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을 쉬고 계단을 오르면 힘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허리나 무릎에 미세한 통증조차 잡히지 않는다. 영하로 내려갔던 기온은 다시 회복되어 계단 창문을 하나씩 열어놓는다.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하늘의 날씨는 맑고 쾌청했으며 공기는 깨끗했다. 구름은 높고 낮게 좁고 넓게 그리고 다양한 층위를 이루는 입체적인 모양을 매일매일 선물로 주었다. 처음에는 사라질까 봐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그저 당연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사진 찍기를 그만두었다. 물론 아주 멋진 구름이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하늘을 덮었다. 오전에는 완전히 뿌연 먼지가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21층에서 바라보니 건너편 산들이 보이지 않는다. 약간은 우울한 감정이 든다.
그리고 그 약간의 우울한 감정이 새로운 우울을 만들어낸다.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쌓게 되는 감정의 일차적 원인은 타인이 제공하지만 결국 그 감정을 확대하고 나를 공격하게 만드는 것은 스스로 만드는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한번 태어난 부정적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나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 계단을 오르며 땀을 흘리며 그 감정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확인한다. 문득 데이비드 호킨스의 메시지를 생각해냈다. <의식혁명>에서 시작해 최근에 읽은 <놓아버림>까지 떠올렸다. 그의 메시지를 PPT로 정리하고 또 급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공유하기도 하고 브리핑을 하기도 했는데 정작 나는 그의 메시지를 일상 속에 가져오지 못한 것 같다. 역시 깨달음은 단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놓아버림>에서 그가 말한 메시지를 따라가 본다.
놓아버림 기법을 활용하면 마음속 애착과 걸림돌을 없앨 수 있는데 그는 이것을 항복 기제(mechanism of surrender)라고 표현했다. 항복 상태란 창조성과 자발성이 마음속 갈등에 가로막히거나 방해받지 않고 나타날 수 있도록 특정 방면의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난 상태를 뜻한다. 놓아버림으로써 우리는 감정적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은 감정이 몰아가는 것이고, 개개의 감정은 다시 겹겹이 쌓인 수많은 생각에서 나온다. 사람들 대부분은 감정을 억압하고 억제하거나 회피하려 애쓰면서 살아간다. 이로 인해 억제된 에너지는 심인성의 고통, 신체장애를 유발한다. 육체적인 면에서는 억제된 감정을 없애면 몸속의 자율 신경계로 흘러들던 기운이 줄어들고 막힌 경혈이 뚫리고 몸이 최적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놓아버림은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 긍정적 감정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부정적 감정을 놓아버리면 계속 커지는 행복 속에 내면의 진정한 큰 나에 대한 자각이 커지면서 큰 나를 갈수록 또렷이 인식하고 경험한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챙겨서 중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긍정적 감정만 남기고 표출할 수 있게 된다. 회피는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림으로써 감정에서 벗어나는 기제다. 감정이 올라오지 않도록 다양한 활동에 의존하게 되는 데 활동 자체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을 놓아버리면 감정 이면의 에너지를 즉각 포기하고 항복함으로써 압력이 줄어드는 결과를 얻는다. 감정에 대한 저항 때문에 감정이 지속되는 것이다. 감정에 저항하거나 감정을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감정이 달라지면서 강도가 약해진다. 감정에 저항하지 않으면 감정 이면의 에너지가 사라지면서 감정이 없어진다고 한다.
감정에 저항하지 않고 놓아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의 메시지는 복잡하지 않고 너무나 단순하다. 다만 놓아버리는 지점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런데 쉽게 동의되는 면은 바로 감정과 스트레스의 원인이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는 점이다. 내 안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찾은 것만 해도 감사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타인의 생각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므로 어쨌든 내가 해결할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만 있다면 된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다. 그리고 내 안에서 찾으려면 나는 강한 마음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함은 쉽게 부러지고 구부러지고 으스러질 수 있으나 부드러움은 쉽게 상처받지 않고 유연하게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다. 그리고 부드러움은 저항하지 않고 상황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년에는 가을이 짧게 지나갔다. 기나긴 여름 뒤에 잠깐의 가을이 지나고 곧바로 추운 겨울이 다가왔다. 올해는 수십 년 전의 정상적인 흐름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비교적 긴 가을을 만나고 있다.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내 몸은 조금씩 더 단련되고 내 마음도 조금씩 더 단련되어 추운 겨울과 코로나를 이길 힘을 얻고 있다. 계단은 내 몸과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면서 발끝에서 엉덩이 끝까지 시원함을 느낀다.
(147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