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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Feb 14. 2020

3. 오늘도 어김없는 금요일

#3

요 며칠 눈이며 비며 한파에 몇달만에 겨울다운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정말 봄이 오려는지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요. 저희처럼 작은 가게일수록 세상의 변화에 민감한 것 같아요.


전에 동네 치킨집 사장님의 아드님이 쓴 치킨과 회계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기본적으로 비오는 날, 야구하는 날이면 치킨집은 정말 정신없이 바쁘답니다. 비오면 밖에 나가기 싫고 경기를 볼때는 치킨이 꼭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내 작은 기분들이 어떤 가게에는 직접적인 매출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면 참 신기한 기분이 들어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들과 우린 생각보다 비슷하고, 또 다르지 않나요.


제 주 업무는 SNS관리 (사실상 글쓰기) / 그외 기타 마케팅인데 지금보다 규모가 작았을 때, 또 갑자기 주문이 많이 들어올 때면 신발 포장도 자주 합니다. 사실상 못하는 일이 없죠. 처음에는 마케팅을 하러 들어왔는데 하루종일 신발 먼지나 터는 제 신세가 한탄스럽기도 했는데 스타트업 취업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슷하더라구요. (사실 스타트업 아닌 곳도...)


사회는 우리에게 하나 만으로 경쟁력을 가진 사람이 되라지만, 막상 회사에 들어가면 뭘 하든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잖아요. 덕분에 저는 스웨이드의 본드를 지우고, 야매로 신발을 수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뭐든 기술이 늘면 좋죠. 인생의 경험이려니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단순 작업들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요. 역시 손을 움직이는 게 머리를 움직이는 것보다 백번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물론, 신발을 닦는 일로 직업적인 뿌듯함을 느끼기는 힘들긴 하지만요.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노동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한 없는 우울에 빠졌다고 말했어요. 하루종일 축구공을 꿰매지만 막상 축구공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르고, 내가 만든 축구공은 내가 사기에 너무 비싸니까요. 노동은 본디 내 손으로 뭔가를 창조해내며 내 능력과 가치를 눈으로 보는 숭고한 일인데 내 노동은 브랜드에 비해 너무 저렴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렴한 건 낮은 가치를 의미하죠.


그렇게 저렴하게 일해서, 비싼 돈을 주고 또 다시 물건을 사고. 서로서로가 외로워지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정말 유명했던 영화, 그리고 요즘도 유명한 영화 '기생충'의 포스터에는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일을 할때면 가끔 떠오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신발을 수선하고, 닦고 먼지를 털어서 보냈는데 좋은 후기를 달아주시면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죠. 잘 만들어 주신 신발이 잘 팔리면 공장 사람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고요. 제 행복과 회사의 행복은 돈과 떼어 놓을 수 없지만, 판매량을 떠나서 서로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고 가치를 인정해주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먼지를 턴 스웨이드, 본드를 닦아낸 인조가죽, 주름을 핀 플랫. 공장에서 빠르게 후작업을 하다보니 소외된 부분 부분들을 면봉으로, 수건으로 문지르며 검품하고 닦아내는 일에는 생각보다 모두 수작업입니다. 아직도 기계로 못하는 일이 이렇게 만다는 게 신기 어쩌면 할 수 있는데 내 인건비가 기계값보다 쌀지도 모르지만.

금요일이 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매일매일 시간이 안가는 데 금요일은 특히 안 가기도 하고요.


다들 주말 약속이 있으신가요?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인지 거리에 사람도 없고, 개학식도 졸업식도 취소되어 어디 갈 데도 없는 심심한 날만 계속되네요. 야심차게 준비한 봄 신발들이 조회수 10씩 찍고 아래로 밀리는 걸 보는 슬픔이란 익숙해지기 힘드네요. 에이블리에서 처음으로 카테고리 베스트 1위를 찍어 봤는데 신발도 없고 공장도 일을 안해서 팔 수 없는 슬픔도요. 살면서는 인생무상 공수래 공수거를 자주 느끼지만, 회사에선 그만 느끼고 싶습니다. 하도 신경을 썼더니 위염에 중이염이 낫질 않고 사장님은 매번 전화해서 초조해 하시고... (고통)


다들 나가 놀 일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새 신발 사고, 예쁜 옷 입고 사진도 찍고. 봄꽃도 피고 사랑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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