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그 이후, 시민권력을 말하다 (1)
핀란드에서는 시민이 발의한 법안을 5만 명 이상 서명하면 국회에 회부됩니다. 이 시민발의 제도는 2012년 생긴 법으로, 시민들이 발의하고 서명한 것이 국회의원이 발의와 동등한 효력을 가집니다. 핀란드의 한 스타트업이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었고, 인증의 문제도 인증기관들과 함께 해결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대통령이 시민들의 개혁안 요구를 받아들여 정치개혁법 개정안을 시민들에게 크라우드소싱했고, 이를 민회라는 기구를 통해서 해결했습니다. 민회의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3만여개가 넘는 제안들이 올라왔고, 여기서 15개의 정치제도 개혁안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앤 꼬뮤는 여러 시민단체들의 느슨한 정치적 연대입니다. 각자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의견을 수렴합니다. 최초제안 44개에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새로운 제안 16개를 더하고, 검토된 60개 중에서 우선순위를 40개 정하고, 선정된 40개의 제안을 정당의 당론으로 합니다. 이는 데모크라시 OS라는 온라인 의사결정 플랫폼을 통해 직접 수정안이나 제안을 올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와글, [듣도 보도 못한 정치] 내용 발췌, 요약.
232만. 탄핵 가결을 이끌어 낸 촛불의 숫자입니다. 우리는 압도적인 시민의 힘으로 입법기관을 움직여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탄핵 이후 국민에게 남겨진 과제를 두고 갑론 을박이 뜨겁습니다. 많은 이들이 87년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이후 주권을 또다시 군부 권력에게 넘겨주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인 시민 권력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지켜낼 수 있을까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고민중입니다. 그중 한 형태가 광장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민회' 입니다. 위와 같은 사례를 연구해온 와글에서 이 모델들을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시민 권력을 확대하는 실험을 해보자는 취지로 '온라인 시민의회'를 만들었지만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중단되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다만 직접민주주의나 민회에 관한 고민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래서 징검다리 교육공동체에서는 탄핵 이후 시민들에게 남겨진 과제를 고민하는 토론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민회'라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 '온라인 시민의회'는 왜 반대에 부딪혔는가,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민회의 형태는 무엇인가를 두고 온라인 트위터 잉여 세대부터 386까지, 교사, 프리랜서, 정치권 20년 경험자, 교육 전문가, 지역 활동가, 환경운동가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함께 모여 끈질긴 토론을 해 보았습니다. 여기서는 그 3시간 동안 13분이 함께 토론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참석자(가나다순)
강민정(이하 강), 곽노현(이하 곽), 김광철(이하 김), 노태훈(이하 노), 박성미(이하 박), 박준건(이하 준), 윤혜정(이하 윤), 이창국(이하 이), 임헌주(이하 임), 유은옥(이하 유), 전문갑(이하 전), 정대일(이하 정), 허인회(이하 허)
시민운동하는 사람들끼리는 민회의 필요성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SNS같은 온라인의 분위기는 다르다.
대부분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 조직 없이 이백만이 모여 탄핵을 이루어냈는데, 왜 무슨 조직이 또 필요한가.
[온라인 시민의회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반대에 부딪혔는가]
어떻게 시작되었나
강 - 촛불집회 기간 동안에 열린 시민평의회에 갔었다. 2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눈이 펑펑 내렸는데 사람들이 집에 안 가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민회에 대한 취지를 제대로 설명하거나, 목적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자유발언대를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 당시 행사장의 분위기였다. 이곳에서 상설 민회에 대한 요구가 다수 나왔다. 시민의회에 대한 필요성은 바로 그 자리에서 많이 나온 것이다. 그렇게 민회에 대한 압박은 꾸준한데 비상행동의 활동가들이 이를 맡을 여력이 없었고, 그 자리에 있던 와글팀이 실무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맡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박 - 그런 면에서 대중의 의견 수렴으로 민회가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 않나. 그리고 공동제안자를 모집하기 위해 제안서를 돌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왜 반대에 부딪혔을까.
대표 시스템의 문제
정 - 나도 온라인 시민의회 제안서에 공동제안자로 연명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민회는 대표가 없는 민회였다. 민회에서 누군가를 뽑는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했다. 직접 민주주의여야 하는데 왜 대표자를 선출해야 하는가?
전 - 나도 연명했다. 그런데 시민총회를 추진해서 대표자를 뽑는 개념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주최측이 추진했던 모델이 유지된다고 한다면, 홍보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들어 유명인이 필요하다면, 사람들에게 이런 모임이 있다고 알리는 알리미 차원의 대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달의 문제
박 - 나는 전달의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예를들어 나는 앱솔루트 코리아 촛불집회 광고를 보면서 불쾌했다. 촛불 사진을 수정해서 술병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그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촛불의 규칙을 바꿨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시민의회도 마찬가지의 느낌을 준 것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들의 기분을 불쾌하지 않게 하면서 다가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취지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보통 백여명이 토론을 하면 모둠을 만든다. 그리고 각 모둠에서 토론된 내용을 모둠의 대표가 모아서 중심으로 가지고 간다. 그렇게 의견을 모아서 배달하는 배달부에 불과한 역할이 온라인시민의회에서 생각했던 대표 라고 알고있다. 하지만 이게 왜 전달이 안 되었을까.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데, 전달이 제대로 안 되었다면 전달한 사람의 잘못인가? 이해 못한 사람의 잘못인가? 난 전달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앱솔루트 광고에서 누군가 불쾌감을 느꼈다면 그들의 예술 컨셉을 이해 못한 소비자의 잘못이 아니듯이, 주최측은 좋은 의도를 가져갔지만, 그것을 이해 못한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단체의 개입과 조직화의 문제
윤 - 온라인시민의회 같은 경우는 나는 시민의회의 실패가 아니라 주최측의 실패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 사이트가 오픈되자마자, 온라인의 모든 이들이 이걸 누가 하는가 그들이 어떤 집단인가를 집요하게 찾아냈다. 그리고 그들을 비판했다.
국회에 우리의 목소리가 전달 되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지점에는 사람들이 그런가 보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중간에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 커미션을 챙기겠다는 모양으로 비춰진 것 같다. 문제는 다른 단체들도 그렇게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누가 주최하던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 우려했다.
단체가 조직되고 유지되려면 필연적으로 사람과 돈이 필요한데, 이렇게 큰 일을 치루는 데 어떤 특정된 단체가 개입되었다, 하면 본질과 관계 없이 그쪽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많은 이들이 그쪽으로 돈이 모인다고 생각한다.
노 - 민회가 왜 필요한가부터 생각해 보자. 요즘 트위터에서는 사람들이 민회가 왜 필요한지 전혀 못 느끼고 있다. 반면 시민운동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민회가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 열기가 식으면 안된다, 이걸 끌고 가야한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 조직 없이 이백만이 모여서 탄핵을 이루어냈는데, 왜 무슨 기관을 또 만드려고 하냐, 라고 거부반응을 보인다.
지금껏 촛불 이후 수많은 시도들이 왜 안됐을까를 생각해봤다. 민회는 그야말로 민초들이 모여서 의견을 모으는 건데, 이것을 억지로 조직한다고 민회가 조직될까?
전 - 나도 그것은 동의한다.
촛불광장은 의견이 수렴되지 않는다.
탄핵정국으로 인해 열린 자유발언대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모두 흩어져버렸다.
이 의견들을 모을 수 있는 장이 필요한데, 이것이 민회라고 생각한다
[민회는 왜 필요한가]
강 - 촛불광장은 '숙의'가 안 된다. 의견이 합의되고 수렴되지 않는다. 탄핵정국으로 인해 열린 자유발언대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모두 흩어져버렸다. 이 의견들을 모을 수 있는 장이 필요한데, 이것이 민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첫째, 숙의가 가능한 둘째, 공식성을 부여한 셋째, 결의가 되게 하는 새로운 형태여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민회의 목적은 차기 정부에게 과제를 주는 것이다.
허 - 현재 선출 권력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국회다. 30대 재벌 중 20대 재벌이 200만원부터 3억까지 한 사람의 국회의원 후보에게 돈을 보낸다. 일상적으로 여야 국회의원에게 다 주고, 당선되면 더 준다. 삼성에서 국회를 비롯한 정부기관에 대관 로비를 하는 직원들이 따로 있다. 연봉 1억정도 받고 이러한 활동을 하는 직원들이 400여 명이다. 결론적으로 이들이 1500억 정도 되는 돈을 쓰고, 이중 가장 많은 돈을 청와대에 쓴다. SK가 250명, KT가 180명, LG 가 150명이고 나머지 그룹들은 30-50여명 정도 된다. 이런 사람들이 몇 억씩 뿌리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지난 20여년의 제도 정치권은 이러한 재벌의 로비가 90프로 이상 통했다. 농민 문제나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해 재벌의 법인세 인상에 대해 싸웠을 때 국회는 민생 예산을 포기하고 재벌의 법인세 인상을 반대했다. 이것이 일상이다. 검찰은 국회의원의 약점을 다 쥐고 있고, 언론도 이들의 약점을 쥐고 있다. 고위 관료도 지역구 이권 다 챙긴다. 이 구조로는 결코 민의가 반영이 안 된다. 이런 매수 정치를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시민 권력이, 민회가 필요한 것이다.
김 - 개인적인 생각으론, 대통령제 자체가 문제다. 승자 독식 시스템이다. 대통령이 51퍼센트의 여당 국회의원 데리고 49퍼센트의 의견을 무시하고 간다. 이것은 불합리하다.
그래서 소수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독일식 정당 명부제와 같은 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비례대표가 50퍼센트다. 대통령제는 낙후된 정치제도라고 생각한다.
윤 - 나는 사실 민회가 왜 필요한지 아직 잘 모르겠다. 국회가 잘못되고 있으면 제도 안에서 국회를 고칠 수는 없나. 예를 들어 표창원 박주민 의원 같은 경우는 일반인들의 후원이 많았다. 금방 마감되었다.
허 - 그런 의원들의 영향력이 작아서 안타깝다. 이를테면 당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 지도부의 모 대표는 얼마 전에 재벌 경제연구소 소장님들과 순회 간담회를 했다.
윤 - 왜 만나는 건가.
허 - 왜 만나는지 물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민중들한테 가는 시간이 중요한가, 재벌들 만나서 이야기 듣는게 중요한가. 그런 곳에서 법인세 감면해야한다고 주장하면 그 이야기를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윤 - 국회의원들은 우리가 선출한 선출직이니까 당연히 민중을 더 많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 - 그래서 민회 조직이 필요하고, 이것이 성장하면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 200만 중에서 조직 안에서 단련되고 조직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20만도 안 될 것이다. 그러면 180만이 넘는 사람들은 탄핵이라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자발적으로 나올 일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 교육을 따로 받지 않고 정치에 무관심하도록 길들여져 있다.
나는 민회라는 것을 세상을 바꿀 것 같은 그런 거대 규모로 생각지는 않았다. 광장이라는 창구를 통해 학습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의 민회를 이야기하고 싶다. 광장을 열고 학습하다 보면 중요한 문제가 잡히고, 그때 함께 그러한 의제를 밀어 보는 경험을 갖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다. 가령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핵심적인 의제들이 있다. 교사가 정치적이지 못하면 아이들한테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이런 의제는 핵심적이다. 이를 두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
전 - 요즘 사람들은 정치적 역량을 스스로 학습한다. 공부시킨다는 느낌 보다 경청하는 느낌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윤 - 그렇다. 나는 처음 임금체불 문제를 겪었을 때 노동법이 뭔지도 내가 뭘 가져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두들겨 맞기만 했다. 내가 필요해서 정보를 검색해서 을지로위원회를 찾아냈다. 물론 공청회 같은 곳에 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나를 위한 의제를 가지고 열심히 움직여주시는 분들한테 후원이라는 방법으로 힘을 보태기로 했다. 이것이 나의 참여하는 방법이고 그래서 민회의 필요성을 잘 못 느꼈다.
손도 댈 수 없을 만큼 국회가 엉망진창이면 모르겠는데, 아직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있다. (따로 민회를 만든다는 것이) 그러한 분들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느낌도 좀 들었다.
전 - 사람들이 큰 권력을 깨는 맛을 봐야 한다. 윗 사람들이 혼나는 맛을 봐야 풀뿌리 대중들이 움직이고, 요구할 줄 알게 된다. 서로 조금씩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게 가능할 수 있겠구나 라는 시야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민회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가 국회의원들한테 뭔가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민회가 가져가야 하는 방향이다. 의견 취합만 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다만 권위주의를 타파해야 하고, 혼자 영향력을 너무 많이 갖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이번 촛불집회에 100만이 모였을 때,
사람들의 내면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고 본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우리 스스로가 백만을 만들었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이것이 변화를 만들어가는 에너지다.
이 에너지를 훼손시키는 순간 광장은 죽는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민회'의 모델은 무엇인가]
강 - 일단 지금 이 상태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온라인 시민의회가 제안했던 '대표' 시스템은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공동 제안서에 연명했는데, 그것은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싶어서였다. 이것은 또다른 형태의 대의제를 시도하는 것으로밖에 비춰질 수 밖에 없고, 전략적으로 커다란 과오였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비상국민행동이 촛불의 오프라인의 실무를 돕고 있는 것처럼, 민회의 형성을 실무적으로만 떠안아 주면 좋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어 국민행동이 서대문 어디에서 민회가 열린다, 모여라 정도만 알려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물도 갖다주고 마이크도 마련해주고 하면서 돕는 것이다. 광화문으로 사람들을 호출한 것처럼, 장만 열어주는 것이다. 다만 자유발언대처럼 하면 정치적 결속력을 가지기 어렵다. 모여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국민 소환제를 이야기하고, 어떤 이들은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거나 노동 성과급이 문제다 라고 한다. 개혁에 대한 다양한 요구가 있다. 아까 발제의 사례에서처럼 5000개의 의견을 40개로 만들고 또 15개로 추렸듯이, 개혁의 요구를 수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검찰개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100여명에서 300명 되는 사람들에게 의제가 공유되고 토론한 결과를 정리하여 온라인에 올린다. 그 후 온라인에서도 추가로 의견을 받고,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이거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재벌개혁 문제에 대하여 시민의 의견을 모으고 대표적인 요구를 만드는 것이다. 남은 대선까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거라고 생각한다. 10차례 정도 분야별로 대의를 모으는 것이다.
그 후에 문재인이되었든 반기문, 이재명, 안철수가 되었던, 다음 정권을 가져가는 이들은 이것을 국민의 요구로 받아라, 라고 넘겨주는 것이다.
이 - 강 선생님의 의견에 공감한다. 내가 생각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비상국민행동에서 장을 열고 지역별로 민회를 연다. 처음 일정기간 동안은 각 단체별로 요구를 쏟아낸다. 그리고 온오프라인을 통해서 시민들이 그 요구에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그 다음에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김 - 시민 단체들 대표들이 모여 시민의회를 주제로 발제, 토론한 적이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시민의회에서 수렴된 개헌안을 제도권 정당이 그대로 받아서 하는 사례가 있었고, 스페인과 같은 남유럽 국가에서도 시민의회의 형태로 민주주의를 실현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의 결론이라면, 시민의회의 형태로 사람들이 의사를 모아가는 것은 바람직한데, 문제는 누간 시민 의원이 되고 법률적으로 어떻게 뒷받침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시민 의원은 선출하면 안 되고 희망자를 모아서 추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시민의원은 1년 이상 가면 그때부터 권력이 된다. 로비도 들어오고. 만약 그렇게 뽑힌 사람들을 한시적으로 자주 바꿔주면서 한다면 그것도 진보적인 방식일 것이라 생각했다.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부터 한번 써보자. 교사 농민 등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부다 취합하는 것은 어렵다. 한 사람이 열 개를 쓰던 스무개를 쓰던 시급한 의제들이 취합이 되면 모으고 또 모으고 해서 광역, 전국, 온라인 단위 등의 토론을 거치면, 두 개 정도의 결론이 나올 것이다.
스위스 같은 경우는 일 년에 10번 내지 12번 전국민 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그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벌금 때린다. 그런 식으로 촛불이 꺼지기 전에 국민이 원하는 중요한 의제를 취합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만약 지금이 혁명적인 시기라면, 시민 발안제도 처럼 굵직한 제도를 바꾸는 지점도 논의할 수 있다.
이 -다만 나는 대표가 누구냐라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대표는 무조건 추첨제와 1년이라는 한시적 기간을 조건으로 정해야 한다. 대표를 누가 할 것이냐고 하면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완장에 대한 욕심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을 이처럼 조건을 달아 해체시켜 놓아야 한다. 그래야 공정하게 할 수 있다. 대표의 문제 때문에 민회의 본질이 가려져서는 안된다.
강 - 아무리 시한부이고 자발적이고 계급이 없다 하더라도, 대표를 정하게 되면 직접민주주의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이번 촛불집회에 100만이 모였을 때, 사람들의 내면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고 본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우리 스스로가 백만을 만들었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이게 변화를 만들어가는 에너지다. 그런 에너지를 최대한 훼손시키지 않고 싶다. 이 에너지를 훼손시키는 순간 광장은 죽는다. 나는 우리가 말하는 민회가 광장의 새로운 확장 혹은 압축된 형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촛불 이백만이 느꼈던 자존감이 소중하고, 자신을 주체화 할 수 있는 공간을 끊임없이 열어둔 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 - 내가 생각한 '대표하는 사람' 이란 대표자가 아니라 '경청'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역마다 민회에 찾아가서 의제를 정하고 듣고 정리하는 거다. 누군가 희생적으로 곳곳에 가서 경청하고 정리하는 방식에 대한 합리적인 '모델'을 만들고 전파하는 사람. 이런 의미에서 대표성을 띄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 - 민주주의의 뿌리는 지역에 있다고 생각한다. 광화문의 의제와 에너지를 지역으로 가져가지 않으면 흐지부지 되고 또 다른 문제들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광우병 때나 효순 미선 촛불 때나 국정원 사건 때처럼. 한번은 지역에서 하고 한번은 광화문에서 하는 이런 식으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의제들이 지역별 모임이나 학교운영위원회나 학부모 모임 등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주 같은 우리 지역에서는 시장이 뇌물을 받았다. 그런데 이에 대해 3년형을 구형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시민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면, 광장의 열기도 지역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지역에서, 이 열기를 민주주의의 뿌리로 가져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대표를 뽑는 게 아니라 지역의 광장에 지속적으로 모이는 게 필요하다.
곽 - 이것은 정치프로젝트이자 국가프로젝트이다. 국가적 의제를 20개쯤 정해서 100대 시민개혁안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하면 좋겠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뿌리내리려면 지역 민회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이 곳에서 정치적 역량을 훈련받으면 정당에 가입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물론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 정당민주주의의 체질개선에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곳에서 지역 현안을 다룬다던가, 직업별 현안을 다루거나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민회의 경험을 갖고 있다. 각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500개의 원탁토론이 민회다. 하지만 국가적 차원과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이 시민 권력을 끌어올려서 대의 권력에 대항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했다. 광장 권력과 대의 권력이 있는데 이 사이에 공중 토론이라는 중간 클라스가 있다고 치자. 이를 끌어올리면 삼각형이 된다. 이 공중 토론이 양쪽의 권력을 끌어올리는 형태로 가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민회에 누가 올것이냐, 어떻게 구심점을 만들어서 어떻게 끌어모을 것이냐가 문제다. 신뢰의 문제에서 구심점이 될 주체는 지금 비상국민행동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민회적 구상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운영할 수 있는 실무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해야할 일이라고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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