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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07. 2020

속 편안하게 해주는 맑은 샤브샤브 국물

칭기즈칸이 말을 타고 서양으로 침략전쟁을 벌이러 갈 때 오랜기간 동안 보관도 용이하고 식량으로 쓴 말린 고기를 썰어 먹었다는 얘기로 미루어 샤부샤부는 몽고의 요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샤부샤부는 몽고 사람들의 요리라고 굳게 믿었었는데 검색해보니 완전히 다르다. 샤부샤부의 기원은 슈왕양로우(涮羊肉, シュワンヤンロウ)라고 하는 중국의 히나베 요리(火鍋料理)에서 발전했다는 설이 있다. 슈왕양로우는 신선로처럼 생긴 나베(鍋)에 양고기를 익혀 진한 소스에 찍어 먹는 것으로 지금의 샤부샤부와는 다른 형태의 요리였다. 하지만 일본으로 전파되면서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쇠고기를 사용하고 소스도 간장을 기본으로 하는 요리로 변화했다는 이야기다. 


중국에서 건너온 이 요리가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52년경이다. 오사카(大阪) 에이라쿠쵸(永楽町, えいらくちょう)에는 주로 스테이크를 판매하던 서양식 쇠고기 요리 전문점 스에히로(スエヒロ)가 있었다. 이 음식점은 미야케 츄이치(三宅 忠一)가 운영하였으며, 바로 이 사람에 의해 오늘날의 샤부샤부가 탄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종업원이 큰 양동이에 물수건을 헹구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서 다시 국물에 고기를 적셔 먹는 요리를 떠올리게 되었으며, 물수건을 헹굴 때 나는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라는 소리를 따 요리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샤부샤부 [shabu-shabu] (세계 음식명 백과, 최지유, 김온)


샤부샤부는 언제 먹어도 속을 편안하게 해주며 뒤탈이 없는 요리다. 깔끔하고 담백한 국물과 약간의 소고기, 그리고 배추와 숙주, 버섯 등 다양한 채소를 같이 맛볼 수 있다. 예전에는 소스의 맛을 잘 몰랐는데 자주 먹을수록 소스의 역할을 알게되는 듯하다. 숙주는 녹두의 어린싹을 말한다고 한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즐거움이 밀려온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 동안 숙주를 더 가까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물 베이스로 숙주를 밑에 깔았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시원하고 맑은 맛이 살아있다. 얼큰한 시원함과는 다른 가벼우면서 시원한 맑은 맛이다. 그 위에 가장 중요한 배춧잎을 썰어 넣는다. 시원함은 배가 된다. 배추의 시원함은 주변 음식들을 아우르는 맛이다. 여기에 느타리버섯과 팽이버섯을 넣는다. 평생 산림자원을 연구하신 생명과학대학 교수님께서 16년 전에 버섯에 관해 얘기하셨다. 인류의 마지막 남은 음식과 영양의 보고가 버섯이라고 했다. 느타리버섯과 팽이버섯은 은은한 흙내음으로 국물을 장식한다.


국물이 익어가는 동안 간단한 한식 뷔페를 즐긴다. 고사리와 겉절이 김치와 마늘종은 밥과 잘 어울린다. 갓 지은 밥을 만나는 우연찮은 행운을 경험한다. 전기밥솥에서 익힌 밥이 맛이 없다는 편견은 잠시 내려놓고 갖 지은 밥의 향기에 흠뻑 취한다. 쌀이 좋지 않으면 이런 밥 내음을 뿌릴 수 없다. 관건은 과식하지 않도록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인데 초반부터 갓 지은 밥을 참기가 쉽지 않다. 겨우 겨우 인내하며 네 숟가락 정도로 그친다. 저 뒤에 먹게 될 죽을 위해 일정 공간을 남겨둔다. 시선을 돌려 양상추에 키위 소스를 뿌리고 그 위에 치킨 한 조각을 얹어 먹는다. 치킨 버거를 먹는 식감을 처음 발견한 동료의 귀띔 덕분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샤부샤부를 먹는다. 우선 잘 익은 숙주와 배추를 건져서 소스에 찍어 먹는다. 샤부 샤부에 들어가는 소고기는 국물을 통해 많이 먹는다. 고기는 몇 점 안 먹는다. 국물에 흩어져있는 고기 내음이 은은해서 좋기 때문이다. 각종 채소와 소고기를 우려낸 국물은 맑고 깊고 시원하고 따스하다. 국물이 내가 되고 내가 다시 국물에 적셔진다. 음식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즐겁다. 서로 하고 싶은 메시지만 주고받기 때문이다. 국물은 먹어서 없어지기도 하고 증발되기도 하는데, 중요한 건 짠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디어 갓 지은 밥을 뜨러 간다. 밥에 김가루와 당근 조각과 파조각에 참기름을 넣으면 된다. 얼마 남지 않은 국물에 넣고 국자로 서서히 저어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님은 광산일을 그만두시고 엿 공장을 인수하셨다. 옥수수가루를 풀어넣고 큰 그릇에 대형 주걱으로 계속 젖어줘야 서서히 가열되며 엿이 만들어진다. 왜 갑자기 죽을 만들면서 엿을 만드는 일을 떠올린 걸까? 처음에는 양이 많을 것처럼 보였으나 서로 한 주걱씩 덜어내니 금방 바닥이 보인다.


얼른 한 주걱 떠놓은 죽이 못내 아쉬워 잘 익은 당면을 서너 젓가락 집어온다. 그리고 죽에 당면을 넣고 가위로 잘게 썬다. 숟가락으로 비벼놓으니 그 모양 또한 보기 좋다. 당면의 짙은 색감과 죽의 흰색과 김의 검은색, 당근의 붉은색, 파의 파란색이 잘 어울린다. 사람도 이와 같이 잘 어울려 좋은 빛깔을 낸다면 좋겠다고 문득 생각해본다. 결국 과식을 하고 말았다. 음식을 만드는 영역과 맛을 보는 영역은 구분되어 있지만 그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가게에서 음식을 내 스타일대로 만들어 먹는 재미를 든든한 한 끼니 속에 넣어둔다. 다음에 다시 꺼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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