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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26. 2020

2012년 겨울 눈의 나라 삿포로 #2

 

홋카이도 도청을 방문했다. 가는 길에 군데군데 눈이 높이 쌓여있어서 그 옛날 태백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눈이 자주 많이 왔었다. 눈집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거나 삽으로 슬로프를 만들고 중간중간에 둔덕을 만들어 삽으로 곡예를 하듯이 타고 즐겼던 그 이런 시절이 생각난다. 나의 어린 시절 겨울은 눈과 함께였다.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길조다. 우리나라에서는 까치가 길조다(우표를 수집하던 시절 까치 우표, 아마 20원으로 기억하는데 그 까치가 생각난다). 그 까마귀들이 나무 위로 오르내린다. 일본에 있는 동안 좋은 일이 지속될 거란 생각을 슬쩍해봤다.


옛 도청은 홋카이도 개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본래 사할린과 만주까지 침략했던 일본이 후퇴하면서 이 곳에 정착했다. 원주민인 아이누족을 쫓아내고 터를 잡은 것이다. 미국의 서부개척 역사 역시 침략자 백인들이 원주민인 인디언을 몰아내고 자리 잡은 역사다. 그러므로 이들 개척과 개발의 역사는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치장 이면에 담긴 원주민 제거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고 그들이 어떤 연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는지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삶은 순환한다. 그게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는 때로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 명확하지 않은 지점을 발견하고 사실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나가는데 역사공부의 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 역사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단편적인 사실과 의미들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 다른 일본지역과 마찬가지로 홋카이도에서도 개발의 제일 화두는 유럽 스타일이다. 멋진 도자기를 찰칵. 전 세계 각지에서 선물로 보내온 것들을 한 곳에 전시해놓았다. 


도자기의 역사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중국과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교류, 그리고 도자기와 관련된 상호학습과 발전과정 그리고 유럽에의 전파 등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일본 도자기는 상당 부분 한국에서 전승해갔음에도 독자적인 도자기 문화를 만들었고 한국은 또 중국으로부터 유럽 역시 중국으로부터 전파되어갔다. 이 도자기의 역사는 인간의 생활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므로 이것을 읽는 것도 중요한 공부의 재료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어시장을 둘러보면서 한참을 걸었다. 동유럽 방문 시 하도 추워 올겨울 처음 장만한 패딩점퍼를 입고 다닌다. 태백에서 살 때는 몰랐는데, 서울생활을 오래 하면서 너무 따뜻하게만 지내서 그런지 추위에 많이 약해졌다. 겨울철 실내 평균온도는 20도 정도가 적당하리라. 돌아가면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해야겠다. 24도는 너무 높은 온도다. 어르신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높은 온도환경에서는 감기에 잘 걸리고 낮은 온도도에서 생활하면서는 감기에 안 걸린다고들 하신다." 꼭 참고할만한 사항이다. 

잠시 들렀던 백화점 한편에 왕비와 왕으로 시작해서 밑으로 시녀와 신하들까지 아니면 가족들인가, 그리고 각종 패물함과 가구들.  아무튼 이 인형들이 들어있는 세트가 525천엔, 우리 돈으로 800만 원 정도. 아이들이 입학할 때 선물로 준다고 한다. 상당히 의미는 있어 보이지만 그래도 너무 비싸다. 뭔가 종교적인 부분에 의지하는 이들의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기복적인 부분이 강해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약하다. 그러므로 뭔가에 의지하고 기댄다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돈이 개입되면 복잡해진다. 영혼의 안식과 위로를 받는 것에 무슨 돈이 그리 필요한가?


이자카야 집에 들어왔다. 1400엔(2만 5천 원)이면 2시간 동안 마음껏 맥주나 다른 술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한 열 잔쯤 마셨나? 일행과 오붓한 대화를 나눈다. 인간은 품위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 문화적인 가치를 논하고 시국을 논하되 감정적이지 않고 조직을 생각하되 이 성적이 되려 노력하는 한편 열정은 살리고, 자기 주도적 학습의 내용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그래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복이고 감사해야 할 일임을 깨닫게 된다. 


무 샐러드, 닭 연골 튀김, 강낭콩 튀김, 닭날개,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안주들이 차례로.  조금씩 시켜먹는 안주와 무엇보다 부드럽고 달콤한 삿포로 맥주의 거품. 이자카야의 떠들썩한 분위기. 팍팍한 삶에 위로가 되는 건 약간의 음식과 정다운 사람들과의 대화임을 이 집에서 느낄 수 있었다. 2007년 일본에 와서 이와 같은 술집에서 먹을 때, 넥타이 맨 샐러리맨들의 작은 위로를 받는 일상을 볼 수 있었듯이 오늘 여기서도 그런 분위기가 난다. 다만 그곳은 동경이었고 여기는 홋카이도 지방이다. 동경보다는 덜 딱딱한 분위기다. 또 주말이라서 더 복장이 자유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네 번째 일본을 방문하면서 이들이 부러운 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휴지를 버리지 않고, 왁자지껄하게 떠들지 않고, 인사성과 친절이 몸에 배어있고….) 등. 그중에서도 가장 부러운 것은 도시와 지방의 생활수준 격차가 있지만 그게 우리만큼 심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것을 잘 뒷받침하는 건 바로 지방의 산업 수준이다. 먹고 살 거리들을 계속 만들어내기 때문에 굳이 도시를 무리해서 가지 않더라도 나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산업적 기반이 모두 서울 중심으로 되어있다. 심지어는 공장이 있는 지방이 도처에 있음에도 그 주된 사용처는 서울이다. 이미 농촌사회가 붕괴된 지는 오래되었다. 최근 미국, EU 등과 체결한 FTA의 영향으로 이제 괴멸될 지경이다. 더구나 젊은이들은 간 곳이 없다. 모두 어른들 뿐이다. 여기 홋카이도와 그 주변 소도시들에서는 어디를 가나 활기찬 젊은이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우리는 언제쯤 이들을 부러워하지 않게 될까? 산업기반이 있어야 예술가들도 모여들고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래야 산업기반에 더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사람들이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 내 고향 태백은 더 이상 희망을 보기 어렵다. 주변 고한에 만든 카지노는 이 지역 전체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그곳은 아무리 미화해도 사행심을 조장하는 퇴폐적인 곳이다. 그 누가 온다 해도 누가 합리화해서 얘기한다 해도 그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산나물과 산림자원을 활용한 농업과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장기적 관점의 노력이 필요한데, 이들은 단기적인 자치단체장 실적 쌓기에 급급한 정책만 펴고 있다. 그러니, 지역 토건족들이나 좀 형편 낫게 해주는 외에 지역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다. 이런 공부 안 하는 공무원들이 지키는 지방은 희망이 없다. 아 우울하다. 오늘따라 맥주는 너무 맛있다. 아주 기분 좋은 순간임에도 내 고향을 잠시 떠올리며 우울에 젖는다. 잠깐이라도 따뜻한 물에 온 몸을 담그니 여독이 사라진다. 물은 정말 좋다. 내 몸을 감싸는 물, 내 어머니 뱃속 양수에 있었을 때를 상상하면 이런 느낌일까? 아마 지금보다 몇 만배 더 포근하고 따뜻하고 아늑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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