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 크리스마스, 바르샤바 성당 투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호텔 식당의 아침식사. 일단 나를 자극하는 곳은 와플을 즉석에서 해먹는 코너다. 커피 한잔에 와플에 메이플 시럽을 넣어 먹는다. 폴란드 음식은 신선하고 맛있다.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한 것은 저 창밖에 내리는 눈이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날이다. 종교에 대한 믿음을 떠나 인류를 한걸음 전진시킨 성인에 대한 관심과 감사를 드리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괜히 설레인다. 바르샤바는 바르샤바 봉기 이후 도시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폴란드 사람들은 이 폐허위에서 전쟁전과 같은 도시를 새롭게 건설했다. 낡은 그림과 사진들을 보면서 하나 하나 이전과 같이 복원했다고 한다. 정말 바르샤바는 폴란드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적의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 바르샤바에서 성탄절에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성당투어를 할 생각을 하니 아침부터 많이 설레인다.
Roman Catholic Parish of St. Barbara성당은 그 운치를 한껏 낼 수 있는 곳이었다. 미사가 진행중이었다. 잠시 들러 묵상을 한다. 왜 그는 십자가를 졌을까 ? 그가 짊어진 십자가를 통해 인류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가 ?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하느님을 자신들의 이익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여긴다. 자기들끼리만 선민의식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돕고 산다. 예수님은 보편적인 사랑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세상에 던졌지만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왜곡하고 있다. 우리끼리만 선의가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면서 속으로는 극도로 배척하는 문화가 깊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소위 말하는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렇게 왜곡한 이 역사의 뿌리는 깊다. 유대민족을 욕할 일이 아니다. 그 선민의식의 뿌리는 깊고 강고하다. 너무 단단해서 바늘틈도 들어가지 못할 것 처럼 보인다. 오늘 나는 바르샤바에서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이들이 미사에서 보이는 진지한 자세에 감동한다. 참 신앙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겉다르고 속다른 기독교 문화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일곱군데 성당을 다녔는데 하나같이 그런 끈끈한 보편적인 사랑을 향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거리를 걸으며 특이한 도자기를 발견했다. 아쉬운 마지막날 새로운 여행계획을 세운다. 크라코프에서 적어도 5일 이상 그리고 폴란드의 유명한 도자기마을인 볼레스와비에츠를 꼭 가보리라 다짐한다. 이왕이면 그다인스크에 가서 바다도 구경하고.
이런 조각은 처음보았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는데 마치 뭔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려는 그런 형상을 하고 있다. 십자가를 짊어진 고통은 찾아볼 수 없다. 정면과 측면에서 보는 모습이 각도에 따라 다르다. 시대를 혁신하고 낡은 것을 부수며 새로운 가치를 인류에게 주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새로운 가치로 빛나는 곳일 것이다. 선민의식을 걷어내고 특정한 사람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사랑으로 세상을 밝히려는 그의 가르침이 묻어있는 그런 조각이다. <Zealot>에서 내가 읽은 것도 바로 그런 예수의 모습이다. 그가 어떤 가르침을 보여주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봐야 한다. 살아있는동안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분으로서.
넓은 광장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 성당은 너무 조용하고 아담해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나야 항상 여행을 다니면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족들도 같이 걷는걸 좋아하니 고마운 마음이다. 둘째 아들과 막내 딸이 왔었다면 아마 징징거리며 가기싫다고 했을텐데 말이다.
나중에 <Homo Eatcus>라는 책을 집필하고 싶다. 사람은 음식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가 먹은 음식들이 위와 장을 지나 소화되는 과정에서 그의 생각과 그의 느낌은 완성된다. 식재료는 그의 세포와 몸을 구성한다. 음식을 먹으면서 하는 수많은 대화는 그를 완성시켜준다. 아마도 나만 읽는 책이 되겠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와는 달리 절반정도의 가게가 문을 열었다. 많이 걸어다닌 덕분에 너무나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Local 생맥주를 추천해달라고 하자 라거타입과 흑맥주 타입의 두 종류를 추천해준다. 라거타입은 깔끔하고 시원했으며, 흑맥주는 진하고 구수한 맛에 끌린다. 맥주는 유럽에서는 술이 아니라 음식이라고 여길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지역에서는 그 지역의 식재료와 물로 빚은 맥주가 최고의 음식이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숍에서 사람들 구경하며 졸았다. 아늑하고 편안한 시간이다. 여행의 마지막날이라서 그런지 진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분명 술인데 특이하다. 향긋하고 달콤한 맛속에 진한 알코올 기운이 숨어있다.
구시가지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이 조각상을 만났다. 바르샤바 봉기당시 실제로 어린 아이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총을 들고 전장에 나섰다고 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폴란드인들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단 하나의 조각으로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을 한다. 아주 어린 삶을 마감하게된 그 운명에 대해.
하루 종일 원없이 걸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모녀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제는 완전 친구처럼 보인다. 아내의 삶과 딸의 삶이 이곳 폴란드에서 교차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내일이면 다시 빌니우스로 향하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남은 교환학생 생활을 잘 마무리하라고 케밥가게에서 독려한다. 마침 환전한 즐로티도 다 떨어져가고 그동안 제대로된 식사를 계속해온 터라 오늘밤은 간단하게 마무리한다. 그리고 남은 100즐로티는 딸에게 선물로 주었다. 버스타고 8시간을 가다니....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이번 여행도 후유증이 많이 남을 것 같다. 순식간에 며칠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우리가 먼저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길을 나서고 딸은 호텔에 남았다가 오후에 출발한다. 멀어지는 나와 아내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잠시 눈물을 흘렸다고 나중에 얘기한다. 길 위에서 만나고 다시 길 위에서 헤어진다. 길은 사람들을 이어주고 각자의 삶으로 돌려보내는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한다. 그 길을 나서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길에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돌아본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가고 있는 것에 대한 허전함과 아쉬운 마음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