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품없는 주인공은 위로가 된다.

서평_권여선, <푸르른 틈새>

by 징징



때로는 고난과 역경을 모조리 이겨내고 강하게 우뚝 서는 영웅보다 이리저리 치이고 맥없이 휘둘리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내는 볼품없는 이들의 모습이 더욱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 무척이나 닮아있기 때문에. ‘왜 이렇게 찌질해.’ ‘멋대가리가 없어.’ 주인공을 수없이 힐난하고 타박해도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선 내 두 팔을 벌리고 품을 내어 안아주고만 싶다. 그를 안아주고 무언의 위로를 건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향한 위로가 된다.


내겐 ‘미옥’이 그랬다. 멋지고 당찬 모습이라곤 300여 페이지 내내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 그래서 도무지 예뻐하거나 동경할 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그를 나는 결국 미워하는 데에 실패한 채 책을 덮는다. 제대로 좀 살아보라고. 원망 같은 응원을 속으로 삼키면서.


새하얀 표지와 청량한 띠지, 제목의 ‘푸르른’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기대와는 달리 표지를 넘기자마자 소설은 비릿한 냄새와 쿰쿰한 습기를 머금은 풍경을 내게 떠넘긴다. “내게도 가끔은 행운이 필요하다.”(p.7)는 담백한 문장은 아무런 설명 없이도 화자인 미옥의 불운과 불행을 짐작게 했는데, 그 담백한 서술 때문에 오히려 그 불행마저도 사실은 보잘것없고 찌질하기만 한, 그저 쿰쿰한 곰팡내 정도나 나는 것들의 연속일 거라고 감히 짐작하게 만든다.


결국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나는 만성적인 우울함에 제법 오래 짓눌려 있고, 그건 책을 읽을 당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도무지 다른 이의 우울까지 짊어질 자신이 없었다. 머지않아 다시 책을 펼치는 데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읽는 내내 몇 번이고 책을 내려놓고 무겁게 한숨을 쉬며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응어리진 가슴 속의 감정들을 밀어내고 외면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미옥의 모습이, 심지어 그가 스스로 수치스럽다고 말하는 모습 하나하나가 나와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다’고 대강 얼버무린 감정이 사실은 공감에서 비롯된 자기혐오임을 인정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미옥은 ‘어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은 채 대학생이 된다. 학교에 다니고 입시를 치르고 그렇게 등 떠밀리듯 대학생이 되고, 어른으로 불리기 시작하는. 나를 비롯한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아무 의심 없이 거쳤을 그런 평범한 과정을 거쳐서. 어른이 됐다고 으스대봐야 나 자신은 변한 게 없으니, 술을 마실 수 있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것도 없을 텐데, 이상하게도 나를 뺀 모든 이들이 한순간에 어른이 된다. “어른이란 모름지기 ‘정치’와 ‘성’에 대한 확고부동한 입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법”(p.21)인데 신기하게도 나와 미옥을 제외한 모두가 교복을 벗어 던지자마자 그것을 해낸다.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그들이 멋져서, 혹은 그러지 못한 자신이 초라해져서 어떻게든 달라진 척, 나만의 입장이 있는 척, 조급하게 어른이 된 척을 했었다. ‘성’과 ‘정치’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미옥도 마찬가지다. 미옥은 운동권 동아리에 들어간다. 시위에 참석하고, 같은 모임 동기들과 토론 비슷한 걸 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 맹렬하게 자신의 입장을 토로하고 사회와 상대방을 비판하며 토론하는 수진이나 종태나 한영처럼 사회 운동에 대해 명확한 입장 같은 것도 없고, 소위 ‘여성적’인 제 매력을 거침없이 뽐내는 미혜처럼 저를 꾸미거나 하다못해 비난조차 하지 못한 채, 미옥은 그저 그곳에 있다. 녹아들지도 튕겨 나오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나 역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대학에 갔고, 학과 집행부에 들었고, 공연 동아리에 들어갔었다. 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그만두지도 못했고, 아니 사실은, 내가 뭘 하는지도 몰랐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대학 시절을 그렇게 모조리 허비했다. 미옥처럼. 그러니 그가 맹추 같은 모습으로 비틀거리거나 전경에게 눈빛으로 자비를 구하며 우는 꼴을, 저를 완전히 잊고 어느새 다른 세상에 가 있는 전 애인을 받아들이지 못해 꼴사나운 짓을 자처하는 그를 나는 소리 내어 비난할 수가 없었다. 아오, 저거. 제발 작작 좀 하지. 답답해서 혀를 차고 발이나 굴렀을 뿐.


나는 미옥의 불행과 어리숙함에 나를 과하게 이입하고 있어서, 미옥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묘사할 때마다 나는 어땠는지 자꾸만 돌아봤다. 어머니의 관심을 갈구하며 작은 손길에도 큰 의미 부여를 하고, 자신이 어머니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이길 바라는 마음. 그건 어린 미옥의 마음이었지만, 또한 아마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어린 마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옥 어머니의 관심이 쉽게 옆집 할아버지에 대한 가십으로 옮겨가면 미옥보다 더 큰 실망을 하게 되고, 미옥의 도벽을 용서하고 다정하게 품어주거나 미옥을 가엽고 애틋하게 여기는 어머니의 대화를 듣는 장면을 보면 내게는 이런 기억이 없다며 무한한 질투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하염없이 내 가슴 속에 찌꺼기처럼 남은, 관심에 대한 갈망과 찌질한 원망을 노트 위에 두서없이 적어 내려가기도 했다.


이런 식이다. 미옥은 침대에 누워 대학 시절과 그보다 더 어린 시절의 기억을 길어 올리며,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맹추 같은’ 모습을 300페이지 내내 꺼내 보인다. 불행히도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왜 저래’하고 남의 일인 양 외면하질 못하고, 수없이 밑줄을 긋게 된다. ‘나도 그랬어.’ ‘이게 뭔지 알아.’ ‘나도 그랬었어.’ 자기 고백 같은 감상과 함께. 과거를 회상하는 미옥의 현재는 그마저도 맹추 같다. 자해까지도 실패해선 눅눅한 방에 누워 깔깔 웃기나 하는.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훌륭하게 성장한 영웅 같은 모습은 전혀 없이, 아주 비리고 꿉꿉한 모습 그대로.



2024-09-22-18-58-28-662.jpg 2024년 9월의 어느 일요일의 사진. 직접 촬영



그러나 미옥은 살아있다. 맥없이 휘둘리고 뭐 하나 제대로 된 사상 같은 것도 없는 주제에 그런데도 꾸역꾸역 살아있다. 연구실에 나가고, 악착같이 일하고.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 그저 지금을 견디려고. “그때 나는 발밑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나는 내 머리 위에 천장이나 하늘 따위가 있다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발밑이 꺼지지 않고 무릎이 꺾이지 않으면 되었다.”(p.275) 그것이 지금의 미옥이다. 또한 지금의 나, 혹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래서 힘차게 달리지도 못하고, 그저 살금살금 간신히 걸어가기만 하는 미옥을, 나는 끝내 미워하기에 실패한다. 그가 조심스럽게 내딛는 발걸음과 발끝을 함께 지켜보게 된다. 그 발끝에 작은 물웅덩이라도 있어서, 그래서 거기 비친 게 하늘이란 걸 깨닫고 고개를 들기만 한다면. 그럼 미옥의 보폭도 좀 더 커지고, 좀 더 힘이 생기지 않을까. 끝내 달리진 못하더라도. 그건 미옥을 향한 바람이기도 하고, 또한 나 자신을 향한 바람이기도 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책을 덮고 제목을 다시 바라본다. 푸르른 틈새. 틈새라는 단어에서 난 미옥이 사는 눅눅한 집을 떠올린다. 도무지 청춘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실의 청춘들이 구겨져 있는 곳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곳. 푸른 것은 어둡고 칙칙한 공간에는 너무 이질적인 것이라서, 그래서 고작 틈새 사이로 들어오는 주제에 눈에 띈 모양이라고. 그래서 제목까지 차지한 모양이라고 나는 멋대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틈 너머에 푸른 것이 있단 것을 알아차린다면, 틈새를 잡아 벌려 기어코 그곳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다못해 희망을 얻게 된다. 내가 미옥의 발끝에 하늘을 비추는 작은 웅덩이가 있길 바라듯, 소설은 미옥의 삶에 <푸르른 틈새>라는 제목을 붙여준다. 그가 결국 닿는 곳은 틈새 너머의 푸른 것이리라. 그렇게 예언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예언은 내게도 닿는다. 미옥은 나와 너무나도 닮아 있는 맹추였기에. 흔들리고 넘어져도 결국 그곳엔 닿을 거라고 바라게 된다. 틈새일지라도.


끝내 미옥의 이야기는 영웅서사가 되지 못한다. 그에겐 주어진 대단한 소명도 없었으니 딱히 이뤄낸 것도 없어 보이고, 하물며 그의 시련조차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소설의 주인공이며, 화자가 된다. 대단한 것이 되거나 비장한 죽음을 맞지 못한 채 애매한 마무리로 소설은 끝이 나지만, 그래서 더더욱 나는 미옥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살아있다는 건, 맺음 없이 애매한 상태로 계속 이어져 나가는 것이니까. 너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까. 비난 같은 다짐을 뱉고 나면 이상하게도 걸어갈 힘을 얻는다. 영웅이 아닌, 볼품없는 미옥의 모습은 내게 그런 방식으로 위로가 된다. 꿉꿉하지만 부드러운, 이끼 같은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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