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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27. 2020

2012년 겨울 눈의 나라 삿포로 #3

- 오타루

일어나기 싫다. 전날 많이 마신 탓이리라. 적당하면 좋은데 그게 잘 조절이 안된다. 익은 채소 무침 조금, 해초 조금, 익은 연어, 시사모 2마리, 반숙 계란 한 개, 두부 두쪽, 파인애플과 오렌지, 애그 스크램블 한쪽, 오렌지주스 한 컵, 호지차 한잔, 낫토와 미소된장국으로 완벽하게 해장했다.  

오타루는 작은 술통이라는 뜻이다. 어제 내렸던 중앙역에서 오타루행 기차를 탄다. 공항과는 반대방향이다. 워낙 일본도 안내데스크와 여행 안내자료가 잘 갖춰져 있어서 이제는 겁먹을 필요가 없다. 일본어를 사용 해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는 일은 좀 더 편해졌다. 고등학교 때 배운 일본어를 이렇게 사용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편하다. 가족들과 같이와도 충분히 안내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차 안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에 눈에  덮인 마을과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지나간다. 돌아가면 꼭 다시 보리라 다짐해본다. 물론 도. 이 눈 덮인 마을과 철도와 바다는 정동진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고 보니 공통점이 있다. 그 철도도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기차 맨 뒤칸에서 멀어져 가는 풍경들을 쳐다본 지 꽤 오래되어서 그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눈 덮인 고향의 산천이 지금 보는 산천들과 오버랩된다. 동해를 거슬러 올라가는 영동선의 추억도 함께 길어 올려진다. 기차 안에서 보낸 무수한 시간 들고 수많은 풍경들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다와 산들이 휙휙 지나가고 선로는 곧고 굽어있으며 선의 질감은 하얀 눈을 통해 더 선명하게 들어온다. 그냥 잠시 시간이 정지하고 기차만 덜컹거리고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길은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로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강릉역을 출발한 기차는 안인과 정동진역을 거쳐 망상, 묵호, 동해, 도경리, 미로, 상고 사리, 하고사리, 도계, 흥전, 통리에 도착한다. 겨울날 눈 내린 통리역에 내려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외지에서 공부하며 외로웠던 어린 영혼이 위로받는 시간이다. 어머님은 나를 위해 백설기를 준비해놓으셨다. 아들에 대한 사랑은 정말 크셨다. 


그 힘든 와중에 객지에서 공부하느라 고생하는 아들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해주시던 그 겨울밤, 눈 내려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그 밤이 생각난다. 저녁을 먹고 찬 부엌에 책을 쌓아놓고 잠 안 자려 커피를 열 잔쯤 먹었던 그리고 곧바로 잠들었던 철없던 고등학교 시절이다. 다음날, 벌써 아침을 먹고 나자 다시 객지로 갈 생각을 하니 서글펐다. 통리역행 버스에 올라타며 어머님 아버님과 작별인사를 나눌 때는 가슴이 너무 시리고 아팠다. 


다시 고독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아마도 나의 앞길을 가로막았으리라.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앉아있던 대합실에는 톱밥 난로가 아니 연탄난로가 아니 그 무엇인가가 지펴지고 있었다. 조금도 따뜻하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고독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강릉역에 내려 터덜터덜 자취방으로 하숙집으로 향했던 나의 무기력한 발걸음은 그러나 1학년 말 성취감을 통해 보상받고 조금씩 힘찬 걸음으로 변해있었다. 


그 성취감은 객지 생활이 던져준 고독감과 외로움을 지켜준 등불이었다. 무엇을 하건 성취감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 삶은 훌륭한 삶이다. 남들이 뭐라 하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비교하는 마음에서 오는 열등감과 고독감, 자유스럽지 못한 나의 생각과 환경으로 인해 힘들었다. 비교하지 않는 자유를 조금씩 느끼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고독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한다. 


'너희들은 자유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바로 이런 자유스러움에서 싹트는 것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의 위엄을 지키며 품위 있게 자유스럽게 살되, 하고 싶은 걸 하고 그걸 통해 즐기고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타인의 위엄과 품위 자유를 깨닫게 해주는 헌신을 통해 너희들은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아빠와 그 길을 같이 가자. 아빠는 이제 막 인생에서 고독과 같이 사는 방법,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 품위를 유지하고 위엄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조금씩 깨닫고 있단다. 그리고 자유스럽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조금씩 느끼고 있단다. 나와 같이 그 길을 가자. 내 기꺼이 너희들 앞에 앞장서 걸으마'


오타루 역에 내려 제일 먼저 오타루 시내를 일주할 수 있는 종일권 버스표를 한 장 샀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기 위해서다. 버스에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시원하게 내린다. 거리는 온통 눈에 뒤덮였다. 도로도 마찬가지여서 버스는 조심스럽게 좌우로 흔들거리며 앞으로 미끄러져 나아갔다. 푹푹 빠지는 눈을 밟으며 눈이 내리는 풍경은 따뜻하고 아늑하다. 제설차는 아마도 대충 포기한 듯하다. 그리고 여기 차들을 보니 대부분 4륜 구동이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버스는 오타루에서도 상가들이 밀집한 곳으로 향한다. 거기서 밥도 먹고 물건들도 구경할 예정이다. 도착한 은 베네치아 미술관. 중간에 미술관으로 향하는 우리를 사로잡은 것은 1050엔 가게다. 모든 것이 1050엔이다. (50엔은 세금이란다)


거기 길거리에 매달려 있는 거꾸로 매달린 귀여운 고양이 인형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그 고양이와는 인상이 다른 고양이 세트가 서있고 앉아있었다. 건너편 가게에서 누군가 우리를 향해 외친다. 자세히 보니 손에 시식용 초콜릿을 들고 있는 청년이다. 아마 가게 종업원 인가 보다. 그 초콜릿은 맛있었다. 화이트 초콜릿을 입에 넣자 그냥 녹아버린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시식할 수 있는 초콜릿들이 여럿 있었다. 나의 미각을 한껏 자극한다. 이 곳 홋카이도는 초콜릿으로 유명하단다. 특히 생초콜릿이 ….


그곳을 나서기 전 커피잔 세트를 사진에 담다. 맛있어 보이는 팥빵을 두 개 샀다. 이등분해달라고 해서 넷이 먹기로 했는데 이등분하는 이 여직원의 모습이 또한 번 일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선 빵칼과 도마를 깨끗하게 소독하고 고무장갑을 끼고 빵칼로 한 개를 이등분한다. 그런 다음 휴지로 깨끗이 닦고 다시 이등분한다. 정말 그 철저한 자세에 감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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