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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서 3일 : #1. 도착

by 새로나무


유럽으로 가기 전 가장 고민했던 구간이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 비행기와 버스와 기차를 저울질하다가 가격과 편안함 대신 반나절의 시간을 편안히 휴식하는 기차로 선택했다. 직항으로 부다페스트에 오는 큰 따라과 합류하는 시간도 적당하다. 6번 칸 바로 뒤 열차의 맨 끝에서만 볼 수 있는 실루엣 속에 지나간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있다. 안동과 영주, 도계와 청량리, 강릉으로 향하던 기차는 새로운 공간으로 나를 안내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흔들리며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과 끝없이 이어진 철로를 보고 있으면 가슴속에서 약간은 뜨끈한 것이 올라왔다. 그 추억들이 철로 위로 나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과거의 시간을 나르는 철길은 공간이 시간을 상징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6시간 40분 걸려 부다페스트역에 도착했다. 부다페스트 켈레펠트역과 부다페스트 델리 역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마도 내 티켓은 부다페스트 켈렌펠트역이었는데, 델리 역에서 내렸다. 두 역간의 거리가 상당하다. 부다페스트 역은 예전보다 훨씬 낡은 모습이다. 분명히 기차 안에서 트램티켓 발급 방법을 숙지했는데도 불구하고, 티켓 발급에 실패했다. 화면에 머르기트라는 지명은 나오는데 티켓을 살 수 없는 화면으로 계속 넘어갔다.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트램 티켓 발급기로 안내해 줬다. 한 대는 고장 나 있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를 하고 계신 분들이 있어서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인포메이션센터에서 원웨이 티켓을 발급받고 정거장을 향했다. 이론과 검색 그리고 실전은 이렇게나 다르구나, 아무리 점검을 해도 막상 현장 상황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트램을 내려 머르기트 다리를 걷는다.

역에서 받은 인상과 달리 아름다운 옅은 저녁노을이 강물빛에 물감처럼 섞여 아득하게 느껴졌다. 다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인상에서 역동적인 느낌을 받았다. 부다페스트는 변화무쌍하고 뭔가 새로운 일이 계속 일어날 것 같은 자유분방함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숙소 앞에서 문자를 하니 큰 딸은 숙소 앞 트램역에 마중 나가 있었다. 저기 멀리서 뛰어 오는 모습에 반가운 감정이 올라왔다. 2018년 12월 바르샤바행 비행기로 도착한 다음날 새벽,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던 리투아니아 빌니우스에서 8시간을 버스를 타고 왔을 때 마주했던 추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서 만나도 반가운데, 며칠 안 봤을 뿐인데도 먼 여행지에서의 조우는 새롭고 반갑다.

영화 인셉션에서 봤던 엘리베이터를 닮아,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낡은 철골 구조안에 자그마한 공간이어서 두 번에 나눠서 타고 올라갔다. 숙소는 환상적이었다. 화려한 거실과 안방 또 하나의 작은방, 화장실 두 개와 세탁시설까지. 대략 한 60 평 정도 되어 보이는데 너무 아늑하다. 에어비앤비가 선사해 준 선물, 2005년부터 수십 차례 유럽에 와서 묵었던 어떤 숙소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곳이었다.


집주인의 예술적 취향과 디테일을 엿볼 수 있는 그림과 장식품, 조각품들과 소파와 식탁을 비롯한 인테리어가 아주 깔끔하고 약간 화려한 느낌도 든다. 부다페스트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6일 동안 묵혀두었던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니 시원하다.

아침 조식만 챙겨 먹고 기차에서는 마땅히 식사할 거리가 없어서 그냥 패스했는데, 이렇게 건너뛰고 난 뒤에 맞는 저녁, 부다페스트에서의 첫날 저녁, 기대된다. 여행에서 적당한 배고픔이 맛있는 식사를 보장해 준다는 역설을 이번 여행 내내 경험하고 있고 마칠 때까지 삼시 세 끼를 벗어나 적당한 배고픔과 채움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체코에서는 체코 전통음식을 먹었고, 이곳 헝가리에서는 헝가리 전통음식을 만날 수 있는 Firkasz Rstaurant로 향한다. 유럽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한국식당을 가끔 찾아다녔으나, 곧 현지식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 지역에 가면 그 지역 음식을 먹고,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음식을 먹는”것은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동물은 삼키고, 인간은 먹고, 영리한 자만이 즐기며 먹는 법을 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는 19세기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미식가로 유명했던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의 말처럼, 그곳에 가면 그곳 사람으로 생활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를 즐기는 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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