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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30. 2020

2012년 겨울 눈의 나라 삿포로 #5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오타루시 지정 역사적 건조물이라 쓰인 간판이 있는 가옥을 보았다. 처마에는 고드름이 길게 드리워져 있고, 아마 한 100여 년 된 목조건물로 보이는데…. 옛 것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 여기 있네 구 쿠보 상점, 1907년에 지어진 목조건물. 아예 한글로 설명이 되어있다. 오래된 집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보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말을 걸면 그동안 살아왔던 세월과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막 내놓을 것 같은 아늑함과 따스함이 묻어있다. 낡고 닳는 동안 그 아늑함과 따스함은 켜켜이 쌓여 지금의 모습으로 나를 마주 대한다.

점심메뉴 두 가지 중 나는 회와 게살, 그리고 생선 알과 시사모 알 샐러드를 선택했다. 선택은 아주 탁월했다.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음식의 맛이 나의 뇌리를 자극한다. 내가 일본에서 먹은 음식들 중 가장 훌륭한 음식이다. 이 음식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리고 공통으로 주문한 임연수어 구이도 내가 제일 많이 먹었다. 미소된장국에 킹크랩 다리가 두 개. 알은 톡톡 터지는 식감이 매우 좋다. 게살은 신선했다. 그리고 고추냉이와 섞인 알덩어리는 고추냉이 특유의 톡 쏘는 맛이 옅게 밥을 감싼다. 

이 도시의 아기자기함의 끝은 어디인가? 작은 운하와 그 사이사이에 예전에 지은 창고들이 죽 늘어서 있다. 지금은 그 운하들이 모두 그대로 개조해서 음식점이나 전시관 등으로 쓰인다. 처음에 잘 지었고 그것을 부시지 않고 개조해서 쓰는 이들의 지혜는 배울만하다. 새로운 것에 굶주린 우리 땅의 위정자들과 자본가들이 반드시 봐야 할 대목이다. 20-30년만 지나면 아파트조차 부수고 새로 지으려는 이 무서운 사람들. 더구나 지을 때 부실공사를 해서 몇 년만 지나면 끊임없이 수리하도록 하는 이 부실한 사람들에게.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데스카 오사무의 <붓다>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 각각의 생김생김은 모두 달리 표현되어 있다. 등장인물이 많은데 그걸 하나하나 독특한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데는 사람들에 대한 일상적인 날카로운 관찰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표정들은 하나같이 귀엽고 앙증맞으며 시선 또한 제각기 다르다. 


목각에 고양이 모양을 그리고 오르골을 달았는데, 그 선율이 너무 좋아 한동안 난 멍하니 그 고양이 얼굴을 보면서 연주를 들었다. 그리고 아 이 오르골 연주는 너무 좋다(Love so sweet). 이걸 딸들 방에 걸어두고 들어갈 때마다 이 줄을 당겨 이 곡이 울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을 하는데 아이들 얼굴이 문득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가 너희들에게 마음 쓰고 있다는 걸 그때 문득 깨달아서였을 것이다. 사소한 깨달음과 깨우침은 깊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3-4번 계속 그 곡을 들었다. 


일행들께서 오르골 박물관에 가면 더 좋은 것이 있을 거라고 하셔서 여기 박물관에 왔다. 그 규모도 규모지만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오르골들이 있었다. 그런데 난 이미 그 고양이에게 마음을 뺏겼다. 여기 있는 것들은 대부분 기계로 찍어낸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다시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 고양이와 눈사람을 샀다. 오르골 박물관에서 물건을 안 사귈 잘했다. 역시 나는 백화점보다는 조그만 가게의 물건이 더 와 닿는다. 눈사람의 선율도 아마 여기 선율 같은데 너무 좋았다. 그 고양이 오르골을 산 그 가게 앞에 역시 귀여운 더 큰 고양이 목각인형들이 셋 서있다. 오전에 들렀을 때는 몰랐는데, 너무너무 귀엽다. 강아지 두 마리 그리고 까만 고양이 두 마리 더 찍어 간다. 


 4시가 넘어서면서 날은 점점 더 어둑해진다. 높은 위도 지역이어서 해 지는 시간이 빠르다. 함박눈이 펑펑 다시 쏟아지고 있다.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대화의 주제는 행정프로세스였다. 절차적 합리주의와 행정 프로세스의 확립 그리고 매뉴얼 뭐 이런 것들은 다 무시되고 사람중심으로 그리고 콘텐츠에 대한 토론이 없는 빈곤하기 짝이 없는 행정에 대해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는 곳 역시 창고를 개조한 곳인데 여기 2층에 야생화를 평생 그리셨던 화가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한점 한점 사진을 찍는 중에 그 작품 탄생연도가 1965, 68, 67, 70년 내가 태어나던 해 근처다. 묘한 연대감이 가슴 한편에 스쳐 지나간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그린 그림들은 이런 느낌이구나! 얼마나 얘기에 몰입했던지, 원래 5시 19분 버스나 39분 타려고 했는데 6시 19분 버스를 타고 나가다. 여전히 함박눈이 내리고. 기차역에서 열차표 받는 것은 나의 몫. 38분 열차를 바로 뛰어 탔다. 


역에서 내려 다이마루 백화점 푸드코트로 가서 돈가스를 먹었다. 이들의 튀김 기술은 거의 예술적이다. 바깥은 바삭바삭하고 안의 고기들은 촉촉하다. 작년 오이타에서 맛보았던 닭튀김과 같은 느낌이다. 아마 프로세스상 뭔가 더하고 빼는 노하우가 있으리라. 닭고기나 돼지고기의 육질의 감은 최대한 살리고 튀김의 바삭바삭한 신선함도 유지하면서 만들어내는 노하우. 이러니 입이 즐겁지. 생맥주는 기린맥주. 역시 맛있다. 많이 먹지 않아도 좋다. 기분 좋은 식사와 이어지는 대화들. 긴 하루였다. 오타루가 내 가슴속에 조그만 성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마을길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포근함이 내게 전해온다. 호텔로 돌아와 금각사를 읽었다. 결말이 강렬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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