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조식을 먹고 그동안 다니면서 계속 먼 거리에서 보았던 국립 박물관으로 향한다. 11년 전 이 박물관 이층 로비에서 오페라 하이라이트 공연을 관람했었는데 그때 이렇게 화려한 건물인지 몰랐다. 추운 겨울 어두운 저녁, 운치 있는 풍경과 음악에 집중하느라 이 건물의 세세한 풍경들은 기억 속에 희미하다.
체코의 역사, 체코를 현재까지 만들어온 분들의 상징조각들이 같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도 얀 후스의 동상을 보게 되었다. 가장 눈길을 끈 곳은 광물전시관이다. 개별적으로 특이한 모양과 아름다운 색상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워 하나씩 하나씩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언제 내가 이런 광물들을 깊이 바라보고 그 의미를 살펴볼 수 있겠는가? 모두 다 담을 수 없는 아쉬움에 눈에 띄는 몇 가지를 담았다.
체코 국립박물관(Národní muzeum)은 프라하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자연사와 역사 전반을 아우르는 방대한 소장품. 특히 희귀하고 특이한 광물 샘플이 많다. 1818년에 설립되었고, 현재는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의 상징적인 건물(구관)과 현대적인 신관을 포함해 여러 개의 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물학 전시관에서는 체코와 유럽 전역에서 채굴된 희귀 광물들이 많고, 일부 표본은 반짝이는 결정 구조가 인상적이다.
박물관 내부의 아담하고 강렬한 색상의 카펫과 대리석이 빚은 장면이 아름답다. 조용한 발걸음 소리, 멍하니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노(Achat, Agate)는 줄무늬를 가진 석영 변종이다. 반투명 광물로 화산암 내부에서 형성된 후, 실리카가 오랜 기간 침전하면서 생성되었다. 체코, 독일, 브라질 등이 주요 산지이다. 아파타이트(Apatit, Apatite)는 인산염 광물로 형광성이 있으며, 화강암과 변성암에서 발견되었다. 브라질, 캐나다, 체코 등이 주요 산지이며, 치아의 주요 성분과 비슷하다.
베릴(Beryl)은 녹색(에메랄드), 파란색(아콰마린), 무색 등 다양한 색상을 가지고 있다. 체코, 콜롬비아, 브라질 등이 주요 산지다. 보석으로 가공되며, 체코에서도 장신구로 사용된다. 황산염 광물인 블로다이트(Blodit, Blödite)는 소금호수나 건조한 환경에서 형성되었다. 체코, 독일, 칠레 등이 주요 산지이며, 산업적으로는 비료나 화학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돌로마이트(Dolomit, Dolomite)는 탄산염 광물이며, 해양 퇴적물에서 형성되며, 석회암과 함께 발견된다. 체코, 이탈리아(돌로미티 산맥) 등이 주산지이다. 건축 자재, 산업용 원료로 사용된다. 게드라이트(Gedrit, Gedrite)는 열과 압력을 받아 변성된 암석에서 형성되었다. 체코, 노르웨이, 미국 등이 주요 산지다.
형석(Fluorite)은 다양한 색상을 띠며 형광성을 가지며 열수 광상에서 형성되었다. 체코, 중국, 멕시코 등이 주요 산지이며 형광을 띠는 특성이 있어 실험실, 산업용 광물로 활용되었다.
할 라이트(Halit, Halite)는 암염(鹽焰, 소금 결정)으로, 바닷물이나 염호가 증발하면서 생성되었다. 폴란드, 독일, 미국, 체코 등이 산지인데, 소금의 원료다. 체코에서도 과거에 소금이 중요한 무역 품목이었고, 할 라이트 결정은 아름다워서 수집용으로도 인기 있었다.
재스퍼(Jaspis, Jasper)는 적색이 많으며, 줄무늬나 점이 있는 불투명한 광물로, 퇴적암에서 발견되거나, 화산활동 중 형성되었다. 미국, 인도, 체코 등이 주요 산지이며, 체코에서는 장신구, 조각품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강한 에너지를 가진 돌로 여긴다고 한다.
오팔(Opal)은 다채로운 색상의 규산 광물로 실리카(SiO₂)가 물과 함께 침전하면서 생성되었고 호주, 멕시코, 체코 등이 주요 산지다. 체코에서는 ‘체코 오팔’이라는 독특한 갈색~노란빛 오팔이 유명해. 보석으로 많이 사용되며, 고대부터 행운을 부르는 돌로 여겨졌다.
유황(Síra, Sulfur)은 노란색 결정성 광물 화산 활동이나 열수 분출 과정에서 생성되었다.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체코 등이 산지이며, 과거에는 의약품, 화약 제조, 방부제로 사용되었고 체코에서도 유황 온천이 유명하고, 치료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스미소나이트(Smithsonit, Smithsonite)는 아연 탄산염 광물인데, 아연 광상이 산화되면서 형성되었다. 체코, 미국, 멕시코 등이 주요 산지이며 아연의 중요한 원료이며, 컬렉션용 광물로도 인기가 많다. 토파즈(Topaz) 강한 경도를 가진 보석 광물로, 단단한 결정(경도 8)이 특징이며 화강암과 페그마타이트 광상에서 형성되었다. 체코, 브라질, 러시아 등이 주요 산지이다. 체코에서 역사적으로 보석으로 사용되었으며, 왕실 장신구에도 쓰였다.
체코가 산지인 광물이 이렇게나 많다니! 자랑할 만하다. 산업적 유용성을 벗어나 지구의 구성원들을 한꺼번에 면접본 느낌이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La Strada)'에서 줄타기 곡예사인 일 마토(Il Matto, 'The Fool')는 젤소미나에게 "이 작은 돌멩이에도 존재 이유가 있다"라는 대사를 오랫동안 되새겨 본 기억이 떠오른다. 하찮은 돌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속에서, 사물을 가볍게 대하지 않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다.
광물과 내 몸 모두 작은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랜 세월을 깊이 간직한 지구 선배들, 한 줌의 원소로 돌아갈 존재가,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도 어마어마한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존재들을 바라보는 느낌....
아..... 름...... 답...... 다.
박물관을 나와 그 뒤쪽으로 향한다. 큰 공원이 있는 방향으로 갔다. 그동안 봤던 구시가지는 주로 관광객들이 몰리고 시민들의 일상을 잘 볼 수 없었다. 일상적 삶이 펼쳐진 골목들을 지나, 공원으로 진입한다. 공원은 아담하고 나무들이 울창해서 가을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언덕에 올라서니 저기 구시가지 프라하성을 비롯해서 모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웹으로 검색을 해 보니 여기가 노을이 질 때의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한다. 한 번에 모든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 이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고 담아질 수 있을까?
바질리카 성 루드밀라(Bazilika sv. Ludmily)는 나메스티 미루(Náměstí Míru, 평화 광장)에 위치한 로마 가톨릭 교회로, 보헤미아의 성녀 루드밀라(Svatá Ludmila)에게 헌정되었고, 2022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소바실리카(Basilica minor)로 승격되었다.
이 성당은 사람들이 조용히 와서 기도하고 가기 적당한 곳이라고 한다. 잠시 앉아서 묵상하다가 졸았다. 졸음에서 깨어나 잠시 기도한다. 끊임없이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순간들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발견된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하고 확장시킨 이해를 바탕으로 이런 의미를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건 없을 거라고 기도를 했다. 아내와 딸은 바깥 벤치에 앉아 있었다. 혼자 호젓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은 이기적 욕심을 꾸짖는 바람에 자리를 옮긴다. 잠깐의 평화와 휴식.... 딸이 검색한 카페로 향한다.
한 자리 남은 테이블에 앉았다. 평일 오후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카모마일 티백만 먹다가 원물을 우려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은은한 향이 몸안 가득 퍼진다. 시그니처 메뉴는 시나몬 케이크인데 판매완료되었다니 아쉽다. 대신 럼블 케이크를 시켰다. 모양이 예뻐서 주문한 비건 샌드위치는 적응하기 쉽지 않은 맛이라 서로 미루다가 반쯤 남겼다.
한국에서 카페라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음료만 소비하던 곳에서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작업공간으로 변모하다가 지금은 휴식공간 혹은 제3의 공간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아내와 딸은 시야를 넓히는 경험을 하고 있다. 새로운 공간과 결합된 마시고 먹는 느낌의 기억은 경험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안함,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함에 기댄 채 오후가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