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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16. 2020

2011년 크라쿠프 #2  

-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그리고 쇼팽

아우슈비츠로 가는 일정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침부터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여행 올 때 방심하고 패딩과 같은 옷을 안 챙긴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리고 일정과 교통수단에 대한 착오로 혼란을 겼었다. 할 수 없이 여행안내소로 가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먹을 걸 사러 갔다. 바나나, 딸기, 방울토마토, 초코바, 물, 빵 등 여러 가지를 사서 버스에 탔다. 버스는 비좁은 편이었다. 일반버스는 아니다. 아마도 유치원생 데리고 다니는 차가 아닐는지? 칼라인이라는 안내자는 예쁘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침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말을 걸었던 아가씨, 버스에서 친절하게 안내해준 아가씨, 음식점에서 서빙 보던 아가씨 등 모두 다 너무 예쁘다. 창밖으로 설원이 펼쳐져 있다. 평상 시라면 설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부분 평평한 곳이라 설원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런데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수용소로 향하던 유태인들의 입장에서 설원을 바라보게 된다. 막막한 설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하기 전에 무거워졌던 마음은 관람을 하면서 서서히 현실이 되었다. 학살 직전 잘랐던 머리카락이 보관되어있는 창고를 보는 순간,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느낌이 전해졌다. 공감과 동감을 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그런 처지의 사람들에 관한 얘기들은 차라리 저 먼 우주에서 벌어졌던 일이 아닐까라고 상상을 해보았다. 인간이 인간을 공격하고 죽이는 것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일이다. 단순한 먹을거리에 관한 분쟁에서 출발해서 나중에는 종교적인 이데올로기가 개입하면서 한층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영국에서 발생한 신교와 구교 간의 단 하루에 걸친 학살로 수천 명이 신의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죽어갔다. 그것은 신에 의한 심판이 아니라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죽임이었으나, 그들은 그 학살 앞에 절대자를 갖다 붙였다. 그리고 1차 대전을 거쳐 이제 인간을 체계적으로 죽이는 시스템을 보게 되었다. 최종 해결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대량학살.

비르케나우 역에서 내리자마자 대열을 나누는 사진을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특히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 임신한 여자 등 약한 사람들은 바로 가스실로 보내 거기서 살해당했는데, 겁에 질린 표정으로 걸어가는 어린이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폭력적인 광기 그것도 집단 광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들이 죽기 전에 모아두었던 신발과 빗과 그릇들을 보면서 가슴속에서 울음이 미쳐 나오지 못하고 숨죽여 터졌다. 차분히 안내하며 멘트를 하는 가이드를 보며 이분은 사명감 없이는 절대 이런 일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결기 같은 것이 느껴졌으며, 오랫동안 해설을 해서 반복되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입구에 걸린 Arbeit macht frei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는 허망한 문구가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그 자리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원형인 벽돌집 그대로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다. 이곳에서 영화를 많이 찍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처음에는 전체적인 조감도와 관련된, 그다음은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주로 정치범과 포로수용소로 사용되던 시절의 얘기들이 나오고 그다음은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130만 명이 학살당하던 1943년부터 1945년까지로 나눠서 수용소 시설에 그대로 당시의 사진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던 곳을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그들이 가지고 놀던 인형과 신발을 보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주로 정치범과 소련군 포로들이 수용되었던 곳이 전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주로 유대인들을 가두고 학살하는 장소로 변모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었다. 역사를 보는 이들의 눈, 역사를 이해하는 이들의 시각이 이렇게 생생한데 그럼 우리는? 일제시대의 그 많은 만행들과 친일행위가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우리들은? 2시간 가까운 아우슈비츠 관람을 마무리하고 잠시 휴식을 한 후 비르케나우로 이동했다. 아우슈비츠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이곳은 내리자마자 황량함 그 자체였다. 

엄청난 규모의 수용시설과 비인간적인 장소들을 돌아보았다. 엄청난 규모도 규모지만 기차역에서 내려서 포로들이 한 부류는 노역 수용소로 한 부류는 가스실로 걸어갔던 그 현장을 걸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벌판 한가운데 별다른 난방시설도 갖추지 못한 수용소를 보면서 이런 날씨를 어떻게 견디며 살았는지 그냥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늘따라 날씨도 쌀쌀하고 바람도 불어서 더 뼈저리게 이 공간이 내게 와 닿았다. 그리고 어디를 가건 계속 아우슈비츠에 전시되어있던 사람들의 사진이 어른 거린다. 하나같이 굶주림과 힘겨운 노역 그리고 학대 등으로 모두 어둡고 바짝 마른 모습들이다. 짧게는 와서 한 달도 되지 않아 죽고 건장하고 젊은 사람들도 미처 2년을 채 넘기지 못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마지막은 지하로 이어지는 가스실인데, 지금은 붕괴되어 그 형체만 남아있지만 그 가스실로 이동했을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을 상상해본다. 끔찍하다. 지금 이렇게 평화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할 수밖에 없다. 고인들이여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라!


시내로 오는 길에 피로가 몰려왔다. 긴장을 하고 갔는데도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들이었다. 시내에 당도하여 오늘 저녁 공연 볼 곳에 예약을 하러 가고 나머지 분들은 쇼핑을 하신다. 로열 챔버 콘서트가 있는 교회에 들렀다. 작고 아담하면서 은은한 신성한 분위기가 퍼지는 장소였다. 그런데 좀 추워 보였다. 시간이 되어도 표를 파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발길을 돌려 쇼팽 콘서트를 하는 곳으로 갔다. 옛날에는 아마도 귀족이 살았을 보네로프스키 팰리스라는 곳에서 콘서트가 열린다. 이곳은 음악회가 일상화되어 있고 이렇게 소규모로 아주 많이 진행된다. 참 품위 있게 사는 사람들이다. 일상화된 연주회에 대한 부러움이 마음속에 움튼다. 꼭 클래식이 아니라도 일상적으로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익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약하고 나서 음반가게로 향했다. 음반을 사는 것은 책을 사는 것만큼이나 내게는 아주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다. 에밀 길렐스의 멋진 재킷과 바흐의 선율은 처음 접하는 거라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 샀다. 그 외 아르헤리히와 클라라 하스킬의 음반도 같이 샀다. 옆 가게에서는 면세품을 세일하고 있었다. 내일 차분히 와서 좀 더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를 때는 질러야지!

쇼팽 리사이틀은 아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우리가 아는 큰 콘서트장이 아닌 아담한 70명 정도 들어가는 고풍스러운 방에서 진행되었다. 예술이 일상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즐길 줄 아는 문화가 너무 부러웠다. 레퍼토리는 쇼팽의 마주르카, 폴로네즈, 녹턴, 왈츠, 즉흥곡, 즉흥환상곡 등으로 짜여 있었는데, 군데군데 약간의 실수도 있었지만 비교적 무난한 공연이었다. 쇼팽의 연주를 폴란드의 한 복판에서 듣는 느낌은 더더욱 특별하게 와 닿았다. 그의 곡들은 폴로네즈에서는 힘차고 왈츠에서는 부드러우며 녹턴에서는 아늑한 평화를 느낄 수 있다. 쇼팽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앙코르곡으로는 특이하게도 그라나도스의 안달루시아였다. 쇼팽과는 다른 분위기의 곡이라 인상적으로 들렸다. 그 선율들이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맴돌았다. 여행과 음악은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 어느 곳에 대한 추억은 어떤 음악과 서로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킨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우슈비츠의 우울한 분위기를 쇼팽의 곡들은 차분하고 진지하게 위로해주고 있다. 밤은 깊어가고 음악의 선율들은 잠드는 내 귓가에 계속 맴돌아 내 몸과 마음을 감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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