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는 무엇을, 어떻게, 왜 쓰는가

서평_장강명,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유유히

by 징징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정확히는, 소설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ISBN이 달린 웹 소설 세 작품을 출간했고, 취미로도 꾸준히 소설을 쓰고 있으니 소설가라고는 할 수 있겠으나, 당최 먹고 살 만큼 벌지는 못했기 때문에 소설 써서 먹고사는 사람은 못 되었다. 대체 작가는 뭐로 먹고사는 건가? 그게 궁금해서 여기저기 작가들의 인터뷰를 찾아보아도, 그들은 ‘책은 돈이 안 된다.’는 말만 쓰게 뱉을 뿐이다. 하지만, 전업 작가시잖아요. 굶지는 않으실 거 아니에요.


그야 대단한 소설을 써서 대히트를 친다면 책으로 먹고사는 것은 가능한 일이겠으나, 한 작품을 완성해 마침내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그 장황한 시간은 도대체 무엇으로 버티는지 궁금했다. 그것이 이 책을 산 이유다. 소설가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은 많이 있겠으나 굳이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이 책의 2장이 ‘소설가의 돈벌이’라는 적나라한 제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방송 <알쓸범잡>을 보며 호감이 생긴 작가였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질문에 대한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소설을 출간하고 계약하는 것과 소설 외에 작가로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 같은 것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만, 이른바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그 지난한 과정은 어떻게 버티는가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아니, 나오긴 나오지. 장강명 작가의 경우, 언론사를 다니며 어느 정도 돈을 벌어놓은 뒤 소설을 쓰기 위해 퇴사했고, 소설가의 길을 지지해 주는 아내가 있었다. 역시 일단 벌어놓고 까먹는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소위 소설가 지망생, 혹은 아직 돈벌이 못하는 소설가가 하기 좋은 소일거리 같은 것이 소개되면 좋겠단 야비한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웹툰 작가도 자기 작품을 하기 전까지 어시스턴트 일을 하며 돈을 벌기도 하는데, 소설가도 그런 일 없냐고……. 여기저기 작은 원고 청탁을 받아 글로 돈을 벌기도 한다는데, 그건 아무래도 ‘작가’들에게 가는 의뢰인 모양이니 영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기 꺼리는 내겐 아무래도 해당 사항이 없는 것 같고.


하여간 원했던 답을 찾지 못했던 것에 비해 이 책은 내게 생각할 거리를 굉장히 많이 던져준, 올해 읽은 에세이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에세이로 꼽힌다. 결국은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하는, 소설가 본연의 물음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어서다. 각기 다른 날 쓰인 에세이에서 작가는 젊은 한국 작가들에겐 짊어져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사회에서 눈 돌리지 말 것을,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들여다보기를, 그 통찰을 위해 계속해서 공부해 나갈 것을 당부한다. 시종일관 어조가 강하지 않고, 이런 말을 내가 해도 되나 하고 망설이는 글을 쓰다가도 이 부분에선 강한 어조를 띄는 것이 인상 깊다.



2024-11-18-13-41-27-479.jpg 2024년 11월 어느 가을. 경부고속도로 (직접 촬영)



책을 읽어 내려가며 깨달은 것이 또 하나 있다. 소설은 결론을 내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글이 아닌, 보여주는 글이라는 것. ‘결론도 없고, 대체 어쩌라는 거냐!’하는 마음이 들겠지만, 바로 그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다. 세상엔 이런 일이 있다고, 이런 삶이 있다고 상세한 묘사를 담아 말 그대로 ‘가시화’하는 것. 그것을 읽는 이들이 ‘대체 어쩌라는 거냐!’하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게 하는 것. 그래서 대안과 결론을 찾아 헤매게 하는 것. 감히 읽는 이를 훈계하거나 성급한 결론을 내지 않아도, 자세히 보여주는 것은 그것만의 의의가 있다. 한국 문학들이 대체로 맞이하는 흐지부지하고 애매한 결말들은 결국, 더 나아갈 길을 이제 작가가 아닌 독자가 그려보라고 던져주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고작 BL 웹 소설이나 쓰는 작가에게 이런 통찰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싶긴 하다. 내가 소설을 쓰는 영역은 사실, 대단한 통찰이나 사회 인식 같은 건 별로 쓸모가 없다. 소파에 누워 하나씩 야금야금 집어먹다 버리는 스낵처럼, 가볍게 읽고 가볍게 던져버릴 글을 쓰는 것이 이 장르의 의의다. 하지만, 장르가 무엇이든 모든 글엔 작가의 시선이 담기기 마련이며, 가볍게 집어먹는 스낵 속에 누군가를 찌르는 칼날 같은 게 들어있지 않게 하려면 어느 글을 쓰는 작가든 결국 사회에 대한 안목을 넓혀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때로는 스낵에서 처음 맛보는 향이 누군가의 호기심을 일깨우기도 하니까. 어쨌든, 글로서 나의 일부이나마 드러내기로 했다면 공부해야 하고, 안목을 길러야 한다.


게다가 사실,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 그러니까 가볍게 먹고 던질 그런 소설 말고, 좀 더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무언가를 다루는, 소위 ‘한국 문학’이라고 불리는 소설을. 나 역시 한국 문학을 좋아하니까. 다만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막연한 답답함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고 조금은 시야가 트인 기분이다. 물론, 무얼 쓰라고 답을 제시해 주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이런 것들도 있다고 늘어놓고 보여줄 분이다. 소설이 그러하듯.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 소설을 쓰는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읽다 보니, 고개를 어떻게 돌려야 더 많은 것이 보일지는 알게 된 기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소설가 지망생이나 초보 소설가에게 뭘 보라고 말하는 책이라기보다, 보기 위해 고개 움직이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답을 찾는 건 내 몫이다.


이 책은 그 외에도 출판 시장의 정산 문제에 대한 비판이나 계약, 소설가의 자기소개 등 소설가가 직면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전업 작가로서 사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장을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은 맨 마지막, ‘나아질 수 있을까요?’이다. 김가을 작가에게 보내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응원의 편지.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상냥한 어조인 이 글은, 작가가 작가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을 건네고 있다. “작가님, 책을 한 권 더 쓰세요.”하는. 이런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작가의 글은 어떤 글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따뜻해서 자꾸만 어루만지고 싶어지는 글이다. 저자가 보낸 응원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닌데도, 어쩐지 읽고 나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이라니, 참 멋지다.


그러고 보니, 최근 장강명 작가가 ‘투비컨티뉴’에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시즌2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벌써 여섯 개의 글이 올라와 있다. 내가 이 책을 인제야 다 읽었으리란 걸 알고 기다린 듯한 멋진 타이밍이다. 이번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을 지켜보며 마치 내가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제대로 가진 것 같은 기분에 심취할 수 있겠다.


물론, 난 소설을 냈으니 소설가이긴 한데, ‘소설가라는 이상한’까지는 도달한 것 같아도 도저히 ‘직업’까진 도달하지 못한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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