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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09. 2020

2018년 겨울 바르샤바와 크라쿠프 #3

다양한 음식들이 잘 갖춰진 조식 뷔페다. 합리적인 경계를 완전히 넘어서는 가격이었는데 막상 경험하게 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냥 싼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은 적절한 가격이상은 받지 않으려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사회주의의 영향이라면 당연히 서비스와 음식의 질이 낮을 텐데 그렇지도 않다. 바늘을 찌르는 듯한 극단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이들에게 들어오지 않은건지 아니면 막은건지 알수는 없지만 아무튼 최상의 서비스와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하게 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그저 적당한 가격이상은 절대 안받겠다는 완고함마저 느낄 수 다. 각종 채소를 절여놓은 코너가 별도로 있을 정도로 잘 차려져 있다. 채소는 너무 신선하다.


호텔에서 출발하기 전 어제 산 트렁크에 짐을 옮기고 나서 낡은 트렁크를 그냥 숙소에 두고 오기가 부담스러워 카운트에 문의하니 그냥 두고 가도 된다고 했다. 어디 신문에서 읽었는데, 중국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새 물건을 산 뒤에 호텔방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서 골치거리라는 뉴스를 접한 터라 그런 안좋은 인상을 남기기가 싫어서 부탁했는데 마음씨 좋은 폴란드 사람의 친절함을 한번 더 느끼게 되었다. 이틀동안이었지만 호텔과 정이 깊이 든 것 같다.


아 한국에서와 같은 상황을 맞으니 웃을수도 울수도 없다. 추석명절이나 설명절 태백으로 가는 열차는 만원이었다. 귀경길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어쩌다 재수가 좋아 좌석표를 구하더라도 연세드신 어르신이 계시면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해야했기에 늘 고달펐다. 그렇지만 마냥 고달픈것만은 아니었다. 고향집은 언제나 그 넉넉하고 편안한 품으로 나를 반겨주었기 때문이다.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뵙는 것만으로도 늘 설레임 가득한 귀향길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들에게 가장 큰 명절이 바로 크리스마스 아닌가 ? 바르샤바에서 각지로 향하는 발길이 바로 이 열차칸에 모여들었다. 여덟좌석이 한 쪽으로 배치되어 있고 복도가 있는 구조다. 우리 열차는 양쪽으로 좌석이 있고 중간이 복도다. 어느게 합리적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각자의 문화가 다른거라고 이해하면 그만이다. 발디딜틈 없는 복도에서 우리 셋은 번갈아 가며 한 좌석의 소중함을 체험했다.


2시간 정도 지나자 여기 저기 좌석이 나서 편안하게 앉아갈 수 있었다. 2011년 크라쿠프를 다녀간뒤 나는 줄 곧 폴란드를 그리워했다. 그런데 그냥 그리워한 것은 아니고 폴란드에 대한 정서적인 연대감을 키웠다. 2차대전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국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민족주의적인 정서에 기반한 저항정신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접했다. 바르샤바 봉기로 인해 바르샤바 인구가 거의 전멸하다시피하는 상황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이 사람들의 기질과 저항정신과 자유를 향한 열정에 놀라며 어느틈엔가 팬이 되어 있었다. 기차안의 풍경속에서도 나는 끊임없이 그들과 연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크라쿠프역에 도착했다. 역시나 바르샤바와 같이 아주 추운 날씨는 아니다. 오히려 겨울비가 흩뿌리고 있어 한시 바삐 숙소를 향했다. 그런데 길을 착각해서 엉뚱한 길로 한참을 갔다. 아내와 딸에게 미안했다. 구글맵만 있으면 만사해결될거라 생각했고 바르샤바에서는 틀림없었는데 여기서 그만 지도를 잘못보는 실수를 해서 예정보다 20분정도 늦게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아주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작고 아담하되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카운터 대각선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호텔 로비의 카운터 옆 아주 작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몇 좌석 안되는 시골스런 호텔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영업시간을 물어보니 저녁 10시까지란다. 문득 늦은 저녁에 맥주한잔 하리라고 생각해뒀다.

식당을 둘러보다가 야외에 천막을 친 곳으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에는 이렇게 광장쪽으로 천막을 치고 난방을 한 자리가 인기있는 자리인가보다. 이국적인 느낌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아 저기 한자리가 비어서 그리로 향한다. 폴란드 만두 피에로기와 육류 한 가지, 송어와 샐러드를 주문한다. 그리고 맥주를 주문한다. 유럽은 어느 곳엘 가나 맛있는 맥주를 먹을 수 있다. 맥주는 질리지 않는 음식이다. 특히 유럽의 맥주는 그 종류도 다양하고 오랜 전통을 보유하고 있어서 더 맛있다. 그리고 맥주 한잔에 취기가 오른 채 이국적인 풍경을 보면 그 자체로 행복한 순간을 맞게 된다. 음식은 그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잘어울리는 식재료로 만드는데 대부분 맛있다. 폴란드 음식은 처음부터 적응되었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처음부터 그 나라 음식에 적응하지는 못했다. 특히 2008년 중국 칭땅오에 갔을 때는 음식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 때문에 거의 모든 음식을 먹지 못했다. 누가 챙겨준 고추장을 밥에 비벼 겨우 겨우 먹었다. 그러다가 북한식당에 가서 반갑게 포식을 했다. 지금은 그 나라에 가면 당연히 그 나라 음식을 먹는데 익숙하다.

크리스마스 마켓 분위기는 아주 아기자기 하다. 광장 안쪽의 시장에는 악세사리를 비롯해 다양한 수공예 제품들이 발디딜 틈없는 사람들을 맞고 있다. 그리고 장을 보다가 시장한 사람들을 위한 즉석 음식들은 광장을 빙 둘러싸고 있어서 어디를 가나 즐겁다. 떠들썩한 명절 분위기를 만끽한다. 이 모든 순간들을 모두 기억하기는 어렵다. 사진은 기억을 떠올리는데 결정적인 단서 역할을 한다. 가물가물한게 아니라 아예 기억 저편 절벽으로 사라졌던 기억들이 암벽을 타고 바로 눈앞에 나타나도록 도와준다. 사진을 잘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장면을 찍느냐가 중요하다. 여행은 기억과 추억을 선물로 준다. 사진 한 장이 나의 기억과 추억을 쌓아두는 저장고다.  

아침부터 싸늘한 공기가 밀려온다. 황량하고 인간성이 거세된 거친 수용소는 늘 현재시점에서 과거를 상상하게 된다. 사람의 운명이란 이토록 잔인한 것이다. 만약 내가 거기 태어나 자랐다면 어떤 운명을 맞게 되었고 나는 어떻게 받아들였겠는가 ? 아니 받아들일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직 고통만 견딘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건지 아무리 생각하고 느껴보려고 해도 가닿지 않는다. 해설하는 분의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가 당시의 비극적인 현실을 더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는 듯했다. 나의 삶속에서 이들이 살았던 삶의 흔적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지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이렇게 자유롭게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지만,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와 삶의 지향점에 대해 한번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말과 생각의 분명한 한계를 절감하며 발길을 돌린다. 간단히 스낵으로 점심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는 마음이 지쳐서 그런지 깊게 잠이 들었다.

오후 4시면 해가진다. 버스에서 내리니 어둠이 짙게 깔리고 광장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거린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는데는 맥주만한 음식이 없다. Zywiec Brewery는 폴란드에서 가장 큰 양조장이다. 1856 년 Zywiece 마을에서 설립 된 이 양조장은 알코올 함량이 5.6 % 인 페일 라거를 제조한다. 과거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유였다가 국유화를 거쳐 지금은 하이네켄이 대주주라고 한다. Żywiec 로고에는 양조장과 폴란드 자체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상징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Żywiec Beer의 눈에 띄는 전면 레이블에는 역사적인 Kraków 지역의 전통 춤인 Krakowiak를 춤추는 남녀가 전시되어 있다. 이 춤추는 커플은 고전적인 폴란드 민속 춤 의상을 입고 있다. 문장은 한 쌍의 왕관으로 표현된다.(위키디피아) 시원하되 씁쓸하지 않고 끝맛은 약간 단맛이 남는다. 한잔으로는 당연히 만족할 수 없는 맛이다. 여행 내내 스프와 샐러드, 생선, 육류 이렇게 4종을 주문해서 먹었다. 맥주를 평균 5-6잔 먹었는데 음식을 포함한 가격은 6-7만원 내외다. 

크라쿠프에서의 아쉬운 밤은 깊어간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크라쿠프에서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금광산을 비롯해 가볼 곳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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