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자 신선한 공기가 가슴 깊이 들어왔다. 부다페스트에 살았던 사람들 누구나 가을날이면 이런 맑고 신선하고 에너지 넘치는 기운을 받았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았다. 강변을 따라 밝은 햇살의 기운이 올라오고 있다. 한 순간도 놓치지 말라고 일어나라고 하는 세력과 여유 있는 한가로움을 만끽하라는 세력 사이의 긴장감을 즐기며 아침을 준비한다.
오이, 양배추, 토마토, 귤, 계란 스크램블, 요구르트, 햄으로 준비한 아침은 과식을 부르는 호텔조식과는 다른 결을 선사한다. 채소와 단백질 위주로 가볍고 든든하게 아침 한 끼를 해결한다. 장내 미생물의 먹이가 될만한 음식들로 채우고, 길가에서 만나게 될 맛난 현지 음식들을 위한 공간을 비워두는 즐거움.... 몸과 마음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지 5년 남짓되었다. 정제된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가 인슐린저항증후군과 당뇨 전단계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들의 원인이라는 것을 점점 깊이 알게 되었다. 탄수화물중독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로부터 시작하여 가족으로 그리고 주위 사람들로 계속 전파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도 경각심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풍스러운 엘리베이터가 주는 찰나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은 영화 '인셉션'의 장면에서 길러왔다. 이국적인 곳에서의 일상도 평범한 하나의 일상이다. 현지인과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똑같이 하루를 보내겠다는 마음으로 싸하고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내쉰다. 발걸음도 가볍다. 오늘 일정이 제법 빡빡하다. 계획 없이 다녔던 지난 6일간의 여행과 달리, 큰 딸의 블링블링한 아이디어로 채우는 이 계획적인 여행도 매력적이다. 작은 시장을 향해 가는 길에 Aran이란 베이커리를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서있다. 어디를 가나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지 않고 살짝 개조하고 거기에 문화적인 요소를 덧붙인 시장 겸 독특한 주점들이 밀집한 심 플라 케르트(Szimpla Kertmozi)로 향한다. '폐허 바(ruin bar)'로도 알려져 있는데, 2002년에 처음 문을 열었으니 이미 사람들로부터 생활공간 겸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음을 엿볼 수 있다. 2004년에 낡은 건물을 새로운 장소로 선택하여 이전하였다. 이 건물은 과거 주거지와 스토브 공장이 있던 곳으로 철거 예정이었는데 '폐허 바' 문화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빈티지 가구, 벽화, 그라피티와 낙서 등 독특한 인테리어와 예술적인 장식된 이곳은 각 방마다 다른 테마와 분위기를 제공한다. 단순한 술집을 넘어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기능한다고 한다. 영화 상영, 라이브 음악 공연, 예술 전시회 등이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일요일에는 농산물 시장(Szimpla Farmers' Market)이 열려 지역 생산자들의 신선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마켓에는 다양한 식료품들을 팔고 있었다. 시식코너에서 시식을 하면 사야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아예 나는 시식에 눈길을 주지 않고, 마켓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어쩌면 이렇게 재활용을 예쁘게 했을까? 벽에 쓰여있는 낙서와 알록달록한 등과 반짝이를 보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의 깊이와 넓이를 떠올렸다. 밤에 오면 엄청나게 신날 텐데….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함과 역동적이고 일상의 매너리즘을 날려버릴 에너지를 길어 올리는 샘. 아이들이 커피와 케이크를 사 와서 같이 먹었다. 숟가락과 그릇 모두 일회용이 아니어서 좋았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일상 속에서의 작지만 의미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절묘하게 결합된 마켓을 나와 헝가리 국립 박물관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