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사, 격리, 멘붕
지난 1년 3개월 동안 온 가족이 조심하며 아무 일 없이 유지해온 평온한 일상은 전화 한 통화로 균열을 맞게 되었다. 아들의 지인이 코로나 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곧바로 아들은 오전에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기다리는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오후 4시경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음성과 양성 어느 쪽을 확정할 수가 없어서 검체에 대한 정밀검사를 실시한다고 하였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온 식구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더 조심하며 마스크를 쓰고 아들은 격리생활을 이어갔다. 오전에 다시 연락이 왔는데 미결 상태라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가족들 모두 불안해했다. 특히 큰 딸은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인턴에 합격되고 첫 출근한 다음날이라 더더욱 불안해했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았는데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노심초사했다. 아직 아들이 미결 상태라 보건소에서 별도로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지 않았지만 선제적으로 남은 네 식구는 임시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바로 앞의 어르신이 검사를 받으면서 입안과 코에 검체 채취하는 과정에서 통증과 불편을 호소하시길래 은근히 걱정했지만 별 통증이나 불편함 없이 검사를 마쳤다. 검사하는 분들의 철저한 업무처리에 안심이 되었다.
나 역시 어제 동료들과 식사를 같이 하고 난 후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 사람들은 남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생각하기 때문에 방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대조가 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리라.
불안한 마음으로 저녁을 보내고 아침 8시에 아들은 양성 판정 통보를 받았다. 다행히 나를 포함한 네 식구는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곧바로 보건소에서 자가격리 대상 통보를 받았다. 일단 아들은 전혀 증상이 없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생활치료센터로의 이송은 다음날이라고 하였다. 하루 동안이지만 서로 철저히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음성을 받은 네 식구도 모두 각자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우선, 자가격리 앱을 설치하고 오전 10시와 오후 5시에 체온을 측정해서 앱에 입력했다. 곧이어 세무서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가족 담당이라고 하면서 잠시 후 자가격리에 필요한 물품을 보낼 테니 수령하라고 했다. 일단 회사에 연락을 했다. 나와 접촉했던 사람들에게 음성 판정되었으니 안심하셔도 된다고 했다. 나도 사실 안심했다. 같이 점심 식사했던 동료들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점에 안심하는 한편 잠복기가 진행된 이후의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야 상황이 종료된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찝찝한 마음을 떨쳐내기 어렵다.
다음날 오후 아들이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고 나서 보건소 담당자가 방역복으로 무장하고 집안 곳곳을 소독약을 뿌렸다. 30분 정도 뒤에 들어가 우선 창문을 열고 약이 묻은 곳곳을 닦기 시작했다. 발자국과 소독약을 지우면서 마음이 공중에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거의 두 시간가량 그러고 나니 지친다.
2016년 아버님을 보내드릴 때에도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는 게 신기했다. 아 이게 삶인가 하고 겸연쩍은 마음이 들었었다. 아들이 확진되고 먼 곳으로 가고 난 뒤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식구들에게도 끼니는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