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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13. 2020

2011년 프라하 #1

- 미루는 습관, 잠 못 이루는 비행, 흑맥주와 돼지고기 요리

유럽은 여러 번 다녀왔지만 동유럽은 처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출장을 포기하고 휴가로 가게 된 것도 그렇고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쌓여서 갈 수 있을지 했는데 막상 비행기에 오르고 나니 아주 홀가분하다. 처음 미국행 비행기를 타던 2002년에는 전날부터 비행기 타는 것에 대한 공포감으로 밤을 새우고 시카고까지 가는 동안 한 숨 자지 못했었다. 잦은 출장과 여행으로 이제는 이것이 좀 익숙해진 감이 든다. 어제도 아주 잘 자고 일어나자마자 미뤄두었던 원고 한편 1시간 만에 해치우고 공항으로 향했다.

언제나 이 습관을 고칠지 알 수 없지만 늦게 출발하고 미뤄두는 습관 말이다. 오늘도 적절한 시간에 출발하지 못하고 어중간한 시간에 나와서 김포공항을 경유하는 버스를 타자니 너무 늦을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택시를 탔다. 돈으로 메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좀 그만해야 할 것 같다. 다음번에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짐을 싸는 것도 선택과 결정의 문제임과 동시에 전날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싸야 할 짐의 목록을 정리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비행기 이륙하면 늘 두근대던 가슴이 오늘은 조용하다. 일곱 살 때 4미터 높이의 다리에서 추락한 경험은 평생 나와 함께 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높은 곳을 지나가는 공포감은 여전하다. 물론 자주 다니다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아무래도 편안하지는 않다. 긴 시간 동안 어차피 잠을 못 잘 거니까 일찌감치 준비해온 책을 꺼내 든다. <뉴튼 사이언스> 시리즈 중 태양계에 관한 책을 보았다. <우주의 탄생>을 보면서 느낀 신비로운 느낌들을 지속시킬 수 있다. 태양계 행성 중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균형관계 속에서 이렇게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일까? 달은 언제 생기고 역시 지구와의 관계는 어떤가? 인간은 달에 가기 위해 혹은 다른 태양계 행성들을 탐사하기 위해 언제부터 이렇게 노력해왔고 그 노력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등등 여기에는 깊이 탐구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널려있었다.

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동네가 얼마나 좁은지 실감하게 된다. 때로는 과학적 현실이 상상의 지평선 너머에 있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은하계 이 끝에서 저끝까가 빛의 속도로 10만 광년이 걸린다. 그 중심에서 태양계까지는 대략 3만 5천 광년이 걸린다. 얼마나 거대한가? 만약 이 우주를 만든 절대자가 계시다면 아마 그 많은 별들을 일일이 신경 쓰시기가 어렵지 않을까? 그런 고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의미를 잘 되새기면서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이 순간을 즐기며 이 순간에서 행복의 충일을 느끼고 또 그런 행복감이 옆에 있는 사람들과 공감을 형성하고 동감을 자아내고 마침내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온 우주가 그런 행복에 싸인 것을 느낄 수 있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체코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로 처음 접했다. 나중에야 그 영화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영화 버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론으로 등단한 친구에게 연락해서 요즘 읽을거리를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주저 없이 그를 추천했다. 친구의 표현에 의하면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그의 글은 깊은 관찰과 사유 과정을 통해 나의 몸 전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출발해서 <농담>, <불멸>, <웃음과 망각의 책>, <향수> 등등 그의 책은 읽을 때마다 섬광처럼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정치는 인간의 운명을 매우 불행하게도 만들고 그렇지 않게도 만들지만 이데올로기라는 철조망은 아무래도 개별적인 인간의 행복감이나 운명을 힘들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그가 다루고 있는 인간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은 결국 나의 일상적 삶에도 삶의 태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는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 깊이 사유하고 있다. 이것과 저것의 분명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존적이고 현실적인 선택과 그에 따른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삶의 주변을 형성해갈뿐이다.


아이스하키 강국 체코는 언젠가 무적의 미국과 맞붙어 이긴 적이 있다. 멋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언제 들어도 멋진 드보르작의 음악도 체코를 떠올리게 한다. <현악 4중주 아메리카>와 <교향곡 7,8,9번>,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4중주>등의 레퍼토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시벨리우스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그의 음악에서는 머언먼 옛날의 조상들 간의 교감을 생각하게 하는 애절한 선율들이 느껴진다. 우리의 선율들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스트라빈스키는 여전히 숙제다.

 프라하 거리를 걸으면서 느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역사적인 의미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거리라는 점에서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를 돌아보리라. 당대의 역사적인 사건과 역사 속에서 호흡을 했던 사람들의 숨결이 건물에 혹은 광장에 혹은 이 대기 위에, 그리고 후손들의 유전자 속에 변형된 형태로 남아있으리. 그들의 현존재를 느끼는 것이 역사와 대화하는 법이 아닐까?  역사 속에 존재했던 분들의 현존재를 느낀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삶이 녹아있는 건물, 그림, 글, 음악 등에서 그들이 느끼고자 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살펴보는 것일 것이다. 역사와 예술, 그리고 무엇보다 철학적인 이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들 것이다. 다른 것들보다 글을 읽고 이해하고 해독하는 능력은 이 모든 것들의 전제가 될 것이다. 그것이 표현 수단 중 가장 보편화된 양식이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자주 타더라도 쉽지 않은 것은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잠을 청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자두는 게 여행의 피로를 일정 정도 해소시킬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한국시간으로 11시 45분, 체코 시간으로는 오후 4시 15분 경이다. 비행기를 타는 날은 하루가 아주 길다. 최소한 6-8시간 정도 시차가 빠르거나 느린 지역으로 가기 때문에 하루를 40시간 가까이 보내게 된다. 조금씩 몸을 움직이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신선한 과일을 될수록 많이 먹어 몸에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해야겠다. 물론 비타민 C 챙겨 먹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제 1시간 정도 뒤면 착륙이다. 프라하 거리의 첫 모습은 어떨까? 잠을 못 자 피곤하기는 하지만 매우 궁금하다.

여느 유럽의 공항과 같이 깨끗하고 조용했다. 스타렉스를 탔는데 짐 싣는 칸을 너무 크게 비워둬서 오랜만에 짐과 함께 이동했다.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예전에 수도원이었던 곳인데, 그중 마구간 자리에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일행 중 한 분이 체코 주재 외교관과 친분이 있어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가족단위로 식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체코에 대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국민소득도 2만 6천 불 정도의 선진국이라는 것, 헐 그저 아이스하키나 축구를 잘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독일의 약간 저소득 도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애초 동유럽에 대해 소매치기 얘기를 많이 했지만 실제로 헝가리나 폴란드를 가더라도 이탈리아만큼 극성스럽지는 않다고 한다. 면적은 한반도의 1/3이니 대한민국만 따진다면 거의 3/4 수준이겠지. 프라하도 인구 140만 정도 체코 전체 인구가 1천만 정도. 지난번 북유럽 때도 확인한 바와 같이 국토면적에 비해 인구밀도가 대단히 낮다. 그것은 동유럽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내친김에 여기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아주 유명한데, 입장료가 얼마나 되냐고 했더니 우리 돈으로 2만 몇 천 원 정도란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자국 오케스트라의 공연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국민의 문화생활, 즉 개별적 삶의 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노동자들도 휴식 중에는 철학책을 보고 일이 끝나면 공연을 보러 다니는 것이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우리와는 아주 다른 측면이다. 클래식 공연이 약간은 권력화 되고 고가여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일상적으로 가벼운 가격에 접할 수 있는 이들이 부럽다.


외국에 가면 가장 설레고 기대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먹거리다. 어느 틈엔가 나는 그 지역에 가면 그 지역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한국식당을 찾기 바빴는데 뭔가 김 빠진 느낌을 받았다. 현지식을 먹어야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비행기에서 잠깐 살펴본 체코는 해물요리보다는 주로 육류요리, 그것도 돼지고기와 오리고기 요리가 유명하다고 했다. 우선 흑맥주를 한잔했다. 맥주 가격은 너무 쌌다. 우리 돈으로 3천 원 정도나 할까? 역시 맛은 깊고 풍부했다. 이어서 나온 빵은 주재료가 통호밀로 만든 듯했다. 그 빵에 발라먹는 버터와 크림은 일품이었다. 빵의 맛도 아주 깊고 그윽했다.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호밀이 아니라면 맛보기 어려운 맛이었다.


이어서 돼지고기 요리인데, 무릎 쪽과 등갈비 요리가 등장했다. 무릎 요리는 우리가 행사 때마다 먹던 바비큐 요리와 비슷했지만, 맛의 깊이는 훨씬 달랐다. 그리고 껍데기를 통으로 잘 익혀서 콜라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그만일 정도로 그 맛이 좋았다. 우리가 가끔 먹는 돼지 족발이 이와 비슷하다. 등갈비도 굉장히 커서 그거 하나와 무릎 쪽 몇 점을 먹고 나니 아주 배가 불렀다. 붉은색 채소인데 이름은 모르지만, 많이 먹었다. 숙소로 향하는데, 졸음이 밀려왔다.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고 각자 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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