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리뷰] 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

by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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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진석

출판 소나무

초판 2013년 5월 6일

개정판 2023년 12월 10일


나와 친하게 이웃하는 분들이라면 내가 디자인을 전공임을 아실테다. 그래서인지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제목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무늬는 점에서 시작해 선이 되고, 그 선들이 모여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 만약 점으로만 무늬를 만든다고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하나의 사건이 하나의 점이라면, 빼곡히 쌓인 나의 에피소드들은 선이 되어 나만의 결을 만든다.



그리고 그 결들은 오랜 시간을 통과하며 겹쳐지고, 끝내 죽을 때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무늬로 완성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은 아직 완성이라 부를 수 없다. 살아가며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점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에게 친숙하고도 낯선 단어.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의 생각을 짧게 곁들이자면,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온 사상과 문화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라 생각 한다.



즉, 인간의 가치와 인간만이 지닌 자기표현 능력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의 문화는 쉽게 표현해 보자면 의식주로 설명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의식주는 결과일 뿐이고,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의 그 밑바탕에는 인문학적 사유가 깔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인문학에 대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출처의 기억이 없음.) “먹고살 만해야 인문학이 발전한다.” 먹고살 만한 사람이 인문학을 발전시킨다는 뜻으로 어째서인지 꽤 오래 내 머릿속에 남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여유가 있어야 삶의 중간 중간 우리는 왜 이런 형태의 재질의 옷을 입고, 왜 이런 다양한 집들의 형태에 살며,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김치, 고추장과 같은 것인지 생각하고 물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바쁘게 돌아가는 이 사회에는 생각하고 묻기 보다는, 남들이 하니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라는 이유로 일괄된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으므로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관된 삶의 방식으로 사는 ‘우리’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기보다 그 집단성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나답게 사는 것. 인문학은 ‘우리 중 하나’가 아니라,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토대라 생각 한다.





[마음에 드는 문장]



사실 목차 부터 마음에 들었다.


이념은 '내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다.(65) 부터 시작해 그 무거운 사명은 누가 주었을까.(73), 우리는 더 행복해지고 유연해지고 있는가.(91)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는가?(107) 멋대로 해야 잘할 수 있다.(132) 지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161).. 를 포함하여 무엇보다 <대답만 잘하는 인간은 바보다.(256) , <장르는 나의 이야기에서 흘러나온다.(277)>는 지금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만 모았다.



p.11


왜 비로소 사람이냐? 가치 표준에 의해 인도되지 않고, 자기에게만 고유하고 있는 비밀스런 힘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p.12


외국 철학자들 이름을 막힘없이 들먹이면서 그 사람들 말을 토씨 하나까지 줄줄 외우는 것보다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애써 자기 말을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자. 이념으로 현실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현실에서 이념을 새로 산출해보려는 자. 믿고 있던 것들이 흔들 때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자... 봄이 왔다고 말하는 대신에 새싹이 움을 틔우는 순간을 직접 경험하려고 아침 문을 여는자.



p.70-71


하생들이 쓰는 말을 찬찬히 살펴보았더니, "~인 것 같아요." 라는 말이 입에 배었더군요. "오늘 수업이 어땠나요?" 물어보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중략) 재미있는 것 같다, 맛있는 것 같다, 더운 것 같다, 즐거운 것 같다, 슬픈 것 같다.... 여러분, 대체 이런 말들이 가능한 겁니까? ...(중략) 말꼬리 잡기가 아니에요. 이건 가장 원초적이며 단순한 욕망조차도 무언가 불확실하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거예요. 즐거운지, 재미있는지, 슬픈지를 자기가 모르는 거예요. 지금 자기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데도 말이죠.



p71-72 신념과 이념과 가치관은 기본적으로 집단이 공유하는 것입니다.... (중략) 신념과 이념과 가치관, 즉 '우리의 것'을 벗었다는 게 뭐냐 하면, 바로 '내'가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나'를 가두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나'를 가두는 감옥입니다. 내가 이념 등과 같은 감옥을 벗어난다는 말은 그것들이 더 이상 주인 행세를 못하게 된다는 뜻이죠? 그러면 뭐가 남을까요? 뭐가 남아서 주인 자리를 차지할까요? 바로'나'입니다. 바로 온전한 '나' 일 수 밖에 없습니다.



p85


자기가 자기로 사는 방법은 별다른 게 아닙니다. 반드시 따라야 할 것으로 자리 잡고서 자기를 짓누르고 있는 체계로부터 이탈하는 길 뿐이에요. .. (중략) 혼자 있을 때 흥얼거려지는 노래 속으로 자기가 들어가 보는 일이 바로 인문학적 통찰로 나아가는 길과 같습니다.



p280


이야기로 할 수 없는 것, 그건 자기 것이 아니에요. 이야기로 할 수 있는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중략) 자기로 부터 나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힘이 없습니다. 자기로부터 나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면 아름답지도 창의적이지도 않습니다. 나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장르는 자기로부터 나온 이야기에서 흘러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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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인문학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왜 우리가 ‘나’로 살아야 하는지를 어떻게 살아야 ‘나’로서 살 수 있는지를 묻는 책에 가깝다. 이 책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책 리뷰는 저의 개인 블로그와 동일하게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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