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는 수많은 국산 차종들이 대거 출시됐다.
오늘은 도로에서 거의 보기 힘든 국산차종 5종을 한 번 살펴보려고 한다.
쌍용자동차에서 1993년 8월에 출시하여 2005년까지 생산했던 4WD SUV. 대한민국에서는 13년간 약 25만 대가 판매되었다. 대우 맵시나, 대우 누비라, 삼성 야무진, 대창 다니고와 함께 몇 안 되는 순우리말 이름의 자동차이기도 하다.
'무쏘'라는 차량은 유럽(영국)에서는 굉장한 인지도와 명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코란도 스포츠와 렉스턴 스포츠의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무쏘'라는 이름으로 시판되고 있다.
국산 4WD 차량 중 처음으로 ABS를 장착하였으며, 국내 최초로 전자식 4WD 전환 스위치를 채용하였다. 경쟁차종인 갤로퍼는 오리지널 미쓰비시 트랜스퍼 케이스를 장착하여 2H, 4H, 4L 전환을 위해서는 주행 중인 차량을 멈춰야 했으며 다시 2륜구동으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후진을 해야 했지만, 보그워너의 트랜스퍼 케이스를 장착한 무쏘의 경우는 시프트 온 플라이 시스템을 채용하여 2H에서 4H로 전환할 경우 시속 60~70km 속도에서는 주행 중에도 전환할 수 있었다.
무쏘는 엔진 내구성이 뛰어났는데, 당시 OM602 엔진을 생산하던 시절의 벤츠는 '오버 엔지니어링' 혹은 '과잉품질' 이라는 이명을 얻을 정도로 원가가 다소 올라가더라도 품질과 신뢰성을 극도로 추구하던 시기였다. 실제로도 골수 벤츠 매니아들도 이시기의 벤츠가 엔진과 변속기의 내구성이 가장 뛰어났었던 시기라고 증언할 정도다.
뉴 무쏘로 페이스리프트된 이후에는 2001년까지 320LX라는 트림명으로 판매되다가 단종되었다.
포텐샤의 후속으로 마쓰다 센티아 2세대 모델을 기반으로 현대자동차의 다이너스티에 대항하기 위해 대한민국 취향에 맞게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후드탑 앰블럼과 범퍼 등을 좀더 웅장하고 권위적인 스타일로 손질해서 1997년 3월 27일 엔터프라이즈라는 차명으로 국내 판매를 개시했다. 전장이 무려 5,020mm. 전륜구동이었던 현대 다이너스티나 대우 아카디아와 달리, 쌍용 체어맨과 함께 후륜구동을 채택한 국산 최고급 대형 세단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1998년 출시된 그랜저 XG와 마찬가지로 스포츠카에 주로 장착되는 프레임리스 도어를 적용하여 도어에 유리가이드가 없고, 차체에 유리고무가 부착되어서 유리창을 내리고 문을 열었을때는 아주 독특한 느낌을 줘서 그나마 올드한 느낌의 차량에 멋을 부여해 주었다.
후륜구동답게 주행성과 코너링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했지만 하체 부품, 특히 후륜 부싱류가 내구성이 떨어졌었고 처음으로 만들어 본 조절식 댐퍼(일명 쇼바)의 극도로 짧은 수명은 문제였다. 무엇보다 1997년 외환 위기로 망해 버린 기아자동차의 이미지는 성공의 상징으로 선택하는 최고급 차량의 상품 가치를 심하게 훼손시켰다. 후속 차량급인 오피러스는 EF의 플랫폼을 활용한 현대의 전륜구동 차량이었고, 순수 기아자동차의 계보는 이 차량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1998년 3월 28일에 출시된 전륜구동 중형 세단이다. 닛산자동차의 2세대 세피로(수출명 맥시마)의 전면부 디자인을 약간 수정하고, 편의사양을 약간 수정하여 출시했다. 파워트레인을 비롯한 부품들을 모두 일본에서 수입해서 조립했다. 삼성자동차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양산 모델이다.
삼성자동차는 자체적으로는 기술력은 물론이거니와 생산 경험도 전무한 실정[2]이었지만, 당시 경영난에 빠져 자금이 필요했던 닛산자동차와 기술 협력을 맺고 세피로를 그대로 넘겨받은 덕분에 삼성자동차가 창립된 지 겨우 3년만에 초고속으로 양산 모델로 출시할 수 있었다.
삼성 마크 빼고 사실상 일본차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중형차 시장 점유율 국내 2위로 뛰어올랐다. 실제 차량의 품질 자체는 동시기의 쏘나타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았다. 1세대 SM5에 이어 마찬가지로 닛산차를 마이너 체인지했던 2세대 SM5까지 중형차 시장에서 현대 VS 르노삼성의 구도가 10년 넘게 지속되었다.
특히 SM520V에 적용된 6기통 VQ20 엔진과 SM525V에 적용된 6기통 VQ25 엔진은 닛산자동차가 설계한 명품 엔진으로 훗날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될 정도로 내구성이 상당히 좋았고 엔진 내부에는 수명이 길고 내구성이 뛰어난 백금으로 코팅된 점화 플러그와 타이밍 벨트 대신 타이밍 체인이 설치되어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하였다.
1999년 대우자동차에서 개발해 2006년까지 판매한 전륜구동 중형 세단. 프로젝트명은 V200. 초기 내걸던 캐치프레이즈는 빅 매그너스. 빅이라는 이름답게 동세대 동급 중형차 중에서는 가장 크며, 단종 시까지 약 18만 대가 생산되었다.
이 차가 무엇보다 주목받은 계기는 대우자동차가 GM대우로 막 바뀔 때 즈음인 2004년에 인기를 끈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이동건이 이 차를 타고 다닌 것이었다. 이후 박신양은 매그너스 광고의 모델로 발탁된다. 더불어 박신양은 파리의 연인에서 자동차 회사의 CEO로 나왔는데, 그때 GM대우와 SBS에서 팍팍 밀어준 차가 바로 매그너스다.
판매량은 제법 괜찮은 수준으로, 당시 중형차 시장을 군림했던 EF 쏘나타를 어느 정도 긴장하게 만든 모델이다. 1980년대 로얄 시절의 중형차 패왕 대우자동차를 어느 정도까지는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경쟁 모델에 비해 연비가 나빴고, SM5 1세대가 폭풍과 같은 인기를 끌며 EF 쏘나타와 박터지게 싸우는 터에 3인자에 머물러야만 했다.
한편 연비가 나쁘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히는데, 애초에 매그너스가 쏘나타 급의 중형이 아닌 그랜저 급을 타겟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고급 옵션을 많이 넣고 소음 차폐를 위한 방음재 등을 많이 넣으면서 차체 무게가 많이 증가했다. 그러나 매그너스는 파워트레인이나 포지셔닝을 비교해보았을 때 그랜저 XG와 직접적인 경쟁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고, 쏘나타2를 고급화한 마르샤나 옵티마를 고급화한 옵티마 리갈과 비슷한 포지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륜구동 방식의 소형 해치백 타입의 승용차이자, 라비타에 이어 현대차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유럽 전략형 모델로, 막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20대 초중반을 타겟으로 작은 차체와 단단한 주행성능으로 도시에서의 이동에 적합한 모델로서 개발되었다. 1999년부터 프로젝트를 준비해 왔고, 개발 초기에는 당시 다임러 AG 산하에 있던 크라이슬러와 공동개발하려다가, 현대차의 독자개발로 돌아섰다.
출시 당시 엔진은 직렬 4기통 1.3L SOHC와 1.5L DOHC 가솔린 알파엔진이 제공되었고, 1.5L 모델은 앞문 하단부에 1.5 DOHC라는 뱃지가 장착되었다. 한편 수출용에는 1.1L 및 1.6L 엔진도 제공되었다. 변속기는 수동 5단과 자동 4단이 맞물렸고, 서스펜션은 전륜에 맥퍼슨 스트럿, 후륜에 토션빔이 사용되었다. 전기모터 방식의 파워스티어링, 충돌 감지 연료 차단 장치, 완전 차폐식 에어벤트, 휴대용 재떨이 등의 장비도 적용되었다.
한국에서의 해치백 차량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와 같은 판매에 부정적인 요소 덕분에 실질적인 판매량은 그리 많지 않았으며, 총 1,264,095대의 판매량 중 대부분인 1,179,874대를 해외 수출로 소화했다.
해외에서는 기존의 현대차답지 않은 단단한 주행 성능과 괜찮은 연비와 출력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유럽 지역에서의 평가가 좋았다고. 이러한 주행성능 덕분에 2003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소형 승용차 부문에서 올해의 차 상, 스코틀랜드의 소형차 부문 올해의 차 상, 덴마크 베스트셀러 상과 2005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같은 상을 한번 더 수상하는 등의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탑기어의 제레미 클락슨이 모든 한국차에 부정적이던 시절 유일하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