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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21. 2020

2011년 겨울 프라하/크라쿠프/부다페스트 결산

다시 프라하로 간다. 창밖은 완전히 안개로 뒤덮여 또 다른 낭만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스 영화였던가? 아이들 둘에 길을 떠나는 로드무비였던가? 모든 것이 잡히지 않고 실마리가 풀리않아 답답한 상황을 흔히 안개에 비유한다. 뭐든 명확하지 않은 상황인데, 삶이란 때로 이와 같이 안개에 싸여 사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얼마나 많이 정확히 깊이 있게 알 수 있을까? 그저 보이지 않으면 천천히 걸으면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나? 조급한 마음,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을 벗어던지는 것이 삶의 지혜임을 이번 여행에서 한 번 더 되짚어보게 되었다.



찰스 브리지를 지나니 카프카 박물관 바로 앞에 식당 야외 좌석에 한 팀이 앉아있었다. 그곳에서 필스너 맥주와 수프, 샐러드 그리고 한 가지 요리를 시켰다. 음식 맛이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무색할 만큼 서빙 보는 친구가 툴툴대며 일을 한다. 처음부터 야외보다는 실내가 낫다는 둥 수프를 같이 먹겠다고 했는데도 숟가락을 세 개만 갖다 주고 맥주를 추가로 시켰는데 툴툴대며 늦게 갖다 주고 했으니 말이다. 아마도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아닐까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식당 빌 클린턴 대통령이 다녀갈 만큼 프라하에서 아주 유명한 식당이란다. 가격도 엄청 비싸게 나왔다.


 일행과 잠시 헤어져 전에 마켓에서 샀던 과자를 사기 위해 갔다. 남은 체코 돈으로 몽땅 샀다. 그런데 여기 친구들 셈하는 게 영 시원치 않다. 일부는 체코 화폐로 해결하고 나머지는 유로로 계산을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는 안된단다. 유로면 유로고 체코 화폐면 체코 화폐란다. 하는 수 없이 세 개는 물리고 나왔다. 친절하게 인사를 해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 이제 공항으로 출발이다. 잠이 솔솔 쏟아진다. 늦지 않을까 했는데 별 탈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 프라하에 왔을 때부터 오늘까지 정말 덕분에 편안하게 여행했다고 얘기하고 헤어졌다. 입국 수속은 아주 간단히 지나갔고 아이들을 위해 체코 과자 몇 개를 샀다. 대개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술과 피로로 피곤한 상태가 될 터인데, 이번 여행은 그런 피로 감 없이 마치게 된다.


세상은 참 넓고 느낄 것이 많다는 것, 그래서 그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향기를 맡으면서 사람살이가 전에 조셉 캠벨 선생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둠살이라는 것, 우리는 더불어 살아야 하고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더불어 살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폭과 깊이를 넓혀야 한다. 책과 간접경험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나 자신을 매일 관찰하고 관조하면서 배려하고 격려하고 그런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한다는 것.


전에는 전혀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그래도 이번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2시간 이상 잠을 잤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다큐멘터리 두 편을 보았다. 우주정거장에 관한 것과 목성에 관한 것인데, 인류의 오랜 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우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 개척자들이 있기에 우리는 편안히 우주로 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많은 간접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달로 우주로 개척자로서 용기와 도전의식으로 무장하고 갔던 분들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경의를 표한다. 정말 감사드린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체계들을 잘 읽고 이해하고 이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몇 가지 내가 얻어야 할 가치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품위(dignity- calm, controlled, admirable),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위엄 : 존경할 만한 위세가 있어 점잖고 엄숙함 또는 그런 태도나 기세, 기품, elegance, grace : 인격이나 작품 따위에서 드러나는 고상한 품격, 품격 :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 뭐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꼭 평생을 두고 갖추고 싶은 덕목이다.


 배려(consideration-careful thought about something, regard, care,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모듬살이는 어렵다. 이번 여행은 나를 제외하고 다른 분들 모두 서로를 배려하면서 다녔다. 매 순간이 즐겁고 그래서 이번 여행을 통해 어떤 피로감도 느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미술관, 박물관, 음악회, 식사, 공식 방문 그 어떤 것도 아주 즐겁게 임하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네 분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사고(thought - is past tense & past particle of thought, A thought is an idea that you have in your mind, 생각하고 궁리함)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을 경험한다고 해도 이것을 내가 생각하고 궁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사고의 깊이와 힘이 세상 모든 일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세상에 내가 쓰임을 받고 타인을 배려하고 가치를 창조하고 이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사고를 해야 한다. 헨리 포드가 얘기했듯이 생각한다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점을 두고 얘기한 것이 아닐까? 사고의 폭과 깊이가 너의 존재의 전부임을 매 순간 놓치지 마라.



 이제 기다리자.

또 다른 여행을 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자.

그냥 기다리면 안 되고

그 사이에 나의 품위와 사고 그리고 배려를 넓히자.

멋진 여행이었다.

나의 몸과 영혼이여 그동안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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