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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20. 2020

2011년 부다페스트 #2

- 헝가리 미술, 굴로쉬, 공연 관람

오전에 부다페스트 미술관에 들렀다. 고딕 미술작품들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주로 근현대 미술 중에서 나의 감흥을 끄는 작품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다. 이곳도 가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림들과 조형물들이 진정성이야 있겠지만 왠지 직업적으로 그냥 해야 하기 때문에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의 편견인가? 아니면 내가 작품을 대하는 혜안이 부족해서인가? 근현대 작품들 중 여인의 미소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들이 몇 개 있었다.  

과거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에 관해 무심했는데 요즘은 그런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화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언젠가 사라진다. 삶이 그러하기 때문에. 여인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운 여인들도 나타났다가는 모두 사라진다. 그 사라지기 전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옮겨 담는 것이야말로 화가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정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그 순간을 포착해서 화폭에 옮겨 담는 것은 아주 정교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화가들은 매우 똑똑하다.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구도와 구상을 통해 새로운 작품으로 정교하게 완성해 가기 때문이다. 


회화는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렸을 적 미술 시간에 내가 그린 포스터를 보며 미술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 터일 것이다. 남들이 그린 그림에 관심이 점점 갔다. 그러다가 빈센트 반 고흐의 전기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를 읽고 진한 감동을 느낀 뒤 미술관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회화작품에 열광하게 되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밀레의 <만종>을 30분간 보면서 내 나름의 그림 감상법을 익혔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좌우를 왔다 갔다 하면서 그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의 시선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시도해보았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그 대작의 메시지를 어떻게 깨닫겠는가? 다만 그 그림이 내게 좀 더 편안하게 와 닿고 그리고 붓 터치와 구도 같은 것들이 조금씩 다가왔다. 모든 걸 다 떠나서 그림 앞에 서있으면 그냥 좋다. 그 그림이 어떤 대작이건 아니건 그건 부차적이다. 한 사람의 열정과 에너지가 녹아있는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시간을 들여 봐야 하지만 늘 일정이 있으므로 그 아쉬움을 대신 사진에 담는다. 문득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네로가 죽어가면서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렘브란트의 그림을....



현대 미술들은 참 어렵다. 과거의 기법들이나 구도를 넘어서야 하고 거기에 창조적인 자신만의 기법과 메시지를 넣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공감을 일으키기도 상당히 어렵을 것 같다. 미술만 그런가? 음악도 마찬가지지. 그러고 보면 정형을 만들어가던 시절에서 그 정형 위에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가 열리기 시작할 무렵의 그림과 음악들이 가장 많이 인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낭만주의와 고전주의로 대표되는 음악과 인상파 등의 미술들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될 것이라 생각한다. 돌아가면 음악과 미술 그리고 예술전반에 관해 좀 더 폭넓은 시각을 가지리라 다짐해본다. 그러니 무조건 가서 보고, 듣고 느끼자. 

 


점심은 어제저녁을 먹었던 곳으로 갔다. 마늘 수프를 시켰는데 어제 보다는 별로 맛이 없었다. 핫 와인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주 맛있었다. 적당한 온도와 약간의 알코올 기와 계피향과 애플파이 향이 어우러져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된다. 융합 코드라고 말들 많이 하는데 이번 여행에서 이 핫와인이야말로 융합의 결과물이 아닐까? 점심을 먹으니 나른하고 졸리다. 잠시 들른 도자기 가게에는 예쁜 그릇들이 눈에 띈다. 아내가 도자기 작가라서 그런 걸까? 유난히 관심을 두게 된다. 흙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기 위해 씨름하는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번 유럽여행을 통틀어 세 번째 음악회다. 가장 넓은 곳에서 가장 근사한 분위기에서 시작한다. 성스 테판 성당이다. 레퍼토리도 다양하고 성당의 분위기가 아주 좋다. 너무 근사하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연주회가 될 것 같다. 레퍼토리는 헨델로 시작한다. 그리고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성당의 분위기 그리고 넓은 회랑을 둘러싼 대리석에 반사되는 소리들이 아주 맑고 청아하게 울린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1989년 처음 자취방에서 들었었다. 오히려 이곡보다는 파헬벨의 캐넌이 더 좋았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어감에 이 곡이 가진 애잔한 선율이 슬슬 좋아지기 시작한다. 이 팀들 연주 정말 잘한다. Duna String Orchestra. 네대의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더블베이스.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 카치니의 아베마리아. 여가수가 아주 노래를 잘 부르지는 않았지만 저음 선율이 은은히 깔릴 때의 그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오늘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시벨리우스의 Impromptu였다. 처음 듣는 곡임에도 한 번에 좋은 곡이고 아주 훌륭하게 연주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유럽여행에서 프라하에서는 오페라 갈라 콘서트, 크라쿠프에서는 쇼팽 콘서트 그리고 부다페스트에서 실내악 연주를 들었다.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고 시간의 예술이다. 시간 속에 존재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하고 적응하고 하는 인간의 삶 속에서 음악은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인간 삶에 밀접하고 또한 인간의 삶을 닮아있다. 그 지방의 음식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지방 사람들이 들려주는 선율은 그 사람들의 기운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이다. 아주 멋지고 새로운 체험이다. 


2006년 영국 여행에서 직접 본 <맘마미아>는 아주 강렬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났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 아마도 유럽 전체의 전통이기도 하겠지만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공연들이 일상 속에서 늘 함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것이 매우 부러웠다. 앞줄에 앉으셨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을 보면 굳이 멋 내고 공연을 보러 가는 우리의 문화예술 풍토와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모습, 일상적인 모습으로 이러한 예술행위들을 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음악을 들을 때는 몰랐는데, 밖으로 나오니 추위가 엄습한다. 제대로 된 파커를 하나 사 입으리라. 다리를 건너 호텔로 가기 전 Sunny라는 레스토랑에서 부다페스트의 마지막 밤이자 이번 여행을 정리하는 저녁을 먹었다. 굴로쉬는 아주 맛있다. 짠맛만 덜어낸다면 아주 훌륭한 음식이다. 이번 여행을 하게끔 배려해주신 일행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내일 기차는 새벽 5시 25분에 출발한다. 졸리다.

  

새벽 2시에 잠이 깨어 조금 뒤척이다가 다시 잠들었다. 더 자고 싶어 뒹굴다가 시계를 보니 3시 47분. 부랴 부랴 씻고 내려왔다. 택시는 크라쿠프에서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제 부탁해둔 대로 밴이 왔다. 역에 도착하여 기차를 찾았는데, 찾기가 쉬웠다. 어떤 사람이 우리 일행을 잠시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지나쳤는데, 다가와 짐을 들어준다. 결국 그는 선반 위에 짐 두 개를 얹고 5유로를 요구한다. 있는 동전들을 탈탈 털어 줬다. ㅎㅎㅎ 아침식사를 해야 하는데 아마도 먹을 것이 없을 걸로 생각하고 샌드위치를 사 왔다. 잠시 후 한 칸을 건너가자 바로 식당칸이 옆에 붙어있는 게 아닌가? 미리 사전에 알아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근사한 아침식사를 기대해본다. 2005년 영국으로 가는 유로스타에서 식당칸에 들러 맥주와 다른 음식들을 시켜먹은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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