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전셋집을 마련하고 아내와 신혼살림을 시작할 때 단칸 자취방보다 넓은 집이 신기했다. 방 두 칸에 거실과 부엌이 있는 집은 아주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부엌 저쪽 끝에서 안방 끝까지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엄청 먼 거리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겨울에 기름보일러에 기름통을 부을 때는 별로였지만.
산동네로 이사 간 두 번째 전셋집과 월드컵경기장 옆 세 번째 전셋집은 왠지 나와는 상관없는 공간 같은 느낌이 점점 더 깊이 들었다. 비바람 막아주고 추위도 막아주고 온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는 하지만, 왠지 깊이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집주인과 가끔씩 불화했던 날들이 그 행복한 시간을 말끔히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2004년 처음으로 우리 집을 장만했다. 그리고 두 번에 걸친 이사 끝에 현재의 집에서 살고 있다. 전셋집 때와 마찬가지로 왠지 내 집 혹은 우리의 공간이라는 느낌은 많지 않았다. 거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은행 소유이기 때문이었다. 매달 내는 이자는 월세라고 생각하니 내 집이라는 감흥이 사라진다.
자가격리 첫날부터 집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은 온전히 집이었다. 그때부터 집과의 대화 혹은 교감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물론 자가격리 기간 식구들 간에도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므로 내 행동반경은 거실에 제한되어 있었다. 그전에도 거실에서 주로 잠을 잤다. 그렇지만 이렇게 밀착해서 느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일하고 먹고 쉬고 자는 공간인 거실에서 그 공간이 내게 주는 느낌을 미세하게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바빠서 듣지 못했던 곡들을 하루 종일 틀어놓았다. 집안 가득 음악이 흘러넘치며 벽과 천장과 바닥이 그 소리를 받아 다시 내게 전해준다. 업무와 관련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해야 할 주제를 하루 종일 생각하면서 기획안을 작성했다. 작업은 단절되지 않고 지속되었다. 전화나 뜻하지 않은 방문으로 단절되면 그 후유증은 오래가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시간을 전후로 보고 싶었던 영상과 책을 보면서 거실의 책상을 다시 세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재에 있는 책상을 거실로 옮겨왔다. 이 집에 살던 분이 쓰시던 통유리 책상이다. 환한 거실로 나오니 책상에서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싶은 의욕이 배가 되었다. 거기에 2단 독서대를 주문해서 올려놓으니 거실이 글 쓰는 작업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여행을 다니며 사 왔던 목각인형들을 좌우 스피커 위에 배치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인형들이 향하는 시선을 따라가 본다. 인형들의 시선은 한 곳으로 향하지 않고 분산되어있다. 분산된 시선이 머무는 곳을 보고 다시 인형의 시선을 들여다본다. 정지되어 있지만 정지되어 있지 않다. 만든 사람의 의도를 알 수 없지만, 만들 때의 나무를 다루는 방식과 곳곳에 스쳐간 그의 손길을 상상한다. 그 손길이 이 거실에 머무는 듯하다.
집이 가격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집과 나는 분리되어 있었다. 객으로 잠시 머물고 잠자고 다시 출근하는 그런 곳이었다. 집이 내게 선사하는 가치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가끔씩 그 가치를 느끼고 감사함을 가졌다. 그런데 격리기간 동안 나는 집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발견하지 못한 가치들을 한꺼번에 깨닫게 되었다. 깨닫는 삶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고, 운동을 하고, 가족과 드문 드문 대화를 나누는 곳을 넘어선다. 말로 가 닿을 수 없는 아늑함과 편안함. 새삼 고마운 마음을 가져본다. 아마도 이번에 깨닫게 된 집의 존재가치는 평생 지속될 뿐만 아니라 더욱더 커지고 넓어질 것이다. 그 가치가 마침내 나와 구분할 수 없는 경지에 갈 때까지.