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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06. 2020

아늑하고 푸근한 시골맛으로

- 칼국수와 부추부침개

단 한 번의 방문으로도 음식에 깊이 스며든 오랜 시간의 흐름과 멋진 음식을 만들기 위해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축적된 음식의 내공을 깨닫게 되었다. 누렇게 숙성된 풋고추 채 썰어 놓은 접시와 푸른 풋고추 채 썰어 놓은 접시, 파와 고춧가루 등이 들어간 양념장, 동치미 국물과 무, 김치 등의 반찬은 오랫동안 음식을 손님들에게 내놓으면서 쌓은 노하우라고 생각한다. 음식의 품격은 만드는 사람의 품위 속에서 만들어진다. 나는 음식의 품격을 통해 그 음식을 만든 분의 품위 속에서 으쓱해진다.


맨 처음 이 가게를 찾았을 때는 심심하게 먹었다. 그저 관성의 영역에서는 간장이나 양념은 짠 음식의 영역이니 위장의 건강을 위해서는 가급적 피하라는 말에 기울어져서 그랬나 보다. 그런데 소금은 살아가는데 필수적 음식이다. 먹어야 산다. 준비해주신 양념과 반찬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하니 식사 메뉴들도 입안에서 잘 살아난다. 그건 내 생각의 영역이 아니라 오랫동안 음식을 만들고 손님들을 대접하면서 이 분들이 깨우친 끝에 내놓은 하나의 해답인 것이다. 운동장을 넓게 쓰는 축구선수가 공을 잘 차고 빈 공간을 잘 선점하듯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것들을 최대한 잘 활용하는 것이 맛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길이다. 최근에 깨달은 바다. 음식을 먹는 자세는 선입견과 편견을 최대한 멀리해야 한다.


처음에 반한 칼국수가 남긴 여운은 오래갔다. 심심한 국물맛과 얇디 얇은 면발의 신선함. 우선, 간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사골 베이스의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국물로 일단 장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여기에 얼갈이배추 한 점, 호박 한두 점 같이 씹어먹어도 좋다. 그다음에는 숙성된 고추와 풋고추 슬라이스를 적당량 올린다. 거기에 양념장과 파조각 그리고 후추를 같이 얹어 넣고 휘저으면 칼국수 먹을 준비가 완성된 셈이다. 얇은 칼국수의 면발은 입안에서 치아에 저항하지 않고 녹아들어 간다. 후루룩 한 입 한 입 먹다 보면 몸 전체에 온기가 퍼져서 땀이 난다. 전날 술을 마셨다면 국물을 추가로 달라고 하면 바로 주신다. 그 맑은 국물은 처음 맛 그대로 내 몸에 퍼진다. 2/3 가량 비워갈 무렵부터는 젓가락의 수고를 덜 겸 숟가락으로 칼국수를 먹어도 좋다. 면발의 두께는 내 마음처럼 가볍고 얇다. 그리고 부드럽다.


수십번을 다닌 끝에 이렇게 맛있는 칼국수와 시골맛의 만두를 같이 결합한 메뉴는 어떠냐고 여쭤보니 이미 있다고 하신다. 주인 어르신이 얄밉다. 왜 진작 칼만두를 메뉴판에 써놓지 않으셨냐고 ? 가성비 갑의 칼만두는 압도적이다. 시골에 갔을 때 어르신들이 아침부터 권하는 밥그릇 한가득을 넘어 탑을 쌓아놓는 고봉밥을 떠올리게 된다. 저렴한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는 꽉 찬 한 끼 식사다. 음식을 먹을 때면 늘 가격과 가치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가격과 가치는 절대 비례할 수 없다. 가치는 가격 너머 커다란 대지를 만들고 있다. 가격을 넘어서면 더 멋진 가치라는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그 칼만두에 조밥을 주문해서 두세 숟가락 뿌려 먹으면 조밥 특유의 아삭하고 톡톡 튀는 질감과 부드러운 칼국수 면의 질감과 만두의 깊은 속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사이드 메뉴 또한 넉넉한 품격의 맛이다. 건진국수는 칼국수 육수 베이스에 별도의 멸치 육수를 혼합해 만든 여름용 작품이다. 칼국수 면발보다 훨씬 가늘다. 차게 해서 마시는 육수는 청량음료수나 다름없다. 여기에 채 썰어 넣은 호박과 계란, 버섯을 같이 섞어서 먹으면 입안 가득 시원하다. 부추전은 겉보기에도 튀김가루 혹은 밀가루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둘레는 좀 더 바삭하고 안쪽은 좀 더 촉촉하다. 부추밭과 호박밭을 배회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원재료의 성질을 그대로 살리면서 전 고유의 바삭하면서도 촉촉한 식감을 유지해준다. 단점은 막걸리를 부르는 맛인데 점심이라 먹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배추전은 배추전의 교본과 같이 질 좋은 배추에서 나오는 즙과 밀가루가 잘 어우러져 시원한 맛을 낸다.


봉화와 같은 시골에 가서 거기 살고 계신 어르신들에게 떼를 써서 만두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이런 맛의 만두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옛 어른들이 해주시던 음식들은 대부분 투박하다. 맛을 내는 양념들이 귀하던 시절의 맛은 그렇게 투박하지만 한편으로는 생명을 건강하게 해주는 맛이다. 찐만두는 내오자마자 먹지 않으면 금세 굳어진다. 그러니 바로 먹어야 한다. 참 신기하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는 마트 만두들도 그렇게 빨리 굳지 않는데.... 그런데 그 만두를 칼국수 국물에 담가 먹으니 따뜻하고 맛있다. 그리고 그 만두를 으깨서 국물 전체에 퍼지게 하니 걸쭉하니 좋다.


위의 얘기를 묵이 들으면 굉장히 서운해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쩌랴 칼국수가 압도적인 것을....물론 먹어보면 시골스런 메밀묵 맛 그대로 즐길 수 있다. 담백하고 산뜻하고 여운이 남는 맛이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깔끔하다. 그렇지만 이 가게의 메인 메뉴는 칼국수 칼만두. 꼭 우리가 이름이 지칭한 대로 살 필요가 없듯이 가게 상호가 그러니 거기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기준도 없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지 않고 내용이 형식을 구속하지 않는다. 음식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직 그 음식에 담긴 사람의 정성 그리고 그 정성을 알아보고 감사하는 마음.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음식은 제 할 일을 다하고 장렬하게 산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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