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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글 JINGLE Jul 15. 2022

단순한 싸움이 아닌 엄청 큰 싸움 <전쟁>

격월 청자책방 첫번째 기획 전시

격월 청자책방 | 

여덟살 소년 이준이가 사는 파란 지붕의 우리집 책장에 격월마다 주제를 정해 책과 창작물을 전시합니다. 전시 준비 과정을 기록하고, 주제와 관련된 책, 영화 등 콘텐츠를 함께 감상하면서 아이와 나눈 대화와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일련의 생각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지난 봄, 우리집 구조를 바꾸면서 가구를 바꿨다. 거실에 있던 쇼파를 없애고 큰 식탁을 놓았다. 원래 식탁이 있던 자리에는 수납장을 넣었다. 이준이가 새로 쓰게 된 방 앞에도 새로운 책장이 하나 생겼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바닥에 앉아 하는 놀이보다 탁자 위에서 하는 활동 시간이 더 길어진 이준이의 성장에 맞춘 변화였다.


큰 식탁을 들인 후로 우리 셋은 더 자주 마주 앉는다. 식사뿐만 아니라, 보드게임, 독서를 같이 하는 시간이 늘었다. 가장 큰 변화는 가족회의다. 이준이가 어느 날 난데 없이 가족회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곧바로 시작해서 격주에 한번, 총 3회 진행했다. 마지막 회의에서는 가족회의를 하는 시간이 좋다는 이준이의 의견을 반영해 일주일에 한번으로 회의 주기를 줄이기로 했다.


가족회의 첫번째 의제는 '이준이 방 앞에 새로 생긴 책장을 무엇으로 채울까'였다. 길지 않은(!) 논의 끝에 이준이의 책과 창작물을 보기 좋게 놓자고 결정했다. 그리고 특정 주제를 정해서 전시물을 바꾸고 주제에 걸맞는 포스터를 만들어 보자고. 이준이가 정한 첫번째 주제는 전쟁.


이준이와 내 책장에서 전쟁 관련 책들을 골라 올려놓고 각자 읽기로 하고, 도서관에서도 책을 빌려왔다. 이준이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쓴 전시 서문을 바탕으로 포스터와 초대권도 만들었다. 그리고 이준이가 레고로 만든 전쟁용 운송수단들을 하나씩 더 하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전쟁기념관에 다녀오고, 탱크 모형 프라모델을 아빠와 함께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격월 청자 책방의 첫번째 전시 <전쟁>의 포스터. 이준이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쓴 글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이준이가 (부르는 대로 받아) 쓴 전시 서문

전쟁에서 쓴 무기들을 보면, 그때가 언제쯤 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쓰는 대표적인 무기들은 칼, 총, 탱크, 폭탄, 그리고 항공 모함기가 있어요.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전쟁에서는 칼과 총이 많이 발견 된답니다. 그리고 갑옷이 발견되죠. 지금은 고무 같은 군사용 방탄 조끼가 있어요. 그래서 옛날보다 가벼운 방탄복을 쓸 수 있지요. 대표적인 큰 전쟁은 세계대전입니다. 세계대전 이후로 나라들이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은 탱크와 잠수함과 배 같은 움직이는 것들을 무기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쟁하면서 발전한 현대 무기입니다. 전쟁 때문에 생활이 바뀌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나고 부터는 하얀 지팡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지팡이를 그전에도 많이 쓰긴 했지만, 하얀 지팡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전쟁에서 다친 사람이 많아서 하얀 지팡이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얀 지팡이는 눈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 앞에 뭐가 있는지 진동으로 알려 줍니다.그 전에는 시각장애인에게 유용한 지팡이가 없었지만, 이제는 시각 장애인에게 유용한 하얀 지팡이가 생겼습니다. 전쟁은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면서도 무섭습니다. 전쟁의 슬픔을 아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격월 청자책방 전시 풍경(좌)과 전시 초대권(우)




'전쟁'이라는, 나에게 그다지 친근하지 않은 주제로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전쟁에 매력을 느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여덟 살의 관심사를 대하면서 들었던 모호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생각이라기 보다는 질문이 많다. 이준이의 화두가 나에게 던진 질문들, 그리고 또 내가 이준이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해.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나름대로 읽어봤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책장 한 켠에는 전쟁의 참혹성, 권력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그림책들이, 다른 한 켠에는 애국심으로 무장한 위인들의 무력 다툼을 다룬 책들이 꽂혀있다. 내가 답을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답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냥 기록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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