾌감이 아니였다. 이질감이었다.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말하는 듯. 표독함과 악랄함으로 가득 찬 공 영감의 얼굴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사라지고 욕망과 폭력, 살기만 남아 있었다. 인격과 예의는 차지하더라도 인간의 성품과 본성까지 벗어던지게 만든 그것. 오로지 목적을 위해 무자비하게 폭주하는 날것의 감정이 공 영감을 지배하는 듯 했다. 덕무는 긴장과 불안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항변했다.



P225-6

그렇지만 아부지, 아무리 그래도 나 살자고 찔레를 먹을 수 없어요. 찔레를 먹고서 살고 싶지 않아도. 비록 찔레는 사람은 아니지언정 이치를 모르고, 도리가 없고, 판단을 못하는 짐승이 아이어요. 나와는 다를지언정 나만큼 귀하고 소중한 생명이에요. 아부지, 나도 살고 싶어요. 아부지랑 영득이랑 서로 보듬어 주며 살고 싶어요. 생명을 느끼며, 귀하게 여기며 말이에요. 그게 사는 것 아니겠어요?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숨만 쉬는 건 원하지 않아요. 그건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거니까요. 죽은 나무가 서 있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니듯, 사람이 새월만 보낸다고 사는 게 아니잖아요. 단 하루라도 사랍답게 살고 싶어요. 그래서 찔레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해요.



P252.

영실이는 나무처럼 살고 싶어 했다는걸. 그 누구도 해지지 않고 살다가, 생명이 다하면 다음 생명에게 자리를 고스란히 넘겨주길 원했다는 걸. 하루를 살더라도 나무 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 했다는 걸 아부지가 잊은 것 같대요.



P229.

-도둑맞은 내 인어를 찾으로 가 봄세.

공 영감은 그새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영감님 말은 바로 합시다.

그 모습을 본 덕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인어는 내 딸에게 주려고 내가 잡았고.

물건을 찾던 공 영감은 덕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말했다.

-내가 잡은 은인어라.. 어디선가 들어 본 소리군. 예전에도 그런 말을 운운하던 자가 있었지..

...

-초라할지언정, 추한 욕망을 좇으며 살지는 않을 거요.

덕무는 작정한 듯 말의 날을 세우며 반발했다.

-욕망도 일종의 생각이지. 살아남기 위한 도구일 뿐이야.

-욕망이 지나치면 품은 자를 삼켜버립니다. 어느 순간 주인이 종이 되고, 종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P258.

"얘야, 먹지마라. 그건 저주야. 아무리 먹고 싶어도 먹지 마라." 공랑이 떠나자 새 떼가 하늘을 가리고,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 번개가 치고, 해일이 밀려왔다. 멀리서 마을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들렸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바다를 보며 서 씨 할머니는 중얼거렸다.



"사람답게 살려면 먹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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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태어나 버린 우리는 탐욕과 욕망에 점철(點綴)될 수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과연 탐욕과 욕망을 내려놓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저마다 품은 소망은 언제, 어떤 순간에 욕망으로 변해버리는 걸까.



우리는 그 경계를 인지할 수 있을까. 애초에 각자의 작은 소망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하고 있기는 할까. 이미 크게 부풀어 버린 욕망을 여전히 ‘작은 소망’이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소망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고통으로 다가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외면하는 것일까. 정말로 알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것일까.



셋 다 일까.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4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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