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못쓰겠다는 자기소개서

250119

by 징징



또 떨어졌다. 안타깝게도 함께하실 수 없다는 메일을 받을 때마다 속이 쓰리다. 이놈의 지원 탈락 메일은 언젠가부터 그럴싸한 멘트(이를테면 당신의 역량이 진짜 아까울 정도로 높은데 함께 할 수 없어서 우리도 아쉽다는 식의)를 구구절절 붙여서 보내는 것이 관습처럼 굳어져서, ‘어쨌든 당신은 불합격입니다”라는 말을 하기 위한 사족이 너무 길다. 가끔 멘트를 너무 멋지게 써준 나머지 첫 몇 줄만 보면 합격 메일인 줄 알고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가 다 읽고 땅으로 곤두박질칠 때도 있다. 그냥 짧고 단출하게 끝내줬으면. 이런 위로의 멘트도 자주 보다 보면 기만처럼 보인다고. 하긴, 막상 냅다 ‘불합격이오’하는 메일을 받으면 상처가 더 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불합격 소식은 그럴싸한 멘트로 잘 포장을 해주든, 아니면 단도직입적으로 통보하든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다시 취준생이 되었다. 사실, 나의 취준생 경력은 그리 길지 않다. 글을 쓰겠다고 아예 취업 준비고 뭐고 소설만 쓴 기간도 꽤 길었고, 그 사이 잠깐 계약직이나 단기 인턴으로 다녔던 회사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들어간 것이었기 때문에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그리 공을 들이지 않았었다. 내 인생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학원 일이야 뭐, 가족이 운영하는 학원에 강제 차출된 것이었으니 뭘 쓸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사실, 제대로 된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직도 감이 없다. 이런저런 예시를 보아도 내 것에 맞게 적용하는 게 쉽지 않다. 서류에서 떨어져도 이것이 나의 이력 문제인지, 아니면 자기소개서의 문제인지 알 길이 없으니, 애꿎은 자기소개서만 몇 번이고 고치는데……. 고쳐도 이게 맞는 건지, 뭔지.


2025-01-18-13-05-12-963.jpg 2015년 1월. 망원동의 어떤 카페. 직접 촬영


자기소개서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글이니, 글을 쓰려면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필요가 있겠다. 두서없이 일단 나에 대해 떠올려보고, 그 중 어필하기 좋은 것을 골라 나의 경험에 녹여내서 글을 쓰면 자기소개서가 써질 거다. 이게 당신네 회사에 기가 막히게 도움이 될 거란 양념도 좀 쳐서. 그럼, 이제 나에 대해 무엇을 소개할지 생각해 봐야 하는데……. 이런. 여기서부터 막힌다. 막연하게 적어 내려가다 보니 ‘내가 이걸 진짜 잘하나? 아닌 것 같은데.’하는 쓸데없는 자괴감까지 따라온다. 곤란하다.


오늘도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데, 다시 쓰려니 막막해서 ‘자기소개서 쓰기 힘든 나를 소개하는 글’이나 써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대충 손가락 움직이는 대로 쓰다 보니 15분 만에 1,200자를 돌파했다. 내가 잘하는 걸 하나 찾았다. 저는 1,000자 에세이 정도는 10분 만에 뚝딱 씁니다. 내가 대강 주제를 잡고 적는 나에 대한 2천 자 남짓의 이야기는, 한 번 쓰기 시작하면 30분 정도 만에 쭉 쓸 수 있다. 대단한데? 그런데 왜 자기소개서는 안 써지냐고. 그것도 나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리고 또 잘하는 게 뭐가 있을까? 내가 자기소개서에 어떻게든 녹여보려고 하는 역량 중 하나는 ‘소통 능력’이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 학부모와 상담하고 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능력. 초등학생, 중학생과 농담 따먹기 하며 즐겁게 대화하고, 애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로 신뢰 관계를 쌓는 어른 되기가 어디 쉬운 줄 알아? 나는 그걸 했다! ‘이렇게 말 잘 통하는 어른은 처음이다’라고 말해준 중학생도 있었다. 걔한테 추천사라도 써달라고 하고 싶다. 학부모 상담도 그럭저럭 잘했다. 잔뜩 불만이 쌓인 학부모와 통화하다가 ‘감사합니다. 선생님만 믿고 맡깁니다.’하는 인사로 통화를 종료했을 땐 나 스스로 ‘찢었다’고 느낄 정도로 뿌듯했다. 나보다 나이가 열 살은 많은 선생님들과도 잘 지냈다. 이 정도면 좀 괜찮지 않나? 그런데 이걸 그럴싸하게 쓰는 법을 잘 모르겠다. 제가 학부모 상담을 완전히 찢었다니까요. 이럴 수도 없잖아.


또 잘하는 게 뭐가 있을까? 난 동인지도 많이 냈고, 웹 소설 출간도 세 번이나 해봤고, 행사도 열어봤는데, 전부 이력서에 쓰기엔 참 애매한 것들이다. 누군가는 이걸 자기소개서에 훌륭하게 녹여내서 멋진 나!를 어필할 텐데. 내가 쓰면 어째 영 별로인 글이 완성된다. 그놈의 ‘정제된 문장’으로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읽어도 솔직히 맛이 없다. 자기소개서를 글맛에 쓰고 읽는 건 아니겠지만.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보단 자기소개서 못 쓰겠다고 에세이를 쓰거나, 하다못해 자기소개서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는 게 나에겐 더 편하고 쉬운 일이다. 20대 초반에 잠시 취업 준비를 하며 정말로 ‘자기소개서’라는 이름의 단문 소설을 하나 쓰기도 했었다. 단편이라기에도 짧아 단문이라고 했지만, 지금 봐도 제법 그럴싸하게 썼다. 차라리 뒤늦게 취업 준비를 하는 나에 대해 소설을 쓰라고 하면 쓰겠는데. 그거나 쓸까.


글이란 뭘까. 똑같은 것을 주제로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자세로 키보드를 두들기는데, 어떤 건 너무 쉽게 술술 써지고, 어떤 건 죽어도 써지지 않는다. 쓰고 나면 자괴감에 몸부림을 치기도 한다. 그래도 써야겠지. 꾸역꾸역. 친구에게 내 자기소개서를 보여주며 조언이라도 얻으면 큰 도움이 될 텐데, 왜 이렇게 보여주기 힘든지 모를 일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나를 잘 아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건 큰 고역이고, 민망한 일이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서 올리는 곳이 있다고, 친구들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나를 드러내길 두려워하는 것 같다. 나에게 자신이 없어 그런 거겠지? 자기소개서를 쓰기 힘들어하는 건 아마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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