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5 수요일 아침 일기
아침 스쿼시 레슨이 취소되었다. 나의 매일 평일 아침은 월요일 대전 내려가기, 화요일 스쿼시 레슨, 수요일 스쿼시 레슨, 목요일 심리 상담으로 4일은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편인데, 수요일 레슨이 취소되니 갑작스럽게 오전에 여유가 생긴다.
학원 출근 시간은 오후 한 시 정도이므로 다른 사람들보다 오전이 여유로운 편인데, 그래서인지 이 시간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이 자꾸 든다. 물론, 강박만 있고 대체로 잠으로 보낸다. 당장 옷 갈아입고 출발하지 않으면 지각할 시간까지 5분 간격으로 알람을 껐다 켰다 반복하며 최대한 잠을 자다 퉁퉁 불어난 얼굴로 일어나 급히 집 밖으로 나선다.
아... 좀 별론데? 하지만 조금 이른 시간에 맞춰둔 알람을 듣고 눈을 떠 아직은 여유 시간이 있음을 확인한 뒤, 다시 이불을 고쳐 덮고 눈을 감고 이런저런 망상에 빠져드는 시간이 즐거워 좀처럼 침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꼴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 10분 뒤로 알람을 다시 맞춰둔다. 그럼 알람이 울리기까지 2분 정도 남았을 쯤 망상 속을 유영하던 뇌가 잠으로 살살 빠져든다. 딱 달콤한 잠으로 한 발짝 집어넣었을 쯤 알람이 눈치 없이 끼어들어 나의 달콤한 수면을 방해한다. 그럼 괜히 알람을 원망하며 다시 10분 뒤로 미뤄두고 눕기를 반복하고 마는 거다.
오전의 여유는 그렇게 헛된 알람과의 싸움으로 전부 날아간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알람을 늦게 맞추고 더 자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이상하게도 충분한 수면을 확보하겠답시고 알람을 뒤로 맞춰봤자 똑같은 일의 반복이다. 준비하고 밥을 먹고 학원으로 출발하는 나만 헐떡헐떡 급해질 뿐이다.
이러면 안 된다 싶어 오전의 여유를 좀 더 생산적으로 보낼 방법은 이것저것 많이 생각해 두었다. 모닝 페이지 쓰기, 오전 독서하기, 오전에 블로그 업로드하기, 운동하기 같은 거. 그러나 죄다 며칠 가지 못하고 잊히기 일쑤다.
운동은 그나마 오전에 스쿼시 레슨을 끼워두어 일주일에 두 번은 하긴 하는데, 오전에 개인 연습을 가는 기특한 내 모습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너무 멀어서 그런가? 싶어 (차로 20분은 가야 한다) 헬스장 등록을 고민해 보았지만, 좀처럼 내키지 않는다. 아우... 재미없단 말이에요...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배드민턴 강습을 등록해 볼까도 고민해 봤다. 음... 그런데 아직 고민만 하고 있다. 저번에 (약 반 년 전)전화했을 때 오전 시간은 모두 마감됐다는 것 같기도 하고.
홈트? 내가 꾸준히 그걸 하겠냐고. 아니, 사실 제법 성실하게 하루 20분 정도는 했던 적이 있긴 한데, 곧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남에게... 특히 가족에게 보이는 것을 몹시 꺼린다. 방 밖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만 들어도 움츠러들어서, 완전히 혼자 살게 되기 전까진 홈트는 무리겠다 싶었다.
모닝 페이지는 여러 번 시도해 보았으나 이것이야말로 정말 3일을 가지 못하고 매번 집어치우게 되는 아침 루틴 중 하나다. 모닝 페이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트를 펼치고 의식의 흐름대로 노트 세 장을 빼곡하게 나의 말로 채워나가는 것. 다양한 모닝 페이지 활용법을 찾아보고, 예쁜 노트를 사고, 만년필로 열심히 끄적거려보았지만, 나에겐 아직 이 행위의 효용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의식을 노트에 마구 배설하다 보면 나의 현재 고민을 파악하게 되고,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자연스레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사실 경험도 해보긴 했는데... 이걸 매일 하라고? 나는 매일의 나에 대해 사유하고 싶지 않다. 나의 일상은 하루하루가 거의 변화 없이 흘러가고, 나의 머리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고민도 항상 똑같아서 며칠만 써도 동어반복을 하고 있단 생각에 영 마음이 불편해진다.
게다가 손 글씨란 정성 들여 쓰면 손이 아프고, 흘려 쓰면 꼴 보기가 싫어지므로 또 곤란하다. 효용을 느끼지 못한 채 매일 40분 정도의 시간을 소비하자니 시간을 날리고 있단 생각은 똑같아서, 집어치웠다. 아, 이거 하겠다고 산 노트는 어쩌지? 예쁜 거 샀는데.
그래서 이번엔 오전 독서하기와 오전 블로그 업로드하기를 시도하기 위해 당차게 밖으로 나왔다. 굳이 밖으로 나온 건, 집에선 결코 이 행위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드디어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만들지 않은 생활 소음에 무척 민감한 편인데, 내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엔 엄마도 동생도 집에 있어 (당연하다. 다 같은 학원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생활 소음에서 벗어나게 될 없다. 동생이야 뭐, 밥 먹자고 할 때 말고는 날 방해하지 않지만, 엄마는 내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예고 없이 문을 벌컥벌컥 열어젖히니까. (사실, 자고 있어도 열어젖힌다.)
네이버 지도를 뒤적거려보니 마침 좋아하는 카페가 아침 8시부터 문을 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시 전엔 일어날 생각이 없으니 알차게 이용해 보려 한다. 식사 대용이 될 만한 것을 팔지 않는다는 것이 흠인데, 근처에 아주 맛있는 김밥집이 있으므로 점심을 그곳에서 해결한 후 출근하면 될 것 같다. 8시 오픈이면 스쿼시 레슨이 있는 날엔 모자만 눌러쓰고 나와 책도 읽고, 지금처럼 아무 말이나 브런치나 블로그에 주절주절 쓰다가 레슨 받으러 가도 될 것 같고... 제법 괜찮은데? 당분간 이렇게 해볼까? 물론 며칠이나 갈지 알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엔 오늘이 마지막이다)
나의 오전 여유를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은 사실 생활 소음도, 필기하다 아파지는 손도 아닌, 나의 강박이란 사실을 알고 있긴 하다. 뭐든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완벽주의. 그리고 그로 인한 회피. 내가 뭐 된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사실 완벽하게 하지도 않을 거면서 뭐 그리 '제대로'라는 단어에 꽂혀서 뭘 시작도 못 하고 미뤄버리는지...
사실 이곳에 드문드문 올리던 글이 완전히 멎어버린 것도 그놈의 '제대로'에 사로잡혀 시작도 못 한 탓이 컸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에세이엔 아무 말이나 쓰던데. 내가 뭐라고 제대로 쓰냐? 머리를 말리다 퍼뜩 그런 생각이 들어, 그냥 냅다 집을 나왔다. 엄마가 괜히 어디 가냐고 물어볼까 봐 살금살금.
나는 평소에도 말이 아주 많은 편이고, 말보다 망상이 더 많은 편이라 머리에 나뒹구는 문장 몇 개만 잡아채도 줄줄 이어지는 긴 글이 된다. 지금도 봐라. 너무 길게 썼지! 내 에세이는 너무 길다는 지적을 많이 들었는데, 도대체 짧게 어떻게 쓰는 거냐. 진짜 모르겠다.
하여간, 이런 거나 꾸준히 좀 써봐야겠다. 아니. 꾸준히 말고, 어... 적당히. '꾸준히' 같은 대단한 단어를 썼다간 또 강박에 시달려 하루만 빠져도 "난 안 될 놈이야!"하고 내던져버릴지도... 하지만 쓸 때마다 다이어리에 칭찬 스티커 하나씩 붙여주면 좀 좋을지도... 그러면 칭찬 스티커를 사야겠는걸.
다 써놓고 나니 이거야말로 의식의 흐름이다. 이것도 모닝 페이지 아닌가? 나름대로 나의 고민을 토로하는 걸로 시작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흐름 또한 얼추 맞는 것 같다. 펜으로 쓰면 손이 아픈 게 문제였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