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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16. 2020

2011년 크라쿠프 #1

- 길나섬, 유레일패스, 소금광산

길을 나서서 길에서 행복을 느끼고, 길 나섬에 대해 감사하고, 길나설 수 있도록 배려해준 사람들과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며, 내 발이 닿아 머무는 곳의 사람과 사물들에 대해 감사하고, 사람과 사물과 자연과 부지런히 교감할 수 있는 이 무디지 않은 나의 감성에 대해 감사하고, 뭔가 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을 날려버리지 않고 이렇게 담을 수 있는 여력에 감사한다. 원래 모든 것이 하나였다는데 분화된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은 착각이 아니라 30여 억 년 전 처음 출현한 박테리아로부터 끝없는 진화과정을 거쳐 오늘날 이렇게 분화되었으므로 이들과 연대감을 갖고 공감과 동감을 표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에도 감사할 일이다. 


태양계에 관한 공부가 여기 이곳에서 사람들과 교감하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데 새삼 놀라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나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태양계의 지구를 제외한 태양과 그 모든 행성들이 절묘한 균형관계를 갖는 행운 속에서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교감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감과 동감을 표시하는 것은 하나의 정언명령이다.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나는 길나섬, 그리고 그 길을 즐김, 길을 느낌, 길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낌, 길에서 만나는 사람, 사물, 자연, 그리고 우주까지.



흔들리는 기차라 좀처럼 잠을 이루기가 어려울 것 같았는데 금방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 2시 30분에 잠이 깨었다. 5시간 정도 잠을 잔 것이니 몸과 마음도 개운했다. 창밖을 열어보니 아득한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아마 시베리아 횡단철도도 이와 같을 것이다.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혼자 짐을 두고 간다는 것이 위험성이 있어서 궁리를 해보았다. 차선책으로 생각한 것은 세면대의 물을 틀고 거기 볼일을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화장실 간사이 누군가 내방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그면 난감할 것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오니 이제 잠이 오지 않는다. 불을 끄고 누워 한없이 펼쳐지는 설원을 감상하면서 쪽잠을 청했다. 날이 밝아오고 밖의 풍경이 아쉬워 사진을 찍어본다. 아참 그사이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차장이 잠시 와서 우리가 끊은 표가 폴란드에는 해당이 안 되는 거라 별도 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잠시 후 <European East Pass>에서의 East Pass를 확인하고는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자기가 착각했다고 한다. 요지는 유레일 패스를 사게 되면 통용되는 지역을 알아봐야 하는데, 유레일 패스에는 폴란드와 몬테네그로 그리고 세르비아는 별도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예약할 때 east pass를 발권받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확인한 건데, 열차표를 발권받을 때 프라하에서 크라쿠프, 크라쿠프에서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에서 프라하로 가는 티켓만 발권받으면 안 되고 반드시 유레일패스를 같이 발권받아야 한다. 거기 전체적인 일정 즉 몇 번을 갈아타는지 며칠부터 며칠까지 언제 어디로 가는지를 기입하도록 되어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물게 된다는 것이다.


 아침에 차장이 갖다 주는 홍차와 크로와상 빵은 맛있었다. 홍차의 향기와 설원이 어우러져 여행의 감흥을 자극했다. 가끔씩 느끼는 건데,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듯한 매우 기분 좋은 들뜬상태가 바로 지금의 느낌이다. 역에 도착하여 곧바로 택시를 탔는데, 이 친구가 아주 설레발이 심하다. 결국 택시 요금을 바가지 쓰고 말았다. 호텔 시설 끝내준다. 더구나 이른 아침에 갔는데도 체크인을 해준다. 한국 같으면 어림도 없다. 호텔에 짐을 풀고 아침은 크라쿠프 시내에 가서 먹기로 했다. 잠시 후 크라쿠프 시내에 도착했는데, 올드타운이라고 하면 된다. 이곳도 역시 프라하와 마찬가지로 아름답다. 옛날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2차 대전 최대의 피해국인 폴란드는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바르샤바 등 많은 도시가 폭격을 맞고 초토화되었다. 유럽 전체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고 처음부터 강력하게 저항한 것이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 크라쿠프는 그런 피해로부터 살아남았다. 전통적 건물들이 많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야기 엘 론스 키라는 대학은 유럽 최초의 대학이고 거기 코페르니쿠스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우선 시장기를 해결하기 위해 맥도널드로 향했다. 나야 한국에 있으면 전혀 갈 일이 없다. 일행 모두 잔뜩 시켰는데, 3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한국보다 물가가 아니 프라하보다 물가가 훨씬 싸다. 아침을 해결하고 여행자 안내소로 향했다. 거기서 내일 아우슈비츠 갈 티켓을 끊고 먼저 소금광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가는 버스는 304번이고 왕복 6 즐로티 정도(2400원 정도)이니 여타 유럽보다 요금이 싸다. 버스에서 티켓을 발권받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자동판매기의 어느 버튼을 눌러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앞에 앉은 아가씨에게 할 수 없이 부탁을 했다. 5장을 발권받을 수 있도록 세팅하고 동전을 넣으려 이리저리 찾는데 그만 처음부터 다시 하게 생겼다. 그 사이 그 아가씨는 어디로 가고 다른 아가씨에게 부탁을 했다. 두 여인 모두 예쁘다. 이 아가씨는 아주 친절하게 모두 발권을 해주었다. 그리고 자기도 소금광산에 간다고 한다.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는데 2주간 아르바이트를 하러 그곳으로 간다는 거다. 안심하고 창밖의 경치를 감상했다.


소금광산은 듣던 대로 아주 섬세하고 또 웅장한 조각들이 사방에 있었다. 광산을 생각하면 아버님의 일생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는 지하 평균기온이 14도 정도라고 하지만, 태백의 그 광산은 30도가 넘는 지열에 탄 먼지로 뒤덮인 상황에서 점심까지 해결해야 하는 그야말로 인간이 일을 하기 가장 안 좋은 조건이었으니 말이다. 난 갱내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영화로만 보았지 그런데 이렇게 소금광산에 그것도 관광을 와보니 새삼 아버님의 삶의 무게와 그 인고의 세월에 대해 숙연해졌다. 소금으로 만든 큰 예배당은 아주 엄숙했다. 여러 사람이 수십 년에 걸쳐 만든, 그리고 무슨 대단한 예술적 기법이 있지도 않았지만 주변을 둘러싼 부조와 조각들은 아주 정교하고 신앙심 깊은 사람들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시내에 도착하니 오후 3시 30분이다. 식당을 찾다가 내가 찍은 식당으로 향했다. 야!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음식은 아주 맛있었다. 우선 버섯 수프와 폴란드 정통 수프를 시켰는데 그 맛이 아주 독특하고 좋았다. 굴로 쉬와 같은 폴란드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는 수프였다. 이어서 나온 샐러드와 메인 요리들도 하나같이 좋았고 무엇보다 가격이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이 집은 <European Restaurant>인데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안의 장식들도 아주 고즈넉하고 복고풍의 장식과 그림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수도 밸브와 관련된 발명 시제품들이 서너 개 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맥주도 폴란드 현지 생맥주를 먹었는데 그 맛 또한 일품이어서 석 잔을 연거푸 시켜 먹었다. 알딸딸한 게 아주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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