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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29. 2020

2012년 겨울 눈의 나라 삿포로 #4

 마을은 곳곳이 아기자기하다. 가게들은 제각기 자신들이 제일 잘하는 것들로 장식해놓았다. 먹는 것이든 장식이든 그릇이든 뭔가 자신이 잘하는 것들의 전시장이되, 각자의 자그마한 가게 안에 그걸 진열해놓고 자신만의 독특한 자부심 담긴 포스로 사람들을 맞는다. 이들이 부러운 이유 중 하나는 오랜 기간 하나의 가업을 세대를 이어가며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세대를 이은 노하우는 제품 경쟁력에 그대로 반영되고 안정적인 판매는 다시 노하우를 축적하는데 기여할 것이며, 이런 가계들이 서로 안정적인 생태계를 만들고 있어서 하나의 열린 공간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한쪽이 잘되는 걸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자신만의 특색을 살린 업종들이 다양한 박물관을 만들고 있다. 지역 경제 발전의 모델이 될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유리세공 제품들이 전시된 곳이다. 어떤 작품들은 유리가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인 줄 모르고 한 작품을 촬영했다. 유리에 화려한 색감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작품으로 만들다. 마을 전체의 풍경은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을 연상시킨다. 간판도 옛날 70년대 재래시장을 생각나게 하는 나무간판에 페인트 글씨를 써넣은 그런 풍경이다. 


옛것을 함부로 날려버리고 그 자리에 아무렇게나 대리석으로 빚은 돌들을 마구 깔아놓은 광화문을 보면 늘 화가 나는데, 여기서는 그런 인간들은 모두 추방되어버린 것 같다. 아름답고 예쁘게 원형을 보존하면서 거기서 현재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가스등이라 써진 곳은 아마 공방과 가게를 겸하는 곳이리라. 다양한 기법의 스테인드 그라스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돋보기안경 가게에서 문득 부모님을 생각했다. 어머님과 아버님도 얼마나 불편하실까? 무식하게 책만 권해드렸지 돋보기 하나 챙기지 못한 불충을 생각하며 돋보기를 하나 샀다. 좋아하실 어머님 모습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효도라는 게 별건가? 아마 부모님께 전화드리기로 결심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전화드렸다. 이제 부모님은 내가 매일 전화드리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세월은 계속 흐르고 나도 부모님도 나이가 들어간다. 


그런데 부모님은 우릴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 큰돈 벌어 호강시켜 드리겠다는 사기는 치지 말아야지.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하루 한번 전화드리고 안부 묻고 작은 것이라도 부모님을 생각하고 좋아하실 모습을 상상하며 챙겨드리는 것. 그것이 가능한 대안이 아닐까? 효도와는 한참 멀다는 걸 알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나마 도리의 약간이라도 하는 것이리라. 


 이 작고 귀여운 놈들을 다 사고 싶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는 것으로 대치하련다. 너희들은 나중에 많이 볼 수 있지 않겠니?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간 작품들이 존재한다. 그걸 알아보고 존중하고 그 가치를 깊이 있게 생각하는 것이 사서 가지고 있는 것보다 중요하다.  잠깐 들른 화방에서는 한참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가게에는 그가 그렸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화로 되어있는 것도 있고, 그런데 이 화방의 풍경이 나의 가슴을 자극한다. 목재로 지어진 가게 한편을 얻어 자그맣게 작업공간과 전시공간을 둔 그 소박한 모습이. 아마 고호도 이렇게 살았으리라. 물론 그는 가게가 없었고 테호가 그 역할을 했지만….


도자공예전 시공간을 방문했다. 정신없이 작품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내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2층에는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공방이 있는 곳이 지도상에 펼쳐져 있었다. 특히 접시와 도기들이 나의 시선을 끌었으나 일행과의 일정으로 오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어서 부지런히 찍고 이동했다. 이동 직전 찍은 두 점의 수채화는 눈 덮인 풍경과 밀밭의 풍경을 그렸는데 화사한 색감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유치하거나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오래 뇌리 속에 남을 만한 작품들이다. 다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우리 아이들이 보면 아주 좋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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