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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19. 2020

2011년 부다페스트 #1

- 헝가리 제국의 후예

나의 영혼과 나의 존재 이유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프라하크라쿠프에서 네가 느낀 역사 속 사람들의 존재감과 동시대인들의 존재감 그리고 네가 그 속에서 느낀 너 자신의 존재감은 무엇이었는가 라고.... 비교하고 미워하고 비교하고 미워하고 어쩌다 입에 발린 칭찬을 일삼는 너의 줏대 없고 메마른 행동 너의 존재감의 전부인가라고 말을 하는 혹은 말을 거는 그 모든 풍경들에 대해 너는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가? 프라하에서의 사람들의 인내심과 도심의 풍광, 크라쿠프에서 과거의 어느 한 순간 운명과 마주한 살떨리는 간접 체험과 친절하고 순박한 사람들. 그리고 오래 지성의 역사를 구축해온 사람들의 흔적들. 비교하지 않는 자신감 있는 삶, 차창 밖으로 그 며칠동안 받았던 인상과 감정과 느낌의 보따리를 방안 가득 풀어놓고 조용히 차창밖을 응시한다. 보고 느끼고 되새김질하는 것이 여행이다.

새벽 12시 30분에 눈이 떠져 다시 잠을 청하기를 반복, 새벽 5시에 깨어 뒤척이다가 잽싸게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런데 그 뒤에 다시 잠을 청하려 하는 순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나중에 확인해봐야겠지만 지금 이 기차가 슬로바키아 구역을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슬로바키아 지역은 이 티켓이 유효하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200킬로미터 구간에 대한 요금을 내야 한단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슬로바키아 지역은 지도 내에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아마도 폴란드에서 바로 부다페스트로 직선으로 가는 열차라서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다가 디스카운트를 요구했고 50유로에 마무리지었지만 기분이 찜찜하다. 또 다른 놈들이 나타나서 요구하면 어쩌나? 그런데 그 차장의 태도로 봐서는 그렇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고.... 에구 아무튼 잠은 다 잤다.

여행에는 늘 돌발변수가 존재한다. 그 지역에 대한 준비와 이해가 완벽하지 않아서가 대부분이겠지만, 현지의 변경되는 사정에 따라 혹은 상호작용에 의해 변수가 생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그런 변수들이 내게 하나의 기회로 혹은 해결 지혜를 일깨우는 시간으로 가져가면 그만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겪은 위기들은 오늘처럼 외부의 황당한 돌발 상태가 아니었다. 아무튼 변수는 늘 존재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변수를 돌파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혜는 항상 우리 안에 있다. 그러므로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신중하고 사려 깊고 감정적이지 않게 해결하는 것이 포인트다.

슬로바키아 벌판의 풍경은 미클로시 얀초의 영화 <붉은 시편>에서 보았던 그런 들판을 연상시킨다. 빽빽하지 않고 푸르고 넓은 들판과 듬성듬성 자란 나무들이 나름대로 분위기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 지구 상의 식생대는 아주 다양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온대 몬순, 여기는 스텝이라 해야 하나? 그 위쪽은 냉대.... 다양한 자연의 모습만큼이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모습도 다양하다. 그런 면에서 서구나 동구라는 말도 역시 이데올로기에 의한 편 가르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식생과 지역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분 짓지 못하고 과거 잠시 가졌던 그 이데올로기에 의한 편가름으로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진실한 삶의 단면이나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동유럽이 아니라 체코와 폴란드와 헝가리를 난 다녀가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슬로바키아는 그대로 지나치고 오전 7시 33분에 전화기가 헝가리로 들어서고 있음을 알려준다. 해외 요금 너무 비싸다. 모두들 잠에서 깨셨길래 새벽의 해프닝을 말씀드렸다. 어라 차장이 영수증까지 갖다 주는 걸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 친구 영수증을 이상하게 발행했다. 실랑이 끝에 105유로라길래 50유로만 줬는데, 영수증에는 32, 38유로 등 총 70유로로 나와있다. 아무튼 다음번에는 잘 확인해보고 와야겠다.

 노보텔로 이동하여 체크인이 가능한지 알아보았다. 크라쿠프에서도 그랬지만 여기 사람들 인심 대단하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오전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하니 말이다. 게다가 돌아가는 날 오전 4시에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조식을 못하므로 오늘 가능하냐고 하니 가능하다고 했다. 여기도 순박하고 인심 좋은 사람들이다. 이런 친절을 베풀다니.... 짐을 맡겨두고 브런치를 먹었다. 10시면 종료하므로 15분 전이라 부지런히 날랐다. 에 또 과식을 하고 말았다. 물론 점심을 먹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배고픔을 느끼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먹을 것에 관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대단히 어렵다. 조금씩 천천히 곱씹으면 그만인 것을 이것저것 먹어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니 언제쯤 이 버릇을 고치려나 그래도 해외에 나오면 잘 먹는 게 중요하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련다.
 

인간이 먹는 것으로 존재의 위안을 찾거나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면 거의 동물에 가까울 수 있다? 이것은 너무 심각한 비약이다.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 음식의 역사이고 음식은 각 나라마다 혹은 그 나라에서도 지방마다 오랜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의 문화를 형성해왔다. 우리나라만 해도 각 지방에 따라 얼마나 많이 다른가? 그런 다양한 음식들을 맛본다는 것은 그 음식을 통해 그들의 기질과 역사와 전통 그리고 삶에 대한 자세를 배우는 것이다. 그 음식들이 나의 세포 깊숙이 스며들어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나에게 신선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해줄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것이 삶이고 이것이 자연이다.


나는 그 음식을 통해 인간문화를 느끼고 이해하며 그 음식 속에 숨겨진 자연의 신비함을 맛본다. 우주가 허락한 지구에서의 생명의 기운은 이렇게 순환한다. 이 순환의 비밀이야말로 우리가 깊이 이해해야 할 진리이다. 동물이 생명을 영위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과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 차원에서는 공통적이다. 생명유지의 본능이다. 그리고 그 넘어서 하나의 문화적인 양식으로 음식을 바라보는 것이 인간의 관점이다. 음식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즐길 수 있다.

잠시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다. 아 내 방의 경치가 그야말로 그림이다. 강 저편 국회의사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밤의 야경도 기대된다. 휴식과 샤워는 여행을 다니는 나에게 동의어다. 몸을 씻음으로써 마음도 가볍고 한결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른한 약간의 잠은 몸의 피로를 말끔히 없애준다. 물론 일시적이긴 하지만..... 드라마 <아이리스>를 촬영했던 곳을 잠시 돌아보았다. 부다페스트 시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은 강을 중심으로 나뉜다. 과거 소련군과 항전을 벌였던 곳이 부다 지역이라 전통적 건물들이 파괴되어 다시 지었다고 한다.  

헝가리인들의 소득 수준은 2만 불 정도로 낮지 않으나, 대부분 다국적 기업이 만들어낸 수익들이고 정작 이들이 벌어가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특히 가스비가 주변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부곡에 비해 4배나 높다니 상당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가스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러시아가 힘센 나라는 싸게 힘없는 나라나 특히 과거의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비싸게 공급하는 횡포를 부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외국의 횡포에 맞서야 할 이 나라의 정치가들은 대부분 부패와 연루되어 있고 아주 잘살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과거 엄청난 부패와 비리가 있었지만 사법 처리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보면 이 나라는 연구대상이다. 현재는 기독교 우파가 집권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자감세정책을 편다고 하니 어디 가나 서민들만 힘든 세상이다. 더구나 노벨상을 15명이나 타고, 원자폭탄 등 중요한 인류의 과학기술 프로젝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정도로 아주 우수한 두뇌 집단인데 귀찮은 것을 하기 싫어하고 멀리 가기 싫어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ㅎㅎㅎㅎ 하나님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주시지는 않는 모양이다.

 부다페스트 공대를 향해 출발했다. 이 대학 출신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세명이나 있다고 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노벨상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하는데, 노벨상을 받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시아인을 제외하고는 유대인이라고 한다. 그 명석하고 우수한 유전인자가 중요하리라. 그렇다고 그것을 어떤 단기적인 프로젝트로 추진하려는 어리석은 발상 역시 대한민국 관료들이 아니면 감히 상상을 못 하는 것이리라. 어렸을 때부터 원리와 기초를 중요시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체계는 바꾸지 않고 돈 몇 푼 프로젝트성으로 투자해서 단기적인 성과로 노벨상을 노리는 발상은 참 난감하다. 저녁이 되자 또 추워지기 시작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이지만 든든한 파커와 패딩은 꼭 필요하다. 그것도 제대로 만들어 따뜻한 걸로 말이다. 지금도 옷자락을 스치는 추위가 밖으로 나가기 싫을 정도였다.

영웅광장은 아주 호방한 헝가리인의 기상이 펼쳐져 있었다. 아주 오래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같은 나라였고 강대국이었다. 아마도 오늘날 1,2차 대전의 오판과 소련과의 전쟁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것은 지도자를 잘못 만난 탓이리라.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말이다. 지도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지도자는 반드시 백성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1차 대전 독일과 함께 패전국이 되어 나라의 70%를 빼앗기고 인구가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시련을 겪고 만 것이다. 이어서 2차 대전에서도 독일 편을 들었지만, 그 기간 내에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하게 되고 독일의 패망과 함께 소련의 침공을 받았을 때에도 빨리 항복하지 않고 전쟁을 치르는 바람에 국토가 황폐화되고 말았다. 이런 것들을 잘 판단하고 백성들의 뜻을 존중하는 리더를 만났더라면 그러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아침에 역시나 일찍 일어났다. 술도 별로 안 먹고 시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뒤척이다가 국회의사당을 향해 난 불빛과 햇살이 비쳐오는 장면들을 점점이 사진 찍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가 바로 옆이라 그곳을 가고 싶다고 의견교환을 했다. 빈을 생각한 건 여기서 200여 킬로 남짓이어서 3시간 이내면 갈 수 있는 거리이고 무엇보다도 지난번 핀란드 헬싱키에서 에스토니아 탈린을 그 시간대로 다녀온 기억이 있기에 가고자 했다.

일행은 부다페스트 시내로 향했다. 사재를 털어놓았다는 그 다리를 같이 건넜다. 나가기 전 날씨가 따뜻해 보여 얇게 입고 나가까 생각하다가 파커를 입고 나갔는데 역시나 그러길 잘했다. 심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현실은 매섭고 차갑다. 다리를 건너 성 이슈트반 성당으로 향했다. 부다페스트 제1의 성당으로서 로마로부터 왕관을 받고 이 나라를 건국한 초대 왕 성 이슈트반 1세를 기려 1905년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성된 성당은 아주 깨끗하고 건축양식도 단순 명료하다. 성당 안은 아주 조용하고 신성했다. 마치 핀란드에서 갔던 성당처럼, 그 성당 좌석에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노라니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한없이 편안한 상태의 몸과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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