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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03. 2020

동치미 국물 깊은 곳에서 춘천에 관한 추억을 떠올리며

막냇동생 덕분에 춘천에 많은 추억을 쌓아놓았다. 그 추억중 가장 깊이 남아있는 것은, 군대 면제받은 형을 앞에 두고 군대 가기 전 강원대 백령관에서 청아한 기타 소리와 함께 김광석의 <나무>라는 노래를 들려주었을 때다. 그 깊은 울림은 김광석이라는 가수를 좋아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 아름다운 노랫말과 점점 깊어가는 나무처럼 노래가 2절 안에서 완전히 완성된 나무를 보여주고 있어서 감동이 오래갔다. 그의 다른 노래들도 너무 좋았다. 노래는 음식과 같다.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더욱더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 추억을 쌓는 동안 같이 먹었던 음식은 춘천 닭갈비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 직장을 잡지 못해 주머니 사정이 뻔한 것을 아는 둘째 동생이 기 타고 가면서 슬며시 내게 돈을 넣어주었다. 군대 제대하고 복학하기전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이란 걸 알고 있는 나는 화들짝 놀라고 한편으로는 무안하고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군대가기전 동생 친구들 앞에서 형이 체면을 세우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음식은 추억을 소환한다. 그리웠던 추억들이 지금 여기로 오게 만드는데 음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꼭 그 음식이 아니라도 음식은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두었던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내서 현재의 나를 어루만지며 내 삶을 위로한다. 그러니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끼니를 해결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곧 내 삶의 조각들을 모으는 실로 기가 막힌 일이다.


상호가 너무 특이해서 단 한번 방문으로 기억해낼 줄 알았는데 몇 번 검색하면서 익숙해졌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우선 막국수를 만드는 동안 서비스로 주시는 감자 조각을 먼저 한 입 먹는다. 치아에 와 닿는 부드러운 느낌 그리고 입안에서 죽처럼 반죽되며 감자 특유의 흙냄새가 엉킨다. 언제부턴가 껍질 하면 무조건 제거하고 먹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은 그 흐름을 역행한다. 껍질째 잘 씻어서 쪄놓은 것이므로 껍질과 같이 먹을 때 특유한 흙내음이 배가 된다. 아주 어렸을 때 맛본 흙 맛에 대한 트라우마를 털어낼 수 있는 맛이다.


그리고 동치미 국물을 한 사발 국자로 떠서 먼저 동치미 국물을 맛본다. 동치미 국물의 제일 덕목은 시원함이다. 그 시원함은 일상의 팍팍함과 피로를 날려버릴 만큼 깊이가 있다. 시원한 국물과 무를 아삭아삭 씹어 먹는다. 그 사이에 녹두전이 등장했다. 녹두전은 바삭한 질감 대신 촉촉한 질감으로 와 닿는다. 첫맛에도 녹두의 배합비율이 월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녹두의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녹두전 한 점에 간장을 살짝 얹고 시원한 열무김치와 같이 씹으며 먹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녹두에는 류신, 라이신 발린 등 필수 아미노산(성장발육에 도움)과 비타민 B1, B2 성분(기력 회복), 시스테인, 글리신, 아스파르트산, 알라닌, 아르기닌 성분이 들어 있어 신체 신진대사를 활발히 해주며, 체내 각종 독성분을 해독,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소화에 부담이 없고, 칼륨 성분은 이뇨작용을 촉진시켜 나트륨을 제거해주며 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좋다.


오늘의 메인 메뉴인 막국수가 등장한다. 동치미 국물을 그릇을 들고 한 모금 마신다. 평양냉면을 먹을 때와 같은 미각이 느껴진다. 그리고 위에 얹어 있는 새싹과 양념을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한 젓가락씩 맛을 음미한다. 역시 메밀의 구수한 맛과 동치미 국물, 아삭아삭 씹히는 새싹이 조화를 이룬다. 이따금 열무김치를 같이 입안에서 버무린다. 툭툭 끊어지는 메밀의 질감도 경쾌하다. 메밀 막국수 한 그릇이 비워갈 즈음 바닥에 깔린 것들과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다. 씹히는 감으로는 약간의 견과류와 작은 고깃덩어리들이 같이 느껴진다. 그게 서로 조화를 이루어 고소한 맛이 난다. 마지막은 역시 그릇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남김없이 국물과 같이 마신다. 뒷맛이 깔끔하고 개운하다.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한 그릇 먹으러 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뒷맛은 하루 종일 입안에서 맴돌며 지속되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식재료가 자라던 토양과, 만들어주는 사람의 계획과 솜씨, 그리고 시장기를 해결함과 동시에 몸에 좋은 것을 먹는다는 기분 등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정돈된 프로세스로 인식된다. 그리고 그 뒷맛의 여운을 통해 하루를 살아내는 힘을 얻는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맛보고 그 세계 속에서 잠시 머무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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