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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12. 2020

집밥이 생각나는 맛 - 청국장과 순두부

사는 곳 100미터도 안 되는 이 곳에 5년이 다 되어서야 들렀다. 어지러울 정도로 메뉴가 다양해서 못내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배달이 전문이라고 한다. 청국장과 순두부를 주문하고 조용히 기다린다. 반찬이 다섯 가지인데 그 구성이 깔끔하다. 그리고 배달 뒤 회수해온 쟁반을 보니 일회용 그릇을 사용하지 않는다. 약간 신뢰감이 쌓인다. 반찬 맛을 보면서 좀 더 안심을 한다. 가지나물과 연근, 콩나물 등은 여느 백반집 구성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청국장 맛을 본 순간 한줄기 짜릿한 전율이 왔다. 진하고 깊은 청국장 맛의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어떻게 숙성시켰는지 알 길은 막막하나 맛을 보면 그 깊이를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아주 제대로 숙성시킨 청국장을 만났다. 호박과 감자와 두부는 원래 청국장을 만나려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된장과 청국장은 각각 그 성장과정이 다르다. 된장은 발효시켜서 먹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청국장은 담근 지 2-3일이면 된다. 콩의 생생한 모양과 질감은 살아있되 으깨면 쉽게 무너지면서 자신의 몸을 통째로 입안에 바치는 그 순간이 청국장을 맛보는 지점이다. 밥과 청국장의 그치지 않는 교류 속에 어느덧 펄펄 끓던 순두부가 식어간다.


바지락의 시원한 맛과 고추의 약간 매콤한 맛에 약간의 소금 간이 들어간 순두부는 대학시절 학교 근처 밥집에서 먹던 그 순두부 맛을 떠오르게 한다. 부드러운 순두부와 계란을 동시에 한 숟가락에 담아 먹는다. 여기에 바다내음을 잔뜩 머금은 가자미 구이까지 더해지니 반찬으로 손이 갈 틈이 없다. 부지런히 청국장과 순두부와 가자미 구이를 번갈아 먹는다. 집에서 이렇게 먹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밥을 다 비우고 나서 청국장에 대한 감사인사를 드린다. 주인께서 청국장에 관해 두 분의 얘기를 해주신다. 한 분은 금곡에서 여기까지 청국장을 먹기 위해 자주 들리신단다. 그 어르신은 밥은 적게 먹어도 청국장은 꼭 다 드시고 가신다고 했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으로 보이는 청년이 방문해서 밥은 아예 먹지 않고 청국장만 한 그릇 다 비우고 갔다고 한다. 먹으면서 연신 서툰 한국말로 '청국장 맛있어요'를 연발했다고 한다.


우리는 각자 다른 동네에 산다. 그런데 어느 동네 건 천재들이 산다. 그중에 제일은 음식 천재들이다. 그들은 그 수많은 메뉴들을 빈틈없이 소화한다. 그저 소화하는 시늉만 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곳에서든 그 메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메뉴의 꽉 찬 느낌까지 보장한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게다가 브랜드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무슨 무슨 분식이라든가 무슨 무슨 백반집 정도라는 브랜드에 만족한다. 그들의 능력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행복해하신다. 그저 와서 먹고 가면 감사할 따름이라는 그들의 겸손 앞에서는 도저히 다른 겸손을 생각할 수 없다. 금융위기와 코로나를 겪으면서 약해질 법도 한데, 그분들은 여전히 단단하게 그리고 강고하게 동네를 지키신다.


음식을 돈 주고 사 먹는데 익숙해져 갈수록 음식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가 쉽다. 음식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그 식재료가 자란 대지와 빗물과 공기들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지난 14년간 고된 노동을 투여한 이 식당의 그동안의 내공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오늘 나는 지난 14년의 축적된 경험을 공유한 것이니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 14년의 고된 느낌을.... 그리고 조금 더 생각을 확장한다. 아 나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애써 일하신 노동의 살을 발라먹고 자랐구나!! 그런데 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내 살을 발라 내주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두려워하는구나. 연신 감사인사를 나누며 가게문을 나선다. 행복의 원천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고 언제나 내 주변에 있었다. 밥 한 끼에 담긴 의미와 감동을 되짚으며 걷는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비치고 신선한 바람이 뺨을 간지럽힌다. 아 복된 시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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