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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11. 2020

볼락구이와 볼락회 - 미각을 깨우고 추억을 부르는 맛

볼락은 참돔만큼이나 이노신산이 많은 물고기라고 한다. 따라서 거의 참돔 수준의 강한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물고기이다. 또한 살이 단단하여 식감이 매우 좋다. 보통 부산에서 높은 대우를 받는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볼락과 근연종인 불볼락(열기)의 거의 대부분이 부산에서 소비된다. (나무 위키) 통영을 비롯한 남해안 사람들은 볼락을 '뽈라구'라 부르며 즐겨 먹는다. 김려의 <우해이어보>에 따르면 볼락(보라어)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비단'을 뜻하는 보라에서 유래했다. (부산일보)


2005년 부산대학을 처음 방문했을 때 부산대학교 관계자분들이 온천장 근처의 청정바다라는 횟집으로 안내하여 볼락을 대접해주셨다. 겉으로 생긴 모양은 약간 어색하고 또 약간은 못생겨 보였으나, 볼락구이는 짠 득하고 고소했다. 한 점씩 뜯어내면 어느새 한 마리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볼락 회는 감칠맛이 돌고 회가 두툼해서 씹는 맛이 좋았다. 볼락은 덩치가 우럭에 비해 작다. 그러니 회도 한 마리에서 나오는 양이 극히 작았다. 물론 다른 안주들이 나왔으나 아예 손이 가지 않았다. 서울로 오는 KTX에 볼락의 잔상이 진하게 남았고 그렇게 매년 겨울이 오면 이런저런 이유로 부산대학을 자주 찾게 되었다. 볼락이 우리들의 관계를 이어준 셈이다.  그리고 볼락의 절친도 찾게 되었다. 부산생탁이다. 탄산 맛이나 단맛이 거의 없는 시원한 맛이 볼락 구이나 회의 질감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지금은 그 가게가 사라지고 없다. 그 횟집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 부산대 후배를 통해 수소문한 끝에 찾은 곳이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다. 원재료가 볼락이니 당연히 온천장에서 먹었던 볼락과 같은 그 맛이었다. 회의 원재료 맛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주방장께서 칼질을 어떻게 하느냐인데 볼락은 칼질을 많이 할 수 없는 생선이다. 덩치가 작아서 그렇다. 그러니 다른 가게를 간다 해도 맛이 변하지는 않는다. 광어나 농어, 도다리에 비해 볼락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으므로 어디서 어떻게 상시 생선을 공급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광안리 해변가 바다내음과 볼락을 같이 버무려 먹는 동안 시간은 약간 느리게 움직였다. 그 사이에 나는 오직 볼락이라는 생선 맛에 집중했다.  


저 맛있는 볼락을 가장 최근에 접한 게 2018년 봄이다. 어머님을 모시고 두 동생네 식구들과 같이 부산에 갔다. 둘째 날 어머님께서 저녁을 사주신다고 하셔서 볼락을 먹으러 가자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평생 이런 생선을 처음 드셔 보신다고 하셨다. 어찌나 내가 이 음식이 맛있다고 자랑했는지 동생들과 어머님 그리고 외삼촌과 외숙모 모두 볼락을 맛보게 되고, 거기서 나는 맛있는 음식을 나만 먹는 죄책감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님이 기운을 차리시면 부산에 모시고 갈 것이다. 어머님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동생 외삼촌이 있는 곳. 그 부산에 어머님을 모시고 가고 싶다. 부산으로 가는 차안에서 어머님이 가장 좋아하는 곡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와 내가 좋아하는 곡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과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부산 갈매기>를 같이 들을 것이다.


삶이란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밥 한끼 나눠 먹는게 전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상의 팍팍한 피로를 덜어내고 음식을 매개로 추억을 넘나들며 그동안 견뎌온 서로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곳, 그곳으로 가리라. 그리고 나는 대화 틈틈이 볼락구이와 볼락회와도 그동안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고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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