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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10. 2020

2018년 겨울 바르샤바와 크라쿠프 #4

크라쿠프를 떠나는게 너무 아쉽다. 왜 바르샤바에서 4일이나 머무르려고 했는지 일정을 돌아보며 몇번 후회했다. 아득한 저 시간너머 1978년 안동 외가집에 다녀온 뒤 방에서 떼굴떼굴 굴렀다. 난 그게 무슨 증상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여행 가슴앓이 였었다. 농사짓는 시골이지만 사촌형제들과 물고기도 잡고 미숫가루도 나눠 먹고, 산으로 들로 다녔던 추억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 지금 이 크라코프를 떠나야 하는게 너무 너무 아쉬워 약간 가슴이 먹먹하고 미어진다. 아주 간만에 가슴앓이를 경험한다. 


아쉬운 마음에 아내와 크라코프 광장으로 잠시 나갔다. 유럽의 거리는 시멘트가 아니라 돌로 바닥을 장식해놓아서 걷는 즐거움을 한껏 느낄 수 있다. 그 길위에 새겨진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마치 그 길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예쁘고 어떤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가게앞에서 잠시 멈춰 감상한다. 세상에 수많은 그림들이 있는데 제각각 존재이유가 있다.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준다. 훌륭한 그림과 더 훌륭한 그림이 있을 뿐이지 어느 것이 더 낫고 못하고를 가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교의 영역을 벗어나면 삶의 신천지가 펼쳐진다. 


크라쿠프 역으로 향하는데 역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기차 시간이 빠듯해서 음식을 먹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그냥 열차를 타자니 시장하다. 역구내를 이리 저리 다니다가 딱 내 스타일에 맞는 음식점을 찾았다. 돈까스와 비슷한 것 하나 고르고 적양배추 채썰어서 익혀놓은 것을 같이 골랐다. 열차 출발시간이 5분 남았다. 플랫폼으로 올라오니 아내와 딸이 성화다. 연락이 안되는데 차시간은 다가오고 해서 조마조마했다고 야단이다. 바로 이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고 권했다. 그런데 그 맛이 완전 끝내준다. 특히 적양배추요리는 너무 맛있었다. 이 사람들이 주로 육류를 먹지만 만만치않게 채소도 먹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 먹고나자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두번 세번 확인하며 기차에 오른다. 크라코프에 대한 아쉬움을 열차 뒤편에 묻어두고 바르샤바로 향한다. 올 때와는 달리 아주 한적해서 편하게 이동했다. 



바르샤바로 가는 길에 저 광활한 들판을 계속 보게 되었다. 야트막한 산조차 없이 넓은 벌판이 끝도없이 펼쳐져 있다. 이 들판에서는 어떤 곡식들이 익어갈지는 몰라도 그 생산량이 상상을 초월할 것 같은 생각과 함께 그러니 식재료가 비싸지 않을 거란 생각을 동시에 해봤다.음식값은 식재료값에 연동된다. 이 들판에서는 무슨 재료든 잘 자랄것 같은 착각이 든다. 끝도없이 펼쳐진 들판은 그런 생각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고 내게 말해주는 듯하다.  

3시 30분 바르샤바역에 도착해서 숙소로 향했다. 아직 저녁시간 전이므로 호텔식당 영업시간을 물어보지 않았는데 나중에 엄청 후회했다. 그 이유는 바로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다. 거의 두시간 가까이 거리를 다녔는데 문을 연 가게는 아무데도 없었다. 식당뿐만 아니라 마트도 단 한군데도 없었다. 처음에는 거리를 산책할 요량으로 여기저기 다녔는데 나중에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구시가지까지 걸어갔다. 역시 허탕을 쳤다. 어느덧 두시간을 헤메어 정말로 배도 고프고 춥고 그리고 짜증이 밀려온다. 호텔로 돌아와보니 호텔 식당도 쉰다고 했다. 먼 객지에서 갑자기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두 어깨에 밀려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저멀리가 아닌 호텔 근처 메리어트호텔의 식당은 열려있었다. 단 한군데만 열어놓았다. 


앞뒤 가릴 것없이 호텔로 들어가는데 호텔로비에 너무나 멋진 트리가 우리를 반겼다. 잠시 시장기를 잊어버리고 트리안에서 위를 올려다본다.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사진이 너무 이쁘게 나온다. 정말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서 폴란드 사람들의 미적감각에 대해 한번 더 탄복함과 동시에 마음속 연대의 끈을 더 단단히 했다. 이제껏 직접 보거나 TV로 봤던 어떤 트리와도 다른 아주 멋진 장식에 넋을 잃어버렸다. 한참 사진을 찍은 후에 식당으로 들어갔다. 


추운데서 떨다와서 스프와 폴란드 전통요리를 주문한다. 폴란드 사람이 다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무슨 음식이든지 너무 맛있다. 당연히 Zywiec도 주문했다. 오늘은 밀맥주타입이다. 웬만큼 마셨다. 주변에 크리스마스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평화의 미소들을 느낄 수 있다. 아니 약간 취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계산할 때 또한번 놀랬다. 요리가 4개에 맥주가 10잔 정도였는데 7만원 정도밖에 안된다. 국내 호텔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다. 가격과 가치의 세계는 다르다. 눈내리고 찬바람 부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단 한군데 열린 식당에서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먹다니....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을 붓고 봉지 입구를 5분정도 닫아두면 맛있는 즉석라면이 된다. 아껴둔 것이 아니라 짐을 덜기 위해 먹는다. 깔끔한 매운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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