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완
출판 김영사
발행 2020년 5월 30일
아침부터 내가 잘못 봤나 싶었다.
특수 청소업자에게 예약 메일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사람. 그는 자신의 사후 일들을 정리하며 자신보다는 자신이 키우던 아이들을 걱정했다. 아이들이 잘못될까 염려했고, 혹시라도 주변 이웃들에게 피해가 갈까 마음을 썼다.
그런데 왜, 어째서 자신은 돌보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자신에게 반만, 아니 그 반의 반만이라도 자신에게 쏟았더라면 어땠을까. 문 밖에서 낑낑거리며 주인을 걱정하는 아이들의 소리에 창과 방문을 막았던 테이프를 뜯어내고, 망연히 밖으로 걸어 나와 그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울다 다시 살아갈 결심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생각 끝에 문득 특수 청소업을 하며 글을 적은 김완 님의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이 떠올랐다.
통계청 「2024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전국 자살 사망자 수는 1만 4,872명,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이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그런 물음 끝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은 단숨에 읽혔고, 읽는 내내 슬픔과 참담함을 가눌 길이 없었다.
책에서 죽은 이들의 집을 치우는 일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다.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는 그들을 끝내 그 지점까지 밀어 넣은 세상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집은 한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이다. 사글세이든, 월세이든, 전세이든, 자가이든 상관없이 그곳은 차갑고 서늘한 세상에서 몸을 누이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어야 할 자리다. 그런데 누군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삶을 포기한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비용이라 할 것도 없지만 화장대에 올려두었습니다.”라는 유서의 문장을 읽으며 떠올랐던 에피소드는 ‘가난한 자의 죽음’이었다. 그 이야기 속 ‘전기공급 제한 예정 알림’이라는 문구가 찍힌 사진 앞에서 나는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날짜를 보자 문득 머릿속에 무엇이 희붐하게 떠올랐다. 건물관리 회사 직원이 내게 일러준 주검 수습 날짜를 놓고 셈해보니, 전기공급 중단 예정일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 겹친다... (중략) 이 비정한 도시에서는 전기가 끊어지면 삶도 끝나는 것일까?
독촉이 이어지다 마침내 전기가 끊긴 날, 그는 사람 키보다 높은 냉장고 앞에서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중략) 이 죽음을 순수한 자살로 받아들여야 할까? 목숨을 끊은 것은 분명 자신이겠지만, 이 도시에서 전기를 끊는 행위는 결국 죽어서 해결하라는 무언의 권유 타살은 아닐까.
체납요금을 회수하기 위해 마침내 전기를 끊는 방법, 정녕 국가는 유지와 번영을 위해 그런 시스템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가?(46쪽)
그녀는 화장실 위 천장에 연결된 도시가스 공급 관에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것이다. 바닥을 닦다가 앉은 채로 잠시 천장의 가스관을 올려다본다. 문득 내가 그녀의 시점으로 이 공간을 내려보는 듯하다. 저기에 매달렸다면 그녀가 생에서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잠시 뒤에 내가 분해하려는 바로 저 텐트의 정수리였을 것이다. 시도, 철도 모르고 찾아오는 인간의 상상이란 잔인하다. 모든 살림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삶을 끝내려는 그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17쪽)
자살 직전의 분리수거라니,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이전에 다른 자살자의 집에서 번개탄 껍질을 정리해 둔 광경을 본 적은 있지만, 이것은 너무나 본격적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착화탄에 불을 붙이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중에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고? 그 상황에서 대체 무슨 심정으로? 자기 죽음 앞에서조차 이렇게 초연한 공중도덕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막강한 도덕과 율법이 있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마저 이토록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는가.(중략)
- 서른 살이나 됐을까? 착한 분이었어요. 인사성도 바르고, 맨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인데...
- 매년 설날과 추석엔 양말이나 식용유 세트 같은 것들을 준비해서 주곤 했어요.
-아무튼, 정성껏 잘 정리해 주세요. 남 일 같지 않아서 하는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잘 살아야 하는데... 진짜 남 일 같지 않아요.(25-27쪽)
책을 읽는 내내 슬픔이 날갯죽지 안쪽까지 밀려들어왔다. 울지 않으려 애쓴 탓인지 날갯죽지가 저릿저릿했다. 삶과 죽음은 하늘과 땅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삶의 지척에 죽음이 있고, 죽음의 지척에 삶이 있다. 우리는 그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다만 아직 삶 쪽에 조금 더 기울어 있을 뿐이다.
[나의 평]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때로는 조금 더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끝내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의 다짐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지탱해 줄 보다 촘촘하고 실질적인 제도와 법이 필요하다. 물론 어떤 제도든 악용하는 이들은 생겨난다. 그럼에도 그 가능성을 이유로 손을 놓는다면, 정작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닿지 않는다.
누군가가 집이라는 공간에서 삶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최근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에는 다양한 이야기를 기고할 수 있지만, 저는 당분간 책 서평을 중심으로 연재하려 합니다. (아직은 두 개뿐이긴 해요- 소곤소곤)
같은 책을 다루더라도 블로그나 브런치처럼 개인적인 공간에 쓰는 글과 기사 형식으로 올라가는 글은 아무래도 결이 다르다 보니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구독, 좋아요, 댓글… 몽쉘이 좋아합니다. >ㅁ<
벗뜨! 응원 NO!
배우자님께서 응원해 줄까 하시던데.. 아니!!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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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돈은 소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