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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18. 2020

2011년 크라쿠프 #3

- 야기엘론스키 대학, 설원, 야간기차

어제 11시에 취침해서 오늘 오전 6시에 기상했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에 더없이 좋은 일정이다. 밤늦게까지 음주할 일이 없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 그동안의 해외여행은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여행이었다. 밤늦게까지 술먹고 얘기나누다가 오전 일정은 그 피로감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된 여행을 할 수 없었다. 나의 직관과 감성 그리고 그동안 쌓여왔던 지식들을 활용해 그 사람들과 사물, 그들의 전통을 이해해야 하는 것인데 이게 제대로 될리가 있나 ?


창밖은 설원이다. 소담스럽게 내리는 함박눈이 어제 아우슈비츠에서 본 그 모든 끔찍한 광경들을 잠시 잊게 해준다. 홍차를 한잔 마시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런게 바로 제대로된 여행이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식사는 참 즐겁다.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적당히 먹어야 하는데 든든한 아침을 먹게된다. 오늘도 마찬가지. 그리고 짐을 호텔에 맡겨두고 다시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약간의 자유시간동안 음반 구경을 하러갔다. 폴란드 음악에 대해서는 쇼팽정도밖에 몰랐는데 이들의 전통적인 음악이 담긴 음반을 추천해달라고 하여 몇개 샀다. 클래식 음반중 싼 것은 8천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아참 미리 야기엘론스키 대학을 들러 대학 가이드 투어 티켓을 예약했다. 12시에 다시 만나 투어를 시작했다.


1364년 5월 12일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3세(Kazimierz III)에 의해 일반 대학(Studium Generale)으로 처음 설립된 것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설립 당시 인문학, 의학, 법학 3개 학부를 갖추었다. 카지미에시 3세가 사망하자 1390년대까지 문을 닫았고 1400년 7월 야기에워 왕(King Vladislaus Jagiełło)에 의해 다시 설립되면서 신학부가 신설되었다. 이후 대학은 왕립야기엘론스키대학(Royal Jagiellonian College)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5세기에는 유럽 각지에서 200명 이상의 학생이 매년 입학했고 특히 법학, 수학, 천문학 분야 교육에 명성이 높았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지역이 종교에 따라 나눠지고 16세기 후반 유럽 내 대학 수가 증가하면서 외국인 학생의 입학이 크게 줄어들었으나 학교는 계속 유지되었고, 16세기 말 교명이 크라쿠프대학(Kraków Academy)으로 바뀌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야기엘론스키대학교 [Jagiellonian University] (두산백과)


이 대학은 오래된 전통만큼 아주 고풍스러운 모습이 곳곳에 배어있었다. 안내하는 이의 발음을 탓해야할지 나의 영어실력을 탓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나의 영어실력을 탓해야 한다. 폴란드 사람이 하는 영어를 못알아들으면 어디가서 알아들을 수 있는가 ? 돌아가면 꼭 먼저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절대 구두선에 그치지 말자고 다짐을 해본다. 코페르니쿠스가 있었던 대학이어서 그런지 천문학과 관련된 자료들이 많았다. 입구에서 대학의 로고를 사용한 제품들을 돌아보고 사진을 찍었다. 올해 꼭 해보고 싶은 일중 하나가 우리 대학의 로고를 사용하여 제품들을 만들고 그 품질을 일정한 기준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래된 물건들을 본다. 그 물건들이 어떤 경로로 탄생했는지 그리고 누구의 손을 거쳐 현재까지 왔는지 알길은 없다. 물론 간혹 설명이 붙어있긴 하지만 그걸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 그저 그 느낌만 보고 그리고 사진에 담는다. 세월이 흘러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곳에 간 감흥을 추억하는 것외에 또 하나의 느낌을 간직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3층과 4층에 전시된 조선의 백자 작품들중 다완 한 점을 한 30분동안 본 적이 있다. 나의 상상은 어느새 조선의 어느 도공에 가있었다. 그리고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순간의 불꽃같은 그의 눈빛을 상상했다. 다완의 깊이와 선 그리고 묘한 빛깔을 통해 그 도공이 쏟았던 열정의 깊이를 상상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에 약간의 눈물이 일렁였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작품들속에서 그런 상상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의 역사를 내가 모르고 이들의 정서를 내가 모르는 이상. 하지만 세월의 깊이가 묻어있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고풍스런 가구들과 조각들, 그릇들, 그리고 대학의 오랜 전통을 이어온 고풍스런 모습들을 차례차례 카메라에 담았다, 대학의 사명은 어떤 것인가 ? 오늘날 우리의 대학들은 이와 같은 아카데믹한 전통을 잘 이어오고 있는가 ? 아니면 그런 것은 부수적인 것이고 대학의 경영을 잘하는 것이 목표인가 ? 학생들이 대학에서 얻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 미래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것인가 ? 어떤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인가 ?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대학에서 해야할 역할은 무엇인가 ? 단순한 지식과 정보의 전달인가 ? 아니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품성과 예의 그리고 인간지평에 대한 이해와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이해인가 ? 최초의 대학이 지향했던 바는 인간에 대한 것과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도 철학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학문의 본령인 철학에 대해 얼마나 학생들에게 그 가치를 전달하고 있는가 ? 부수적인 교양학문으로 전락한 한국의 대학에서 철학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해야 하는가 ? 분명 지금까지와 같은 자세를 견지한다면 어려울 것이다.


 기업가정신과 아카데미즘은 이율배반적인 것인가 ? 아니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분명 관심을 두어야 한다. 빵을 도외시한 학문은 어렵지 않겠는가 ? 그러나 그것만이 강조된다면 대학에서 다룰 수 있는 컨텐츠는 좁아지고 낮아질 것이다. 가치지향적이기 보다는 기능적이고 수단적인 측면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모든 시선들이 향하게 될 것이다. 기업가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과연 이런 가치들을 대학에서 긍정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 아카데미즘과는 어떤 방향으로 서로 맞닿아야 할 것인가 ? 이 고풍스런 숨결속에서 난 내가 무엇을 하면서 대학과 학생과 교수들에게 봉사해야할 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점심은 폴란드 전통음식을 제공하는 곳으로 향했다. 스프중 갈릭 스프가 나의 구미를 확 당겼다. 다른 분들도 양파와 버섯 스프를 주문했다. 그외 샐러드와 만두와 같은 것을 주문했는데 역시 스프는 기대했던 이상으로 아주 맛있었다. 만두는 그저 그랬고 감자요리도 아주 맛있었다. 모두 합쳐 4만8천원 정도밖에 하지 않으니 그 맛있는 식사와 멋진 가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과 유럽을 온다면 프라하와 크라코프가 될 것이다. 

크라코프 성으로 향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에너지 수준이 높았던 폴란드가 독일침략의 제일 희생양이 된 것은 처음부터 에너지 수준이 낮은 게르만을 대표하는 히틀러로서는 총칼에 의한 폭력만이 그 에너지 수준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히틀러라는 정신이상자와 그를 둘러싼 집단의 광기로만 이 역사적 비극을 생각할 수 있을까 ? 오랜 역사동안 이어져온 열등감이 거기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강조했던 것은 거꾸로 그들의 치욕적이고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뒤쳐진 역사에 대한 감정이 먼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면면이 이곳 크라코프 성에서도 느껴졌다. 오랜 역사와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성 곳곳에 배어 있었다.

성을 나서는데 여전히 눈이 내린다. 이곳 폴란드에 올 때부터 내리던 눈은 오늘 폴란드를 떠날때까지 내린다. 눈에도 종류가 여럿이다. 푸근하고 따뜻한 눈과 차갑고 날리는 눈. 지금 여기 내리는 눈은 바로 그 푸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길을 걷다가 잠시 카페에 들렀다. 커피와 차를 주문하고 난 아이스크림과 팬케익을 주문했다. 맛있다. 여유가 있다. 이런 여유로운 여행은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돌아볼 현재의 삶과 앞으로 맞을 미래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며 단 아이스크림을 녹여본다.

 저녁 먹을 곳에 짐을 잠시 보관하고 쇼핑센터로 향했다. 크라코프는 인구 100만이 채안되는 도시다. 쇼핑센터에 입점하고 있는 가게들이 200개가 넘는다고 하니 그 규모에 비해 놀라울 따름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쇼핑할 분들은 쇼핑하시고 나와 다른 분은 짐을 맡겨둔 곳과 호텔에 들러 짐을 찾아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식당에 짐을 맡겨놓고 난 먼저 기차역으로 향했다. 반드시 한번 확인하는 것은 아주 좋은 습관이다. 특히 외국여행에서는 변수들이 많기 때문에 미리 미리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시 가보니 헤매게 되어있었다. 이번에도 정확한 곳을 알려준 사람은 폴란드 아가씨다. 그곳에는 몇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몇번 홈에서 탈 수 있는지 알려주는 종이가 있었다. 프라하에서는 화면으로 언제 출발하는 열차가 몇번 플랫폼에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이곳은 그런 화면은 뜨지 않고 그냥 인쇄된 곳에 적혀있었다. 아쉽다. 그걸 사진찍어왔으면 누가 가더라도 다음번에 확실할 뻔 했는데....

쇼핑가셨던 분들을 기다리며 얼그레이 차한잔에 이렇게 일기를 적고 있다. 홍차맛에 반하게 된건 얼마 안되지만 이제는 홍차한잔에 노트북이나 이렇게 아이패드를 열어놓고 일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지금 보고 있는 크라코프 역광장과 홍차 한잔과 아이패드에 열심히 내 머리속에 있는 생각들, 그동안 느껴왔던 것들을 옮겨 적는 일이 아주 낭만적이고 행복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또다른 방법이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확정되지 않고 명확하지 않은 하나의 파열음으로 존재하지 않고 확정되고 명확한 나자신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그것은 파열음이 아니라 메아리라고 불러도 좋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무수한 질문들이 다시 나 자신을 통해 나에게 소통을 하고 말을 걸고. 그래, 답이 뭐 있겠는가 ?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거지 .... 이 과정을 즐기려 노력할 뿐이지.... 이 과정에서 얻은 그 많은 것들을 같이 공유해야할 뿐이지....

호텔에서의 저녁도 진수성찬이었다. 스프와 샐러드, 그리고 요리들. 폴란드는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국물이었다.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단 하나의 방법은 따뜻한 국물을 삼키는 것이다. 그것도 그 지방에서 나는 채소, 곡물과 짐승의 부산물들을 넣어 끓인 정갈한 국물. 전통적인 폴란드의 스프는 바로 이러한 깊은 맛을 간직한 훌륭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 국물의 전통은 우리의 국물과 많이 닮아있다. 양파스프와 폴란드 전통스프, 버섯스프와 갈릭스프가 모두 닮아있다. 김치국과 미역국, 무우국 등

내가 너무 서둘렀나 ? 아무튼 우리는 정들었던 크라코프를 뒤로 하고 부다페스트로 향한다. 그곳에는 또 어떤 기다림과 만남과 헤어짐이 있을까 ? 앞으로 만나게될 여행의 세번째 기착지에 대한 기대와 정들었던 크라코프를 떠나오면서 섭섭한 느낌이 교차되는 지금 이 순간의 나의 감정과 생각이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느낌이 아닐까 ? 창밖에는 가로등 불빛들이 순서대로 점등하고 나는 빠르게 달려가는 기차안에서 오늘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 한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의 속도만큼이나 여유 없이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한 깊은 반성이 오늘의 메인 주제가 되겠다. 난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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