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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05. 2020

선어회를 먹을 수 있는 곳

- 일본을 가지 않아도 숙성된 회를 만날 수 있다

2007년 일본 동경을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선어회를 먹어보았다. 활어회가 익숙하던 나의 입맛에 그들이 내놓은 회는 대부분 숨이 죽어있다. 알고 보니 저온 숙성시킨 회다. 시간을 알 수야 없지만 아무래도 반나절이나 하루쯤은 숙성시킨 것 같았다. 그 뒤로 여러 번 오사카나 삿포로, 후쿠오카 등을 방문하며 이 선어회의 맛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런데 주문해서 나오는 회의 양이 너무 작아 매번 아쉬운 마음을 가졌다. 그래도 가끔 오사카오 같은 곳의 뒷골목을 다니며 허름한 음식점을 찍고 들어가면 예외 없이 맛있는 선어회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 곳을 만났다. 막걸리를 좋아하시는 어르신께서 추천해주셨다. 우선 허름한 가게의 위치와 좌석 배치, 주방과 식탁과의 거리가 아담해서 마음에 들었다. 메인 회접시가 나오기 전에 고등어 선어회를 먼저 맛본다. 고등어 특유의 비린내를 제거한 고등어회는 오직 제주에서 맛볼 수 있다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부드럽고 고등어 특유의 향내는 은은하게 연한 살결과 함께 느껴진다. 삼치회가 약간 달고 사르르 녹는 맛이라면 고등어 회는 촉촉하고 쫀득하게 씹히는 질감이 있다고 표현한다. 그렇지만 그 둘 모두 고소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고소함과 얼마나 많은 시원함이 있는가? 사람마다 음식을 느끼는 미각 수용체의 반응도 다르지만 그 다른 느낌을 표현하는 언어도 제각기 다르다. 나는 내가 고소하고 시원함을 너무 남용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달리 그 맛을 표현할 언어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아 고소하다. 아 시원하다. 이 말에 모든 내 느낌을 담을 수 있다.


활어회를 먹을 때 생선의 종류에 따라 다르고 칼질을 하는 시기와 부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입에서 씹을 때 물결을 헤치던 근육들의 저항감이 약간은 느껴진다. 그 저항감이 신선할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약간의 미안함도 든다. 선어회는 그런 저항감을 숙성시키는 시간 동안 없애준다. 그러니 회가 촉촉하고 부드럽다. 그 생선들이 나고 자란 환경과 바닷속 풍경들을 상상하면 더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다. 생명은 생명을 먹음으로써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한 생명을 먹음으로써 나의 삶을 유지한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버팔 소 사냥을 나가기 전날 버팔 소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당신의 후손들을 어쩔 수 없이 잡아먹어야겠기에 양해해 달라는 뜻의 제사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명 있는 것들을 먹어야 한다.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미각을 생각하고 부드러움과 촉촉함과 고소함을 얘기한다는 게 한편으로는 잔인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의 순리를 따라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도 볼 수 있다. 이왕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것, 즐겁게 먹어서 그 먹이가 내 몸속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놓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생선에게도 덜 미안할 것이다.


회에 막걸리는 생뚱맞지 않다. 오히려 소주에 회를 먹게 되면 회보다는 소주를 더 마시게 된다. 천천히 막걸리를 반잔씩 먹으며 회를 먹는 맛 또한 기가 막히다. 이 집은 지평 생막걸리를 판다. 얼근하게 취할 무렵 서더리탕을 시킨다. 끓는 물에서 우려내고 익혀진 내장은 감칠맛을 더해준다. 내장의 맛 역시 고소하다. 그리고 마침표는 해물라면으로 한다. 해물의 시원함과 얼큰한 양념과 라면의 쫄깃함이 버무려져서 과식을 부르는 맛이다. 라면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라면으로서 제 역할을 반드시 하고야 만다는 신념을 나에게 불어넣어주는 것만 같다.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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