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눈은 서로 닮았다. 나의 기억 속에서 겨울이 오면 눈이 온다는 등식은 이틀이나 삼일에 한 번씩 눈이 내렸던 내 고향에서 아주 어릴 적부터 형성되었다. 창호지 문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외풍이 심했다. 자고 일어나면 그 창호지 문을 열고 눈 덮인 마당을 구경하는 것이 그야말로 일상의 낙이었다. 왜 어릴 적에는 그렇게 학교 가기가 싫었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봐 둔 눈을 가지고 놀 생각을 하면 수업시간의 지루함도 달랠 수 있었다. 눈으로 가장 많이 해본 장난은 삽 썰매를 타는 것이다. 그러려면 눈 슬로프 공사를 해야 한다. 높이 올릴수록 슬로프를 타고 내려가는 속도는 배가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평화롭다. 구름과 바다와 산들이 말없이 거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얼마 전까지 지상에서 듣고 본 풍경들은 시끄럽기도 하고 다정다감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모든 것들이 고요 속에 있다. 비행기에 오르면서 경향신문을 들었다. 아 그런데 여기 멋진 책이 소개되고 있다. 맥신 그린이 쓴 책이다. “예술적 경험을 통해 경험의 지평을 넓히며 사회적 상상력으로 충만한 전인적 인간으로 갈 수 있고 더불어 다양성이 공존하는 공동체를 키워갈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주로 예술교육의 문제를 지적한다. 예술은 세상을 향한 진정성 있는 교육, 예술이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진정성 어린 질문이어야 한다. 그렇다. 예술은 나를 가르치고 나의 인성을 형성하고 나의 세계관과 나의 삶의 태도, 타인을 향한 나의 자세를 만들어왔다.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들으며, 자유로운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 얘 술이고 우리가 예술을 제대로 경험하면 “널리 깨어 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널리 깨어 있음이라는 말이 참 아름답다. 넓게 보려는 시선과 헬리콥터 뷰(헬기를 타고 위에서 아래를 조망하는 그런 시선으로 현실을 살면 좋겠다는 어디에선가 본 말로 요즘 내가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런 시선을 가지기가 어렵지만 이런 시선을 갖게 된다면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나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시선에서 약간은 벗어나 볼 수 있지 않을까?)로 나와 주위 사람들과 자연과 우주를 보면서 거기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이게 예술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저자는 상상력을 강조한다. “마음속에 이미지를 형성하는 힘, 경험을 새로운 것으로 형성하는 힘, 측은지심을 통해 다른 이의 상황에 대입해보는 힘” 이 상상력에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육이란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것”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상에 대한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궁리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상상력을 깨우는 것, 다시 말해 “메타포에 대응하는 능력”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작품을 수동적으로 바라보거나 배경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며, 예술작품을 능동적으로 학습하고 적극적으로 대면하면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여러 사람과 하나의 작품을 심도 있게 체험하는 것,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 접하면서 다른 관점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의식화 이론(Conscientization) 이론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널리 깨어 있음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나 부정을 인식하고 이러한 부정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상상해야 한다.”
눈의 나라 삿포로를 향한 비행기 안에서 예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내가 지금 이어폰에서 듣고 있는 모차르트의 주피터와 같은 곡들을 내가 감상하고 느끼는 지향점이 무엇인가? 맥신 그린의 책을 읽는 것이 그 물음에 답하는 계기가 되리라. 공부할 소재가 또 하나 늘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소설보다 영화로 먼저 접했다. 엄청난 눈이 덮인 배경에 매료되어 애틋한 스토리는 날아가고 오직 눈만 기억에 남았다. 영화 <Love Letter>의 고장 오타루에 간다고 하니 많이 설렌다. 설국이 저만치 다가오고 있는데 예상했던 대로 눈의 천국이다. 신치토세공항에 도착했다. 일본이 깨끗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늘 정돈되어 있다. 시티카드는 어느 곳에서나 바로 캐시를 환전하면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외국에 자주 다닌다면 한번 권할만한 옵션이다.
삿포로 시내로는 열차로 이동한다. 차비는 1만 5천 원 정도, 역시 교통비는 한국이 싼 편이다. 홋가이도는 개척을 통해 개발한 곳이고 이 곳을 개발하기 위해 주로 유럽을 많이 벤치마킹한 영향 때문인지, 삿포로도 도시구조가 중앙 역을 중심으로 남북과 동서로 거리를 지정하고 있다. 거리는 온통 눈에 뒤덮여 있다. 눈의 도시답다. 2007년 센다이에서 스키를 타며 만끽한 그 눈이다. 약간 촉촉이 젖어있는 눈. 호텔은 조금 오래되긴 했어도 아주 깔끔하고 깨끗하다.
돼지고기 육수에 대해서는 비호감이었다. 부산 돼지국밥을 접하기 전에는 그 음식조차도 먹기 싫어했다. 일곱 살 때 돼지 간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는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있다. 물론 삼겹살과 족발 그리고 보쌈고기 등이 많이 그 상처를 치유해왔지만 완전히 지워버리지는 못했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신 선배님을 통해 돈코츠라멘에 대해 간접적으로 들은 설명에 의하면 한마디로 '걸쭉한 국물'이라는 것이다. 그것과 '구수한 국물'은 서로 양립 불가능한 언어라고 생각했다.
2007년 동경에서 처음 맛보고 이어서 오이타와 벳푸에서도 먹어보면서 차츰 익숙해졌다. 이 돈코츠라멘은 국물이 맑다. 걸쭉하지 않고 맑고 가벼워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돈코츠는 일본어로 돼지뼈를 의미하므로 돼지뼈를 우려낸 국물요리다. 라멘 국물은 돼지고기 뼈를 물로 끓이며, 국물은 일반적으로 흐린 모양이다. 추가 수프 재료로는 양파, 마늘, 생강, 족발 등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맑고 깔끔한 맛은 오래 여운으로 남는다. 삿포로 생맥주와 아주 잘 어울린다. 교자만두는 본래 중국음식이었다고 하는데, 사이드 메뉴로 잘 어울린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만두소를 맛볼 수 있으며 양으로 보면 배부를 염려는 제쳐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