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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15. 2020

2011년 프라하 #3

- 시차, 휴식에 관한 성찰,  카프카, 크라쿠프로

새벽 3시에 눈이 떠서 뒤척이다가 5시 30분에 일어나 씻고 아이패드를 들고 내려왔다. 와이파이가 호텔 로비에서만 되기 때문이다. 졸리지 않았지만 왠지 어색한 기분이 든다. 시차적 응이 아직도 안되다니. 호텔 로비에서 메일을 쓰고 일기를 쓰는 동안 낡이 밝았다. 잠시 밖을 나가보니 어제보다는 춥지 않아 보였다. 시차란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가야 할 하나의 과정이다. 억지로 잠들려 노력할 필요도 없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잠이 깨면 깨는 대로 잠이 오면 오는 대로 맡긴다. 잠이 안 오면 글 쓰고 책 읽고, 생각에 잠기고 잠이 오면 행복하게 자면 된다. 약간의 경험이 쌓이면서 터득한 진리라고나 할까?

출발하던 날도 미뤄두었던 숙제거리를 잽싸게 하고 출발하느라고 결국은 택시를 타고 서둘러야 했다. 돌이켜보면 2010년 한 해가 너무 숨 가쁘고 바쁘게 지나갔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보고서에 일회성 작업들에 완전히 지쳐갔다. 
이번 여행은 출장인 동시에 휴식이다. 나의 몸과 영혼에 대한 하나의 명령이다. 지금쯤은 푹 쉬면서 릴랙스 하라고. 그래서 출장이 아니라 휴가로 왔다. 호텔에서의 아침을 먹는 나만의 요령이 이제는 생겼다.


1. 신선한 과일주스나 과일을 먹는다
2.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계란이나 스크램블을 먹는다
3. 수프로 속을 적신다.
4. 빵에 그 지방에서 직접 만든 잼과 버터를 발라먹는다
5. 연어와 같은 음식을 조금 먹는다. 짜기 때문에 가급적 빵과 함께 먹는다
6. 요구르트로 마무리한다.
7. 물과 함께 비타민 C를 복용한다.

나는 미리 중앙 역을 향했다. 혹시 잘못 타거나 우왕좌왕할까 봐 미리 사전답사를 갔다. 중앙역은 숙소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 국내 라인이라고 되어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국제선과 국내선이 그때그때 들어오는 플랫폼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따라서 출발하기 15분 전이면 그 플랫폼을 알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숙소로 향했다. 내륙에 위치한 이 나라는 지방과 외국과의 중요한 교통수단이 철로로 보인다. 오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 많은 책들이 종류별로 있었다. 아마도 유럽은 인구의 규모와 상관없이 책과 관련된 시설, 그리고 책문화가 발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의 오랜 역사적인 뿌리를 면면히 이어온 것이 책이고 보면 최근에 나도 책을 좋아하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난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세상에는 배워야 할 것들로 넘친다, 배우고자 하는 자만이 배울 수 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지식이다. 책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흔적들, 우리의 유전자 코드에 영향을 미친 무수한 흔적들을 이해하고 현재를 현명하게 살 수 있는 지침들을 살펴볼 수 있으며 미래를 향해 힘찬 날갯짓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보충한다. 책은 인류에게 영원한 친구이자, 나의 영혼을 더 자유스럽고 멋지게 만들어줄 스승이다.>라고 혼자 생각해봤다.


점심은 호텔 앞 체코 전통식당에서 먹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돼지고기 무릎 요리와 채식가를 위한 것, 그리고 내가 시킨 송어요리와 소고기에 돼지 간 소스를 얹은 것,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굴로쉬 수프(육개장에 감자를 잘게 썰어놓고 매운 양념을 적당히 넣은 것과 흡사하다.) 이 굴로쉬 수프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게 해주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냥 국물이 아니라 음식 건더기들이 거칠지 않게 들어가 있어서 한술씩 뜰 때마다 국물과 건더기들의 질감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이 굴로쉬 수프 때문에라도 동유럽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빵에 찍어먹어도 맛있다. 그리고 치즈에 버무린 야채샐러드를 시켰다. 이미 빵과 수프 그리고 샐러드를 먹으면서 배는 그득해졌다. Pilsner맥주를 한잔했다. 



카프카 박물관으로 향했다. 체코 사람들은 카프카의 콘텐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 콘텐츠가 박물관 구성의 핵심이었다. 이 박물관에 대한 잔상은 아주 오래 남을 것이다. 더불어 카프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졌다. 여기 오기 전에 변신을 읽었는데 불쾌하고 징그러우면서도 정말 황당한 느낌과 더불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난 뒤처럼 뭔가 여운이 밀려왔었다. 오늘 이 박물관에 와서 그의 내면을 조금 탐방하고 보니, 그 작품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온전히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가진 문학에 대한 애정과 관료주의(보험회사에서 변호 역할을 수행) 사이에서 분열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과 그의 고민,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한 진지한 탐구, 그와 교류했던 네 명의 여인들에 관해 그리고 유대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관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들어온다.

이제 우리는 소지구로 향한다. 어제 갔던 프라하성의 아래쪽에 해당하는 곳이다. 가는 길에 기념품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뭘 사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것이 여행의 괴로움이라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사지 않겠다는 것도 한 번쯤 고려해볼 만한 결단이 아닐까? 그래도 다들 이것저것 고르시는 것을 보니 나도 뭔가 골라야겠는데, 2월 28일 다시 프라하에 들러 이 가게를 찾는다고 하니 그때 나도 뭔가 사야겠다. 내려오는 길에 미술작품들이 전시된 가게에 들렀다. 33살 된 여류작가가 만든 작품들이라고 하는데 아주 평온한 분위기가 모든 이의 관심을 끌었다. 평온한 색채와 분위기가 프라하의 성들이 주는 느낌과 잘 어우러졌다. 

 다시 찰스 다리를 건너와서 길옆에 호텔 식당에 들어갔다. 오른쪽은 호텔이고 왼쪽은 길가에 세팅한 식당이다. 어제 추운데 이 길을 지나칠 때 아이와 엄마가 식사를 하기에 얼마나 추울까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비교적 따뜻했다. 식사는 굴로쉬 수프와 해산물, 샐러드 등으로 같이 나눠서 먹었다. 이곳의 식사는 서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저렴하다. 다섯 명이서 먹는 데 8만 원 정도면 해결이 되니 말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음식점들은 대개 음식을 잘한다. 그래서 잘 알아보고 온다면 먹는 재미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부지런히 숙소를 향해 갔다. 먼저들 들어가시고 난 기차에서 먹을 것들을 조금 사기 위해 마켓에 들렀다. 이곳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곧잘 사용한다. 내 서투른 영어는 언제쯤 괜찮아질 것인지 나도 궁금하다. 

프라하 역은 예상외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우리가 버거킹에 짐을 놓고 차를 한잔하는데 주변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우리의 짐을 노리고 있는 듯해 보였다. 에스코트해주시는 분이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고 간 마당이라 조금 긴장되었다. 그 테이블에 있는 사람과 잠시 눈이 마주쳤는데, 나에게 뭐라고 소리 지르는 것 같아 얼른 시선을 돌렸다. 괜한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갔던 모든 유럽 국가들에는 중앙 역이 있다. 전철이건 국내건 해외건 모든 기차들의 출발점이 이곳이다. 특히 내륙에 있는 국가들은 철도망이 발달해있다. 그래서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알아보지 않으면 낭패를 겪을 수 있다. 잠시 후 폴란드 크라쿠프로 가는 443기 차가 4번 홈에 도착한다는 안내가 시작되고 우리 일행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상 다섯 명이 움직이니 저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어느 곳에서건 짐을 노리는 눈들이 있었다. 기차를 타기 전에도 그랬다. 우리가 타려는 1등 칸에 가니 그곳을 전담하는 차장이 있었다. 우리 티켓을 확인하고 우리는 2명, 2명 그리고 나 혼자 이렇게 세 칸에 나눠 짐을 풀었다. 예전에는 칸이 되게 좁았다고 했다. 넓고 편안하다. 야간기차여행은 내 고향 태백과 강릉, 서울 등으로 했으나, 이렇게 침대칸을 타고 가기는 처음이다. 설렘과 낭만을 한가득 싣고 열차는 달려간다. 


기차 안은 아늑했다. 나름 세면대까지 갖추고 있어 흡족하다. 흔들리는 기차 안은 어머님 뱃속과 같다고 가끔 생각했다. 그만큼 편안한 느낌이다. 그리고 야간기차는 익숙하다. 강릉과 서울을 오가며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닐 때 늘 야간기차를 탔다. 밤이면 시간이 약간 느리게 흐르고, 에너지도 차분하게 가라앉아 뭔가를 생각하기에 적합하다. 차창에 비친 기차 안 풍경과 이따금 보이는 바깥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다. 프라하 역을 출발한 기차는 쉼 없이 달린다. 며칠간의 프라하 여행했던 잔상들이 어른거린다. 여행이란 뭔가를 경험하는 것인 동시에 특별한 추억을 쌓는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차는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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