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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Aug 23. 2023

#6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기쁨

2023년 여름

지난 일요일 아침,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에 깜빡 눈을 떴다. 아침부터 시멘트 공사를 하는 것인지 시끄러운 기계음이 차가운 새벽 공기를 깨고 온 사방을 어지럽혔다. 깨고 나서도 여기가 꿈인지 생신지 한참 깜박거리다가 손과 발의 감각을 되찾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지상에 있구나, 또 누군가 도로를 깔고 아스팔트를 다지고 있구나, 하는 걸 느리고 선명하게 알아챘다. 잠을 잘 못 잤는지 온몸에 바짝 힘이 들어가 저리고 아팠다. 비몽사몽 손발을 모았다 폈다를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난 비로소 현실에 발을 디뎠다. 아침이다. 아직 채 달궈지지 않은 설익은 새벽 공기가 맑고 추웠다.


요즘 나는 최신 유행이라는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했다. 사실 중학교 3학년 이후, 디지털 디톡스는 단 음식 줄이기처럼 '해야 하지만 지금 하기는 번거로운' 숙제로 오랫동안 함께 해왔다. 고등학교 2학년, 아니 3학년이었을까 당시 수학선생님이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이상하게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다며 본인과 남편은 늘 발밑에 두고 자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 당시 언니가 대학 때문에 대전에 머물렀고 난 언니와 밤새 통화를 하다 잠들기를 벌써 몇 년째 반복해 왔기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듣고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딱히 실천해야겠다거나 경각심을 느끼진 않았다. 사실 학창 시절엔 대학입시보다 무서운 게 없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지도 않았는데 이것저것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이 해마다 늘어 간다. 단 음식 줄이기, 식후 운동으로 혈당조절하고 당뇨병 예방하기부터 디지털 디톡스까지. 어린 시절에는 알지만 귀찮아- 하고 넘겼던 것들을 이제는 기어코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어딘가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남 일이라고만 여겼던 것들이 불쑥 내 일이 되어서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조선시대 평균 연령은 삼십 대라더니, 고 김광석께서도 <서른 즈음에>라는 싱숭생숭한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이젠 인생의 시작이니 뭐니 부르는 나이지만 과연 서른은 한풀 꺾이는 나이인 것도 같다. 어느덧 나도 조금씩 죽어가고 있구나, 슬프진 않고 생경하고 낯선 기분이 든다.

친남매처럼 지내는 둘째 이모네 오빠, 즉 나의 작은 오빠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공장 일로 바쁜 터에 라면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작은 오빠와 언니는 우스갯소리로 '우리 집 맛의 고향은 MSG'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게다가 내가 작은 오빠 집에서 살던 때엔 마침 최현석, 백종원 등의 셰프가 부상하여 바야흐로 '남자도 먹고살려면 요리하자'라는 분위기가 퍼졌던 때라 오빠는 매번 어디서 그렇게 봤는지 만두를 튀기고 국을 끓이곤 했다. 오빠는 그렇게 만두를 좋아했다. 라면에도 만두를 두세 개씩 넣었고, 그냥도 먹고 튀겨도 먹고 삶아도 먹고 이런 데까지 만두를 넣어? 싶을 정도로 온갖 요리에 만두를 넣어 든든하게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오빠가 워낙 만두를 좋아하고, 군만두를 구울 때면 나름의 철학도 있던 기억이 워낙 선명하여 오빠의 생일 선물로 때마침 설 선물로 들어와 맛있게 먹었던 취영루 만두를 다양하게 사서 보냈던 때가 있다. 오빠한테 감사 인사를 받고 몇 달 뒤 만두는 잘 먹고 있나 싶어 전화를 하니 오빠가 언제적 이야기를 하냐는 듯이 생뚱맞다는 목소리로 '그거야 진작 다 먹었지. 국에도 넣고 라면에도 넣고.' 하고 여섯 봉지를 그새 혼자 해치웠다고 이야기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우리 집에서는 다들 입이 짧아서 만두 한 봉지를 먹는데도 쉰세 월이 걸리는데 여섯 봉지를 혼자서 그새 다 먹었다니.

하기야, 그 당시 둘째 이모네 식구들은 우리 집에 비하면 굉장히 잘 챙겨 먹던 사람들이었다. 하루는 내가 생일로 도넛을 한 박스 받아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고민하다가 그냥 나눠서 빨리 해치우자는 생각에 저녁 식사를 하던 작은 오빠와 언니에게 편하게 먹으라고 한 박스를 건넸던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신기하게도 때마침 식사를 마친 참이었는데 방금 밥 먹었는데... 하면서 빈 접시에 도넛을 한 개씩 올려 금새 해치웠다.

우리 엄마와 나는 틈만 나면 체해서 하다 못해 영양제나 음료수를 먹어도 체하는 터라, 그 먹성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한 삼사일 후 혹시 도넛이 어디 있는지 묻자 언니가 말하지, 그건 진작 다 먹었는데 하고 미안해하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당시 우리 집에는 도넛이 들어오면 엄마는 팍 인상을 찌푸리며 이걸 어쩌면 좋아. 하고 곤란해했다. 그렇게 포만감이 드는 음식은 우리 집 냉장고에 들어오는 순간 십중팔구 상해서 버리기 일쑤였다. 엄마와 둘째 이모는 나와 언니처럼 언니 동생 사인데, 어쩜 두 식구가 그렇게 달랐을까.

그랬던 작은 오빠가 최근엔 건강 관리로 여념이 없다. 내 기억 속의 오빠는 밤새 게임을 하고 또 밤새 공부를 하고 야식으로 라면도 하나씩 뚝딱 해치우고 '운동? 해야지, 해야 하는데...' 하곤 도망치는 흔한 청년이었는데 최근에 건강검진에서 글쎄 당뇨 고위험군이란다. 의사도 이 정도면 당뇨에 걸렸어야 했다는 식으로 말해서 오빠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가족 중 유일하게 국가공인 의사 면허증을 가진 언니는 그나마 당뇨 유전자가 없어서 아직도 안 걸리고 버텼던 거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으나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대신 최근 식단부터 운동까지 한층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친척 언니 말로는 외식을 줄이고 직접 해먹으니 음식 솜씨가 날로 늘어, 이젠 아주 장금이란다. 우린 언제나처럼 농담으로 웃고 넘겼지만 새삼스레, 그래 오빠도 그럴 때가 됐지. 하고 잔잔한 충격이 었다.

최근 둘째 이모부는 파킨슨병을 진단받았고, 큰 이모부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계신다. 내 기억 속에서는 정정하실  모습이 여태 선명한데 두 사람도 이젠 예전 같지 않다. 이번 겨울엔 할머니와 꼭 해외여행을 한 번 가야겠다 결심하게 된 계기도 할머니가 더 이상 정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기 때문이다. 혼자서 100포기의 김장을 준비하고, 밭에 고추, 오이, 고구마, 옥수수, 토마토 등등을 10년째 일구고 계시던 우리 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아주 정정하셔서 매주 이리저리 여행도 잦았다.

칠십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매주 소래포구로 남해로 여행 다니던 할머니를 보면서 할머니도 참 안 늙어 하고 교만한 생각을 했던 게 엊그제인데, 바로 이번 주에 할머니를 만났는데 이상할 정도로 가는 귀가 먹으신 상태였다. 바로 코앞에서 할머니, 할머니 부르는데 들리지 않는지 달그락 달그락 제 할 일만 하셨다. 덜컥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아 할머니도 나이가 많이 드셨지. 그러자 문득 올해 연세가 여든하고도 둘이라는 사실이 성큼 다가왔다. 엄마 말로는 최근까지도 정정하시더니 근래 코로나로 한 번 앓으시고, 지난겨울에 심히 체해 일주일을 내리 앓으시며 5킬로가 빠지시더니 갑자기 늙으셨다고. 사람은 이렇게 하루아침에 나이가 들기도 하는구나. 그러나 마냥 두렵거나 슬프진 않았다. 그래도 우리에겐 아직 남은 시간이 있으니까. 겨울엔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으니까.

최근 선생님과 통화하다가 고양이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집 고양님께서는 작년 봄에 암 수술을 한차례 마친 터라 혹시 더위라도 먹을까 걱정되어 인간은 땡볕에 걸어 다니는데 고양님 너무 덥지 않게 에어컨을 약하게라도 틀고 나닌다고 이야기하니 글쎄 선생님께서 너 옛날에 고등학교 때 잠깐 고양이 키웠었잖아 그때랑 다른 고양이냐고 물었다. 어쩐지 웃겨서 선생님 그 고양이가 지금 이 고양이에요! 하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 아직도?라고 하시는 거다. 그렇지 우리 고양이도 강아지도 올해 열두 살이다. 구름이의 까맣던 눈이 조금씩 하얗게 되는 걸 보고, 작년엔 돌연 슬프고 무서워 강아지를 안고 있다가 펑펑 울었던 적도 있다. 우리 구름이는 아직 잘 걷지도 못하던 때, 까만 털로 나에게 왔는데. 그새 털색도 많이 바라고 몸엔 여기저기 검버섯이 피었다. 아직 애긴데, 아직 어린데. 내가 갑작스레 울자 우리 아기 강아지는 어쩔 줄 모르고 배를 깐 채로 몸을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내 손을 핥아 주려고 난리였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또 사랑스러워 우는데 웃음이 나왔다.

휴대폰 속에 빠져 있으면, 세상만사로부터 내가 도망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문득문득 든다. 하루가 다르게 나이를 먹고 자라기보다는 늙어가는 세상으로부터. 매일매일 이러쿵저러쿵 새로운 사건이 터지는 인터넷 세상에 있다 보면 현실의 일은 잠시 잊기 마련 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퇴사 후 거기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듯하여 걱정도 들었다. 9월부터는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하고, 올해부터는 글을 더 많이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여태 나는 인터넷을 보면서 겁내고 웃고 슬퍼하고 부러워하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그래서 이참에 책이나 좀 보고 글이나 더 읽자 싶어 어딜 갈 때마다 집에서 먼지만 쌓이던 책 몇 개를 바리바리 싸 다니고 있다. 언니는 뭘 그렇게 책을 많이 챙기냐고 놀랐지만 SNS를 지우고 휴대폰을 멀리하니 이상하게 하루가 길어서 요즘 어쩔 줄을 모르겠다.

올해 가을부터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아마도 내가 열몇 살 때 태어났을, 매일 사람이 태어난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던 시절에 세상에 나왔을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하루가 다르게 바쁜 삶을 보내고 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나의 새로운 삶이 이제 본격적인 시범 운행을 시작한다. 누군가는 죽어가는데 누군가는 또 태어나고, 나와 형제, 자매들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낡아가는 신체를 이리저리 기워서 쓰는데 누군가는 이제서야 대학 입시로 정신이 없다. 슬프거나 하진 않다. 난 옛날부터 나이 드는 게 너무 좋았다. 어린아이가 말해봐야 사람들이 무슨 신경을 쓰겠는가. 세상에 처음 난 사람들의 생경한 말씨가 사실 제일 귀한 법인데, 나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쉰 소리로 여기기 일쑤라 퍽 섭섭하고 서러웠던 기억이 많다. 그래서 나는 일곱살 때부터 얼른 고등학생을 마치고 어른이 되었으면 하고 매년 앞으로 13년, 앞으로 10년 하고 매일같이 스무살을 기다렸다. 아직은 어른으로 사는 게 좋고 나이 드는 게 기대가 된다. 별로 많지도 않은 나이지만서도.

죽지 않고, 건강을 생각하며 남은 해를 보낼 결심을 하는 건 언제 익숙해질까. 난 사는 것이 두려워 틈만 나면 죽어야겠다 죽자. 그냥 죽어버리자 생각하며 살았던 터라 가을의 이 날씨가 참 낯설고 새롭고 반갑고 그렇다. 여러사람 죽어나게 만들던 무심하고 정없던 폭염도 이제 한풀 꺾이고 아침 공기가 갑자기 서늘해졌다. 어서어서 겨울이 됐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그리운 타이페이에 닿을 수 있게. 할머니 이모 손잡고 함께 여행이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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