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한 강변 길을 따라가다가 골목길을 몇 군데 거쳐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의 입구부터 좌석 하나하여
나 벽에 있는 인테리어들이 모두 과거의 흔적들을 담고 있었다. 지나간 세월 속 공간으로 시간여행을 가는 느낌이다. 공간이 시간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철길만이 아니었다. 가게 곳곳에 세월의 흔적들이 빼곡해서 음식을 먹기 전 작은 박물관을 관람하는 느낌이었다. 실내를 지나 작은 실내가 또 나온다. 좀 더 아늑하고 비밀스러운 아지트 같았다. 과거에 사용하던 물건들, 사진, 신문들을 잘 배열해 놓았다. 시간의 흔적들을 모으고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취향은 만국공통이구나.
주문을 받으러 온 남자 직원이 인상적이었다. 몸의 골격이 탄탄하고 근육의 완성도가 높아 보인다. 헬스 PT를 받으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가꾸어가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호기심과 연대감은 자연스럽게 친밀감으로 이어진다. 굴라쉬는 2011년 프라하에서 맛본 원형에 아주 근접했다. 진한 국물과 부드러운 채소와 고기조각들이 몸을 감싼다. 체코 프리마토르 브루어리에서 만든 크래프트 생맥주와 잘 어울렸다. 헐 1872년에 설립된 양조장이다.
체코의 Promator 브루어리는 1872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맑고 명쾌한 라거맛이 일품이다. 산뜻한 라거의 맛과 굴라쉬의 아늑함이 잘 어울려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맥주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라거를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지난 6일 동안 비엔나와 프라하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이에 샐러드와 송어 요리, 배추 요리가 등장했다.
큰 딸이 준비한 두 가지 이벤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서커스 공연을 예매했고 전문 사진사가 진행하는 가족사진 촬영인데 궁금했다. 서커스는 너무 오랜만이다. 서커스는 가격이 2만 원대라고 한다. 어릴 적 동네에서 관람했던 서커스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다. 가족사진은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형태로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여행 와서 이런 이벤트를 맞다니.... 오래오래 추억에 남을 것 같다. 계획 없이 다니는 여행에서 두 가지 계획이 생긴 것도 큰 변화다.
노년의 신사 한 분이 입구로 들어오셔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피아노 자리에 앉으신다. 연주는 훌륭했고 식사자리가 우아하고 품격 있는 공간으로 변했다. 12년 전 부다 지역의 식당에서 두 사람이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으로 일행들을 즐겁게 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할 때 여쭈어봤더니 20년 전 여섯 명의 멤버로 한국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인상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여행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들이었다고 했다.
현금을 인출한 큰 딸이 1000 포린트를 줘서 팁통에 넣어 드렸다.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살짝 감사를 표하는 그 표정에서 인생을 그동안 잘 살아온 사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느낌을 포착했다. 나도 저렇게 늙어갔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피아노 한 두곡 정도는 연주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박하고 맛있는 저녁,
다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마켓에 들러, 내일 아침 먹을 채소와 부족한 맥주 그리고 안주를 샀는데, 물가는 프라하와 비슷해서 부담이 없었다. 강변을 바라보며 거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만들었다. 넓은 공간이 주는 평 안 함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